마이크로소프트사의 워드프로세서인 MS워드가 국내 시장을 장악할경우 한국이 지불해야할 총 비용은 얼마나 될까. 정확한 계산이야물론 불가능하겠지만 대체로 5천억원은 넘을 것이라는게 「한글지키기 운동본부」(회장 이민화 벤처기업협회회장)측의 추산이다. 운동본부측은 우선 아래아한글(이하 한글) 사용자의 재교육비용에3천억원 정도가 들고 공공기관의 한글문서 교체비용에 1천억원,MS워드 구매비용에 1천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느닷없이돈들어갈 데가 생기는 셈이다.하지만 한글이 사라짐으로써 발생하는 문제는 이처럼 산술적으로만설명될 수 있는 성격은 아닐 것이다. 그에 앞서 글과 말, 정서, 자존심 등 총체적 한국 문화와 연관된 문제다. 한글과 컴퓨터의 한글포기 발표 이후 관련 업계가 대안 모색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도기본적으로는 이런 안타까움에서 비롯되고 있다 하겠다.현재 전개되고 있는 한글 살리기 운동은 크게 두갈래 즉, 한글 유지하기와 대체품 개발하기로 나눠진다. 전자는 한글지키기운동본부로 단선화되어 있지만 후자는 둘로 분리된다. 우선 △한글이 맡고있던 역할을 자임하겠다고 나선 기존 워드프로세서측과 △과거 한컴에서 한글을 개발했던 경력자를 중심으로 「한글 후속편」을 개발하자는측 등 두가지 축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들 각 방향들은 나름대로 타당성과 현실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아직은 초기단계에 불과하다. 따라서 시간이 좀 더 지나봐야 구체성을 띠게될 것이고 그런뒤에 「포스트(Post) 한글」에 대한 가닥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훈민정음, 워드시장 적극 공략 방침먼저 한글지키기 운동본부는 한글의 지적재산권을 지키자는 취지에서 출발하고 있다. 즉 한컴이 부채 때문에 사업을 포기한만큼 그부채에 해당하는 금액을 모음으로써, MS에 넘어갈 한글의 재산권을보전하자는 의도다. 이회장은 『2백∼2백50억원 정도면 한글을 지킬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면서 『모금운동을 통해 1백억원, 정부와공공단체에서 불법복제해 사용중인 제품을 정품으로 교체해 1백억원을 모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한글을 지키는데 벤처기업회원사들이 적극적으로 투자하기로 결의했고 대기업과도 투자를 협의중이라고 덧붙였다.한글의 재산권을 지키자는 것은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꼽을 수있다. 하지만 그 실천 방식에 있어서는 반론도 적지않다. 불특정다수로부터 모금을 하는데 대한 정성은 이해가 가지만 결코 세련된방안이라고는 볼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또 성금이냐…』식의 반응인 것이다. 이에 따라 실제 얼마나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을것인지, 불법복제 사용자들중 얼마나 많은 숫자가 정품 가격을 지불할 것인지 등의 전망은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그렇다면 기존제품에 힘을 모아줘서 제2의 한글로 만드는 것이나또는 아예 새로운 워드프로세서를 개발하는 방안은 어떨까. 한글대안을 내세우자는 두번째 흐름 가운데에는 삼성전자가 가장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나섰다. 삼성은 한컴이 한글 사업포기를 발표하자마자 자사의 워드프로세서인 「훈민정음」의 호환성을 확대하고사용자 인터페이스(화면 메뉴, 단축키)를 대폭 수정하는 등「제2의 한글」로 육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삼성측은 특히 완성형워드인 훈민정음에 한글과 같은 조합형 문자 코드 기능을 추가, 한글의 기능을 흡수하는 한편 한글 사용자들을 위한 보상판매, 파일변환 등의 작업을 지원할 계획이다. 삼성측은 특히 한글이 사라질경우 현실적인 대안은 훈민정음밖에 없으리라고 판단, 오는 99년에시장 점유율을 50%까지 끌어올린다는 복안이다.이와 관련, 지난 6월 중순 5백여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신규 구입할 워드프로세서로서 21%가 MS워드를, 46%가 한글고수를,33%가 훈민정음을 각각 택했다는 것은 참고할만한 결과라고 볼수있을 것이다.◆ 한글 초기 개발자 힘 모으기로이와함께 소프트웨어 개발전문업체인 한국정보공학(대표 유용석)도자사의 워드프로세서인 「미래로」를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미래로는 워드프로세서와 표계산, 데이터베이스 기능을 갖고 있어 마이크로소프트의 오피스 제품군을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 회사측의 설명이다. 이 프로그램은 www.kies.co.kr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그러나 이 가운데 가장 중심이 되는 흐름은 아마도 한글 개발 경력자들의 움직임일 것 같다. 나모 인터랙티브의 박흥호 사장과 나눔기술의 장영승 사장은 지난달 25일 기자회견을 갖고 『한글의 장점을 이어받으면서 훨씬 발전된 모습을 지닌 대체 한글을 6개월(정품은 1년)내에 개발키로 했다』면서 제품의 이름은 가칭 「나모한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관련 기술의 60%는 이미 확보된상태라면서 나모는 핵심 기술개발을 맡고 나눔은 그룹웨어 등 상품화 부문을 담당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이들은 나모한글의 기능에 대해 △윈도95등 윈도 운영체제를 기반으로 하면서 △한글 데이터는 물론 MS워드와 HTML파일도 모두 읽고저장할 수 있으며 △엑셀 등과도 잘 연동되는 등 호환성과 개방성에서 뛰어난 「한글+알파」 제품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개발자금과 관련해서도 총 예상 비용 20억원 가운데 10억원은 이미 확보되어 있는 상태여서 큰 난관은 예상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한글 초창기에 깊이 관여했던 이들이 대체품 개발에 참여함에 따라일단 「한글 이어받기」라는 신뢰성 측면에서는 상당한 기대가 모아진다고 할수 있다. 한글 초기개발자 5명 가운데 3명(박흥호 김형집 우원식씨)이 이 진영에 가담했고 개발자금을 담당할 한국소프트웨어 컨소시엄(KSC) 설립계획까지 발표됐기 때문이다.한국소프트웨어컨소시엄과 관련, 박사장 등은 1차 발기인으로 참여하는 회사는 모두 6개사로서 이들은 △국내최고의 기술력과 세계경쟁력 있는 요소기술 회사이며 △나눔기술을 제외하고는 창업한지3년 미만, 전체 매출액중 자사제품의 매출비가 50%이상인 기업으로되어 있다고 밝혔다. 또 자본금은 1백억∼2백억을 상정하고 있다고덧붙였다.이들은 인터넷상에서 한글프로그램 없이도 한글 문서를 볼수 있는「나모 HWP 뷰어」를 개발해 호평을 받고 있는 등 한글과 관련된역량과 「연고권」에 있어서는 인정을 받은 상태다. 또한 이날 기자회견이 나가고 난 뒤 철자검색기 등 연관기술이나 원천기술을 가진 대학 연구소 등에서 적극적인 지원의사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알려졌다. 한편 이들은 다만 정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한글의공개소프트웨어화 움직임에 대해 『워드프로세서는 다른 프로그램과 달리 개발 주체가 책임을 지고 사용자 지원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특수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면서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 나눔기술의 장사장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가의 입장에서가 아니라고전제, 『워드프로세서 개발문제는 아마추어적으로 접근해서는 곤란하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지금까지의 흐름으로 볼 때 형식은 어떻든 한글의 명맥은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할수 있다. 동시에 한컴 사태로 인해 국내소프트웨어의 문제점 및 산업 육성 방안과 관련한 좋은 교훈도 얻었다고 할수 있다. 문제는 개발자와 소비자 모두 이 교훈을 얼마나잘 살려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