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면과리 외길 20년, '최고' 자부시설·인재양성 집중 투자...건설업 발전에 '한몫'

지난 7월말. 국내 모자동차회사의 한 직원이 미국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서울 서대문구 합동에 자리잡은 한일상사에 들렀다.얼마전 이곳에서 5억5천만원을 들여 디지털복사기를 도입해 주문형인쇄시스템을 갖췄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들른 것이다. 「수시로 내용 판형 등이 바뀌는 5백쪽 정도의 자동차관련 책자를 만들어야 하는데 제때에 시간을 맞춰 책자를 만들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는것이 그 직원의 말이다. 「미국출장을 간 것도 한국에는 그런 일을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곳이 없는 줄 알았기 때문이며 이제 그럴필요가 없게 됐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자동차회사에서 해외서비스를 담당한다는 그 직원이 미국까지 알아보러 갔다는 「시설」은 고가의 첨단 디지털복사기를 이용한 주문형 인쇄시스템. 기존의 전자출판·인쇄가 컴퓨터작업을 마친 후에도 여러 과정을 거쳐야 최종결과물이 나오는데 반해 한일상사의 주문형 인쇄시스템은 산업용 초고속 디지털복사기를 도입해 컴퓨터작업에서 인쇄에 이르는 중간과정을 모두 한대의 기계로 처리할 수있어 시간 노동력 비용 등의 절약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뿐만 아니다. 단순복사기능을 넘어 컴퓨터를 이용한 스캐닝과 저장,축소·확대 등의 편집·수정, CAD작업은 물론 원거리 네트워크기능까지 갖춰 컴퓨터통신을 이용한 파일전송과 보완이 가능하다.『1백여매 내외의 컬러인쇄물을 만들 경우 값이 저렴하고 빠른 시간내에 다양한 편집과 인쇄가 가능하다』는 게 김창수사장의 말이다. 이보다 앞서 한일상사는 2억5천만원을 들여 대형설계도면을CD롬에 담았다가 화상이동·부분교정·변배출력·인쇄 등이 가능한 디지털복사기도 도입했다.IMF로 기업들이 모든 것을 줄이는 때에 한일상사가 이처럼 「복사기」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에 고개를 갸우뚱할 수 있다. 하지만한일상사가 도면관리 전문업체라는 점을 알면 고개가 끄떡여진다.한일상사의 시작은 20년전인 78년에 세운 제도사무실. 당시 건설붐과 맞물려 일감이 밀려들면서 한일상사는 탄탄하게 커갔다. 그러나김사장은 사업의 성패와는 무관하다는듯, 무언가 빠져버린듯한 허전함에 무작정 짐을 싸 해외견학을 떠난다.◆ 80년대초, 중동건설 붐으로 기반다져『제도업무에 관한 한 아시아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포부로 시작한사업이었습니다. 사업이 잘된다고 가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미국 독일 캐나다 영국 프랑스 등 제도업무의선진국들을 모두 돌아다니면서 업체들을 견학하고 기술을 배웠습니다.』3년간의 견학을 통해 제도와 복사가 「바늘과 실」과 같은 사이로시설이 중요하다는 점을 느낀 김사장은 귀국후 바로 대형복사기를도입했다. 81년의 일이다.당시 복사기라는 기계자체도 낯선 때였다. 그러나 김사장이 들여온복사기는 A0(1백20×88㎝)크기의 대형도면을 자동으로 복사할 수있는 것이었다. 가격도 당시 돈으로 압구정동의 대형아파트 한채값인 6천5백만원의 거액이었다. 『아시아정상이 되겠다는 생각으로구입한 것으로, 제2설계원도를 만드는 대형복사기로는 국내 최초였다』는 것이 김사장의 기억이다.도입한 복사기는 80년대 초반 중동건설특수때 제몫을 톡톡히 했다.당시 건설업체들은 중동국가들이 발주한 공사입찰에 참여하기 위한견적을 내려면 외국의 설계도면을 빌려와 복사를 한 후 원도는 돌려보내고 복사도를 갖고 견적을 뽑는 실정이었다.그러나 도면이 커서 일반복사기로는 복사는 물론 견적을 제대로 내기가 힘들었다. 그런 처지에 설계원도를 그대로 한 장에 복사해내는 시설을 갖추고 있었으니 건설업체들이 발길의 몰리는 것은 당연했다. 공사현장에서도 도면은 공사속도와 바로 직결됐다. 도면이 나오는 속도만큼 공사속도가 빨라질 수 있고 그만큼의 인건비나 비용의 절감이 가능한 것이다. 그만큼 건설업체들로서는 도면이 중요했다. 게다가 제도와 도면관리에만 전념해온 한일상사의 실력은 이미건설업계에 알려져 있었다. 『기계를 도입한 후 대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이 김사장의 말. 김사장이 말하는 대성공은 『투자를 계속할 수 있는 자금여력이 생겼다』는 것과 중동에 진출한 많은 건설업체들로부터 「제때에 일을 맞춰 줘 고맙다」는 말을 듣는 것이었다.매출액도 연간 10억원을 웃돌았다. 『당시 매출 10억원은 재무구조가 견실한 중소기업에서나 올릴 수 있는 실적이었다』는 게 김사장의 설명이다.이러한 시설투자와 직원들의 해외연수 등을 통해 기술력을 갖춘 엔지니어를 양성하는 일을 계속했다. 그 덕에 한일상사는 국내건설업체들로부터 도면관리업체로는 최고로 손꼽히는 자리에 올랐으며 일본업체들과 제도물 수출계약을 맺는 등 기술력을 인정받는 업체로성장했다.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7억5천만원이나 복사기를 구비하는데 사용했다. 비록 다른 업종에 비해 매출액 규모는 적은 편이지만 이러한시설투자에 힘입어 『매출액이 20%정도 증가할 것』이라는 게 김사장의 기대다.★ 인터뷰 / 김창수사장"불황극복 위해 투자합니다"「도면관리업의 산 증인」 이라는 소리를 듣는 김창수사장. 도면관리를 통해 산업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95년에는 정부로부터 석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 김사장은 IMF로 기업투자가위축되는데 반해 과감히 7억5천만원을 투자한 것을 『불황을 이기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국내는 물론 아시아에서도 이만한 시설과 기술을 갖춘 업체가 없다고 자부한다』는 김사장은 『3년후면완벽하게 아시아의 정상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말한다. 그 정상에 우뚝서기 위한 사전준비로 투자를 한다는 뜻이다.그러나 아시아 정상을 자부하는 김사장이지만 국내 도면관리업(김사장은 복사업과 거의 동의어로 사용했다)에 대해 아직 부족함이많다고 지적한다. 도면관리에 있어 자료의 입·출력과 교환이 자유로운 네트워크화가 세계적인 추세인데 아직 국내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매년 도면발생률이 평균 20%씩 증가하고 도면관리업이 네트워크시스템으로 가는데 국내에서는 이를 관리할 전문업체와 기술인력은 아직 부족하다』는 것이다.『6∼7층쯤 되는 쾌적한 건물에 도면관리와 관련한 모든 시설과부서가 들어가 일관작업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출 예정입니다.앞으로도 도면관리업이 건설분야의 핵심분야라는 점은 변함이 없을것입니다. 도면관리업이 비록 큰 성공을 얻거나 큰돈을 벌지 못하는 일이지만 그래도 누군가 해야할 일 아닙니까.』 김사장이 낮지만 힘이 실린 목소리로 밝힌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