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지난달 17일 루블화 표시 대외채무에 대해 90일간 지불을중지하는 모라토리엄(Moratorium)을 선언했다. 동시에 루블화를대폭 평가절하하는 조치도 취했다. 외환위기를 겪고 있는 우리로서는 무척 우려되는 사태가 아닐 수 없다. 다행히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의 경우 이미 예견되었던 사태라는 점에서 그다지 큰 충격으로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러시아사태가 완전히 수습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국제금융시장에 큰 충격을 가져올 잠재적 요인은 여전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모라토리엄이란 천재지변이나 공황 등으로 인해 외국에서 빌려온돈을 제때에 갚기 어려워진 국가가 일시적으로 지불을 유예해 달라고 국제사회에 공식적으로 밝히는 것을 말한다. 말하자면 안갚겠다는 것이 아니라 상환할 의사는 있지만 일시적으로 채무상환을 연기하겠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급거절(repudiation)과는 다르다.우리 말로는 「채무지불정지 」 또는 「채무지급유예」라고 한다.물론 천재지변이나 공황상황 등의 경우에만 선언하는 것은 아니다.외환의 조달과 상환이 순조롭지 못해 특정기간에 외채상환이 집중되거나 외화 조달과 상환계획이 제대로 되어 있어도 대외신뢰도 급락으로 상환기일을 앞당겨 일시에 상환요구를 받았을 때 선언하기도 한다. 이번 러시아의 경우 일본 엔화약세와 중국 위안화 평가절하압력 등으로 러시아의 주가폭락과 루블화의 가치불안, 국제신용평가기관의 신용도 재조정 등이 겹쳐 국제자본이 러시아를 급격히이탈했기 때문이다.지난해말 우리나라가 외환위기에 봉착했을 때도 IMF 자금지원을받느니 차라리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는 것이 낫지 않았느냐는 의견도 대두된바 있다. IMF 지원과 국제금융시장에서 높은 금리를 지불해가면서 외환을 조달해 위기를 넘긴다 하더라도 우리경제가 너무 지나친 부담을 떠안게 돼 모라토리엄 선언보다 더 큰 부담을 안게 된다는 논리였다. 그럴듯해 보이는 주장이다. 그러나 모라토리엄선언의 파장은 우리가 흔히 생각할수 있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다.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면 일정기간 외채상환을 유예받는 대신 국제금융시장에서 신용불량국으로 낙인이 찍힌다. 그렇게 되면 국제금융시장에서 돈을 빌리기도 어려워질 뿐 아니라 대외거래에서도 갖가지 애로가 따른다. 국가신용이 떨어져 원자재 수입에도 현찰을 주지않으면 수입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다. 또 그 나라의 돈가치가떨어지는, 즉 환율이 급등하는 것은 당연한 순서다. 금융 경색으로금리가 오르고 물자가 부족해 물가가 급등하게 되는 것도 예정된코스다. 결국 전체 경제가 심각한 혼란에 빠지게 된다.때문에 모라토리엄 선언이 오히려 실속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면 채권국과 채무국간에 채무조정작업을 벌이게 된다. 만기연장 채무삭감 재융자 등 여러가지 형태의 조정작업을 거쳐 경제회생 작업을 추진하는 것이다. 러시아가 외국인이 소유하고 있는 루블화표시 국채를 5년만기 달러표시 채권으로 대체할계획이라고 밝힌 것도 그런 채무조정 과정의 일환이라고 보아야 한다.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선언은 우리에게 직접적인 충격은 그다지 크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17억달러에 달하는 경협차관은 이미 몇년전부터 원금은 물론 이자까지도 연체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놀랄 일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다만 10억달러에 가까운 루블화표시 국채에 대한 투자채권은 루블화의 평가절하로 상환이 이뤄진다 하더라도 상당한 손실이 불가피할 전망이다.그러나 우리가 더욱 우려하는 것은 국제금융시장에 미치는 파장이다. 아직도 외환위기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국제자본들이 아시아시장에서 이탈할 경우 우리의 위기극복에 상당한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