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대란이 우리나라를 덮친지 10개월 가량 흘렀다. 비록 시간적으로는 그리 길지 않았지만 그 사이 IMF의 자금지원을 받는 초유의사태를 경험했고, 기업들의 부도율 또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요즘은 실업문제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국가부도 직전까지 몰렸던 외환위기의 여파가 엄청난 파고를 동반한채 사회 전체로 파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더욱 답답한 것은 아직도 외환대란의 위기를 정확하게 진단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사태의 원인을 제대로 알아야 후속대책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마련할 수 있으련만 현실적으로 그러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청문회를 여는 문제 역시 각 정파의 이해관계가 엇갈려 지지부진한모습을 보이고 있다.전쟁하는 방법을 패장으로부터 배운다는 말이 있다. 패장이 당시의상황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까닭이다. 이 책은 외환위기를 불러온국가적 패배에 대한 기록이다. 이 나라에 다시는 외환대란 같은 대혼란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저자들이 「아시아와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어떤 실수들이 거듭 되풀이되었는지」를 되짚어보고 있다.저자들은 IMF체제는 어리석음의 기념비 같은 것이라는 전제하에정치가 기업인 그리고 경제관료들의 합작품이라고 주장한다. 정치의 실패, 기업의 실패에다 경제관료들의 죽음이 외환위기를 불러온주범이라는 얘기다. 태국에서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을 때 정치가들은 상대방의 불행은 차라리 나의 행복이었을 정도로정쟁에만 깊이 빠져있었고, 기업인들은 모든 작은 개혁들을 철저히거부함으로써 결국엔 전부를 잃고마는 묘혈을 스스로 팠다고 강조한다. 대란은 한보로부터 시작돼 그것이 기아로 연결되고 흙탕물은사방으로 튀었다는 말도 덧붙인다.관료들에 대한 책임추궁 또한 아주 매섭다. 외환대란에 관련된 관료들의 태도를 정리하라면 『이들의 대부분이 사상적으로 래디컬들이었으며 개방사회의 적들이었다』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환란의원인중 하나는 관료들의 무능에도 있었음이 분명하다는 지적이다. 이 책은 크게 4부로 구성돼 있다. 먼저 1부인 대란편에서는 한국이외환위기를 맞게 되는 과정을 숨겨진 일화들을 중심으로 자세하게기술한다. 97년11월 들어서 투기적 매매 행위가 기승을 부리고 이것이 서울 외환시장을 대공황 상태로 몰아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11월4일 페레그린증권사가 세계에 배포될 보고서에 「지금 즉시 한국을 탈출하라」고 썼다는 대목 역시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제2부 협상편에서는 부도문턱에서의 외채협상을 비롯해 대통령 후보들의 각서파동 등환란 이후 채권국들과의 협상 스토리를 심도있게 다룬다. 특히 저자들은 기자 감각을 십분 발휘,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던 일화들을 대거 공개해 긴박감을 더한다. 「힐튼호텔의 해프닝」, 「JP모건, 주사위를 던지다」, 「강만수와 임창열의분열」, 「암투, 질시 그리고 인맥」 등 시선을 집중시키는 대목들이 많다.제3부는 태평양 통화전쟁편으로 한국과 미국, 일본이 긴박하게 벌였던 통화전쟁의 진상을 낱낱이 파헤친다. 미국 재무장관인 루빈의전략과 일본의 붕괴, 그리고 엔화를 반전시키기 위한 일본의 필사적인 노력이 그려진다. 환율의 정치학적 해석과 클린턴의 중국방문에 얽힌 스토리도 흥미거리다. 이밖에 태국 인도네시아 홍콩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의 환란에 대해서도 언급한다.마지막 4부에서는 환란 과정에서 경제관료들이 저지른 무책임한 행태를 지적하고 지금 시점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논한다. 특히 저자들은 바뀐 것은 대통령 뿐이라고 설명하고 대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경고한다. 또 아직 우리는 환란 원인에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있으며 역사로부터 귀중한 교훈을 얻어야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밖에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경제청문회와 관련해서는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청문회를 열고 그 곳에서왜 우리나라가 외환대란으로 끌려 들어갔는지, 무엇에 문제가 있었는지, 어떤 실수들이 반복되었는지를 규명할 필요가있고 또 그래야한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