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무역거래를 하는 중국인 천젠(陳建)씨가 평소 알고 지내던베이징 주재 한국상사원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다. 그는『재산관리와 관련된 중요한 문제』라며 금융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인의 경험으로 봐 어떤 은행과 거래해야 안전한지의 여부를 묻는다. 천씨는 한술 더 뜬다. 현재 은행에 맡긴 돈을 찾아 재무구조가튼튼한 은행으로 옮겨야겠다는 것이다.이같은 중국인들의 금융거래 불안심리는 최근에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돈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중국인들 사이에 금융기관을 못믿게 한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중국경제의 3분의1을 떠받치는 광둥(廣東)성 소재의 광둥국제투자신탁공사(GITIC)가 전격적으로 폐쇄된데따른 충격때문이다. 우리의 종합금융회사와 성격이 유사한 GITIC은그동안 광둥성정부와 중국 중앙정부의 해외차관 도입창구 역할을톡톡히 해왔었다. 자산 규모가 3백억위안화(한화 4조9천5백억원 상당). 최근까지만 해도 해외 금융시장에서 높은 점수를 인정받았다.한때 홍콩주식시장에서 자회사인 GITIC엔터프라이즈사의 주가가 상장 당시보다 3백% 이상 뛸 정도였다. 올 6월에는 해외에서 차입한빚중 만기가 된 1억달러를 갚았다. 이때문에 현지 신문에 파산공고(10월7일)가 날 때까지 광둥성정부가 세운 GITIC이 망할 것으로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처럼 중국내에서 내로라하는 금융기관이 문을 닫았기에 중국금융시장에 미치는 충격은 더욱 크다.벌써 광둥성 지역의 자금경색은 시작됐다. GITIC폐쇄를 지켜본 중국 시중(상업)은행들은 신용대출을 꺼리고 지급보증업무를 사실상중단하고 있다. 또 제 2금융권과 유사신탁회사들도 대출자금의 회수에 나서고 있다. 광둥지역 금융시장은 마치 태풍전야같은 분위기다.광둥지역에 대한 투자도 현저하게 줄어드는 추세이다. GITIC은 그동안 광둥지역의 주요 프로젝트와 기업 수출입에 대해서 1백50억위안화(한화 2조4천7백50억원 상당) 규모의 지급보증을 선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대외거래의 한축이 무너진 이상 해외자본이 광둥지역으로 들어올리 만무하다. 벌써 이런 징후들은 곳곳에서 나타나고있다. 현지에 진출한 외국기업 관계자들은 『GITIC 폐쇄조치 이후한국 일본 홍콩기업들이 광둥지역 투자를 재고하기 시작했다』고말한다. 기존 투자가들도 몸을 움치리기는 마찬가지다. 증설계획을미루고 투자가 결정된 신규사업도 금융시장이 안정될 때까지 보류하거나 규모를 축소하는 분위기다.◆ GITIC 폐업, 금융시스템 경색 부채질이보다 더 큰 문제는 중국 금융시스템에 대한 대내외의 불신이 증폭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지난 6월 하이난(海南)개발은행과 벤처테크투자공사를 폐쇄할 때만 해도 외국투자가들은 중국 금융당국의 「과감성」을 높이 평가했었다. 그러나이번 사태는 다르게 받아들인다. GITIC 폐업은 중국 금융기관의 부실상태가 예상외로 심각한 수준임을 암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대 투자신탁공사의 간판을 내릴만큼 중국 금융시스템이 불안하다고보고 있다.그래서 외국투자가들은 중국 금융당국자들의 한마디에 촉각을 곤두세운다.최근에 뤄지웨이(樓繼偉)중국 재정부부부장(차관)은 중국 금융기관의 총대출액중 20% 가량이 회수 불가능한 불량대출이라고 말했다.그는 『최근 경제성장률이 둔화되고 동남아국가의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상당수의 은행대출이 회수 불능상태에 빠져들고 있다』면서『이런 추세로 가면 올해 중국 국유은행의 불량대출비중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밝혔다.이같은 중국 금융당국자의 「솔직한 고백」은 또다른 추측을 낳게하고 있다. 외국 금융기관 관계자들은 중국 당국자들이 밝힌 숫자보다 훨씬 많은 부실대출이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심지어 중국 은행의 부실채권 규모가 GDP의 4분의 1인 2천억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전문가들도 있다.중국 금융시장의 불안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GITIC처럼 지방 성과 시정부의 지원 아래 해외투자 유치의 창구역할을 해왔던 5개 대형국제투자신탁공사와 2백44개에 이르는 소규모의 신탁공사 역시도마위에 올라 있어서다. 중국 국무원은 『채무상환에 문제가 있는금융기관을 폐쇄한다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중국 전역에소재한 2백44개의 국제투자신탁회사를 40개로 줄일 예정』이라고밝혔다. GITIC폐쇄의 소용돌이가 채가시기 전에 언제 또다른 「폭발」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다.이때문에 국제 신용평가기관들은 중국 금융시장에 사시의 눈길을보내고 있다. 미국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는 이런 와중에 중국의푸젠 국제투자신탁공사와 상하해국제투자신탁공사 선전국제투자신탁공사 천진국제투자신탁공사 산둥국제투자신탁공사등 5개 투자신탁공사에 대한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할 가능성이 있는 「감시대상」에 포함시켰다. 무디스는 발표문을 통해 『중국 인민은행이 광둥성GITIC을 폐쇄하는등 중국 금융시장이 불안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면서 『이들 은행의 장기외화표시 채권등급을 감시대상에 포함시켰다고 밝혔다. 무디스는 『GITIC이 폐쇄된 것에 대해선 『중국 금융당국이 취약한 금융기관에 대한 인내력에 한계를 보이고 있음을드러낸것』이라고 설명했다. S&P도 중국 일부 은행의 외환신용평가를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중국 금융기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것은 국제 신용평가기관에 그치지 않는다. GITIC의 폐쇄로 피해를 입은 한국과 일본 프랑스 독일 홍콩등의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중국 금융기관과의 거래를 꺼리고 있는 것이다. 현재 파악된 GITIC의 대외채무는 15억달러 선이다. 일본 금융기관들이 받아야 할 돈이 4억4천3백17만달러, 한국2억6백75만달러, 홍콩 1억6천9백2만달러, 프랑스 1억4천4백77만달러, 독일 1억2천4백84만달러등 순이다. 국제금융전문가들은 『이금액은 현재까지 확인된 금액』이라면서 『내년 1월6일까지 피해신고를 받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피해액은 25억~3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중국당국은 이처럼 자국 금융시장의 신뢰도가 무너져 내리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중국당국은 그냥 덮어두고 넘어가기보다는 「환부」를 도려낸다는 확고한 방침을 갖고 있다. GITIC 같은부실 금융기관의 폐쇄는 기본이다. 또 부실채권 상각(償却)을 위해서 국유 상업은행의 증자조치를 취하고 있다. 인민은행의 지방 점포를 절반 가량 줄이고 인원도 40% 이상을 감축하고 있다. 얼렁뚱땅식으로 빌려줘 받지 못하는 대출금에 대해선 환수하고 담당자를문책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그러나 이같은 금융개혁은 또다른 문제에 직면해 있다. 중국은행들의 현재 실력으로는 빅뱅식 대변화를 견디지 못한다.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금융개혁추진은 자칫 금융시스템의 전면적인 붕괴를 초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GITIC 폐쇄도 그 사례중의 하나다. 부실채권의 처리문제도 골칫거리다. 제도적 장치의 미비와구조조정과정에서 예상되는 혼란등이 간단치 않을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최악의 경우엔 은행 리스크관리의 강화로 자금경색현상이 빚어져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금융개혁의 「칼」을 들이대도 불안하고 들이대지 않으면 아픈 곳이 더욱 깊어가는 중국 금융시장이다. 이래저래 중국금융시장은 동요하고 있다. 이 고비를 어떻게 넘기느냐가 중국 금융정책 결정자들의 최대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