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 극복 경험으로 성공 터닦아 ... 패션유통 혁신 기수가 꿈

외국인 관광객들이 동대문시장을 둘러보다가 걸음을 멈추고 유심히 들여다보는 상가가 있다. 패션쇼핑몰 밀리오레가 바로 그곳이다. 관광객들은 대개 입을 벌린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경제난으로 거덜나다시피했다는 나라에선 상상할 수 없을만큼 상가가 붐비기 때문이다.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는외국인도 있다. 밀리오레는 이탈리아어로 「더 좋은」이란 뜻을가진 패션쇼핑몰.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몸에 걸치는 것이면무엇이든 파는 곳이다. 해질녘이면 이 상가는 떼밀려 다닐 정도로 북적대기 시작한다. 이때쯤엔 에스컬레이터조차 줄지어 기다렸다가 타야 한다. 쇼핑객은 10대와 20대가 대부분이다. 등에 가방을 맨 교복 차림의 중고등학생이 유난히 많다.이 상가를 세운 사람은 성창F&D 사장인 40대 중반의 유종환씨.20년이상 동대문과 남대문시장에서 니트를 팔아온 상인 출신이다. 지난해 여름 그가 휴가를 포기한채 밀리오레 개장을 준비하던 때 이웃 상인들은 한결같이 그를 비웃었다. 『경제가 거덜난판에 2천개나 되는 점포를 무슨 수로 채우고 무슨 수로 상가를활성화하겠느냐』고 반문하는 이도 있었다.그러나 이들의 예상은 빗나갔다. 밀리오레는 개장일부터 젊은이들이 몰려들었고 갈수록 고객수가 늘었다. 석달쯤 지나자 『밀리오레가 아니라 밀려오네』란 말이 나왔다. 이때부터 유명 백화점들은 밀리오레의 성공 비결을 알아봐야겠다며 법석을 떨었다.경영학과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밀리오레가 성공한 이유를 알아오라고 숙제를 내기도 했다. 유사장은 누구에게도 「비법」을 말하지 않는다. 또 『오랜 장사 경험에 의해 직감적으로 결정을 내렸을 뿐 비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고 말한다.그러나 주위사람들은 상식을 뛰어넘는 유사장의 「실험정신」과오랜 경험에서 나온 「동물적 감각」이 「밀리오레 신화」의 원동력이었다고 말한다.◆ 직거래 상술·싼 임대료, 고객 몰려유사장은 패션유통에 관한 상식을 뒤집었다. 종래 동대문이나 남대문시장에서 의류상가라 하면 대개 도매상가를 의미했다. 유사장도 처음엔 밀리오레를 도매상가로 만들려고 생각했다. 그러나경제위기가 터지고 소비자들이 가격에 민감해지자 밀리오레 상가개념을 「직판상가」로 바꿨다. 생산자에서 도매상과 소매상을거쳐 소비자에게 상품을 판매하는 기존 패션유통이 생산자가 소비자에게 직접 파는 직거래 위주로 바뀔 것이라고 내다봤기 때문이었다.유사장은 임대료에 관한 상식도 외면했다. 그는 주위 사람들의만류를 뿌리치고 임대료를 파격적으로 낮췄다. 예상대로 패션업체에서 밀려난 실직자라든지 상권이 무너져 갈곳을 잃은 우수상인들이 밀리오레로 몰려왔다.유사장이 젊은이 취향에 맞는 전략을 구사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젊은이들의 패션 감각은 최고 수준에 달했는데 IMF시대를 맞아 유명 브랜드 제품만 고집할 수 없게 됐다는 점을 주목했다. 이런 판단에 의거, 상가를 백화점에 버금갈만큼 세련되게 꾸몄다. 상가를 개장한 직후에는 매일 선착순으로 1천명에게 1만원짜리 상품권을 나눠주는 이색 이벤트를 벌였다. 이 바람에 하교길에 중고등학생들이 몰려와 밀리오레 정문에 길다랗게 줄을 섰다.상식을 무시하고 실험정신을 발휘한다고 누구나 성공하는 것은물론 아니다. 유사장이 과감하게 사회 통념에 도전할 수 있었던것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 자신감은 20여년의 장사경험, 특히 수차례의 실패 경험에서 비롯됐다. 「밀리오레 신화」의 원동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유종환씨는 강원도 양구군 남면 용하리에서 태어났다. 이곳에서 초등학교 4학년까지 살다가춘천으로 이사했다. 그의 집은 춘천에서 손꼽히는 갑부였다. 그는 점심시간이면 교실까지 배달해준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당시 그의 아버지는 옷장사로 큰 돈을 벌었다. 그런데 춘천고 3학년때 아버지는 부도를 내고 말았다. 믿었던 사람이 수표를남발하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재산을 모두 날렸다. 유종환씨는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을 받았다. 서울로 올라와 술로 하루하루를보냈다. 어느날 술에서 깨어보니 깜깜한 하수구 안이었다. 밖에는 별이 총총하고 도무지 어디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이런 식으로 살 수는 없다, 장사를 하자, 장사를 해서 성공하자」. 유씨는 별을 바라보며 이렇게 다짐했다.◆ 20년 장사경험이 성공 비법이때부터 유종환씨는 평화시장에서 니트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그는 이 시절에 대해선 말을 꺼내지 않는다. 너무 힘든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저 『15년 동안 사글세방에서 하루 2~3시간만 자며 살았다』고만 얘기한다. 그러나 열심히 일한다고 모든 일이 잘 되는 것은 아니었다. 젊은패기만 믿고 밀어붙였던 유씨는 세차례나 부도를 맞았다. 그때마다 좌절했고 죽고 싶은 충동마저 느끼곤 했다. 지난 83년 세번째부도를 당한 뒤에는 뭔가 집히는게 있었다. 이제는 장사가 무엇인지, 사업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무엇을 하든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90년대 중반 도매상가인 혜양엘리시움분양업무를 하던 중 건물주와 다툰 뒤 오기가 생겼다. 그는 디자이너클럽 옆 중구 신당동 204번지 땅을 사서 도매상가를 지었다.상가 이름은 팀204라고 지었다. 이 상가는 쉽게 자리를 잡았다.지금도 디자이너클럽과 더불어 동대문시장에서 가장 잘 나가는도매상가로 꼽힌다. 유사장은 이때부터 승부사 기질을 발휘하기시작했다. 팀204의 성공으로 힘을 얻어 동대문운동장 서쪽에 있는 을육스포츠센터를 샀다. 밀리오레를 짓기 위해서였다. 당시이곳은 거평프레야 공사가 한창이었지만 아직 상권이 형성되지않은 곳이었다. 유사장은 인근에 동대문운동장이라는 상징물이있고 지하철역이 4곳이나 있어 기획력만 발휘하면 승산이 있다고판단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유사장은 그러나 밀리오레 성공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는 한일그룹으로부터 지하철 명동역 인근 땅을 사 밀리오레 명동점을 짓고있다. 이제 터파기공사가 마무리단계에 접어들었고 분양은 밀리오레(동대문점)의 성공에 힘입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유사장은 2000년 후반 이 상가를 오픈한뒤 명동상권을 확 바꿔놓겠다고 벼르고 있다. 유사장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표는 패션유통혁신이다. 동대문점 명동점에 이어 서울에 밀리오레를 2곳 더 지어 새로운 형태의 패션유통을 정착시켜 놓겠다는 것이 그의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