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CNN을 비롯한 외신들은 연일 한국에 대한 투자를 촉구하고 있다. 구조조정이 비교적 성실하게 진행된데다 경기도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어서다. 우리 경제에 대한 대외 신인도는 확실히 높아졌다.외국인들만 이런 시각을 갖고 있는게 아니다. 중소기업청이 최근 전국 6백18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의 80% 이상이 올해는 작년보다 매출액이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들 중소기업의 평균 공장가동률도 75.7%로 작년 7월의 71.8%보다 높아졌다.물론 경기지표의 호전을 놓고 거품논쟁이 일었던 적도 있다. 반도체 등 일부업종의 호황을 전체 경기의 회복으로 오해해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많았다. 그러나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1월중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경기가 이미 바닥을 쳤다는게 지배적인 의견이다.특히 IMF 사태이후 줄곧 마이너스 증가율을 보여왔던 도·소매 판매 증가율이 14개월만에 플러스 2.8%로 돌아선 점은 주목할만 하다. 생산 현장의 실물 경기 뿐만 아니라 일반 가계의 체감 경기까지 풀리는 조짐이 아니냐는 것이다.부문별로 살펴 보면 백화점 매출액은 작년 12월에 13.2%나 증가한데 이어 1월에도 11.2% 늘어났다. 용인 에버랜드 입장객도 작년 동기대비 51.8%가 늘어났다. 또 외환위기 이후 급감했던 휘발유 소비량은 처음으로 10.2% 증가세로 돌아섰다. 고속도로 통행량 역시 처음으로 8.4% 늘어났다.소비재 수입도 지난 1월중 66.3%나 증가했다. 이같은 소비 심리의 회복은 금융권에서 확인됐다. 2월중 설 자금으로 풀렸던 현금 통화 3조5천5백억원 가운데 65% 수준인 2조3천61억원만 환류되고 1조2천4백39억원은 돌아오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현금 통화 환류율 65%는 사상 최저치로 통상 설 추석 등의 환류율은 70~80% 수준을 보여왔다. 특히 경기 침체와 극도의 소비 위축으로 1백% 환수를 기록했던 작년의 경우와 비교하면 너무나도 대조적이라는 분석이다.생산 부문의 경우도 지표 호전이 이어지고 있다. 산업생산증가율은 무려 14.7%의 증가율을 기록, 98년11윌이후 석달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다. 출하도 12.8% 증가, 두달 연속 늘어났다. 작년에 비해 설연휴가 2월로 미뤄진 탓도 있지만 생산과 출하가 두자리수로 증가한 것은 좀처럼 드문 일이다.물론 주도 품목은 반도체였다. 반도체 생산은 1월중 1백5.2%의 높은 증가세를 유지했다. 또 자동차생산은 37.0%, 전력 생산은 8.6%, 산업용 전력사용량은 12.8%씩 각각 증가했다. 이에 따라 재고도 수준이 낮아지고 재고율도 넉달 연속 1백을 밑돌고 있어 재고 조정이 어느 정도 완료된 것으로 보인다.어음부도율도 완연한 하향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월중 서울의 어음부도율(전자결제 조정전)은 0.11%에 그쳐 지난 96년11월 0.10%이후 최저치를 나타냈다.이처럼 각 부문에 걸쳐 경기회복의 조짐들이 나타나자 정부도 최근 올상반기중 성장률 전망치를 수정했다. 당초 0%로 예상했던 것을 1.5%로 수정한 것.그러나 경기가 완전히 회복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생산과 소비증가율이 탄력을 받고는 있지만 설비투자나 건설투자는 여전히 바닥 수준이다.1월중 기계류 수입액은 48.8%, 건축허가 면적은 56.4%, 국내 건설 수주는 20.5%가 각각 줄어들었다. 이는 구조조정의 충격에 따른 가계 부문의 내수침체와 기업 부문의 수지악화로 인해 투자심리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물론 건설의 경우 정부가 발주하는 SOC사업을 중심으로 일정 규모 이상의 투자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민간 부문은 여전히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다만 건설 경기의 현재 동향을 나타내는 지표인 국내 건설 기성액은 전년동기 대비 1.6% 감소하는데 그쳐 올 상반기중 플러스로 전환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주고 있다. 한국건설산업 연구원의 왕세종 박사는 『최근 주택 및 부동산경기의 침체가 바닥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데다 금리하락과 주가상승등 주택수요와 관련된 주변여건이 호전되고 있어 올해중 건설투자가 플러스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그러나 경기 회복의 걸림돌로 지목되는 것은 투자지표 뿐만이 아니다. 엔화약세에 이은 수출 부진과 노사불안 요인, 실직자 증가에 따른 재정수지의 악화 등도 주요 변수로 거론되고 있다. 이와 관련, 최근 대우경제연구소는 「최근 수출 부진에 따른 우리 경제의 위상 변화와 수출증진 대책」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아 주목을 받았다.◆ 실물지표보다 외부 환경이 영향 미쳐보고서에 따르면 세계경제 성장률은 국제금융시장 불안과 디플레 현상 등으로 인해 지난해 수준인 2.0% 안팎에 머물고 세계무역 신장률도 지난해 수준인 5%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또 지난 2월 중순이후 상승세로 반전된 엔/달러 환율은 오는 4월 이후 미·일간의 경제여건을 반영하는 달러당 1백25~1백30엔대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됐다. 연구소는 이어 엔/달러 환율이 10엔씩 상승할 때마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0.3~0.4% 포인트, 경상수지는 15억~20억달러 정도 악화되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렇게 보면 생산 소비 투자 등 전통적인 실물지표보다 외부적인 환경이 경기에 더욱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대우경제연구소의 신후식 박사는 『금융 및 기업 구조조정의 착실한 진행으로 내부적 여건은 갈수록 호전되겠지만 국제금융시장의 불안 등 외부적 요인이 문제』라고 우려했다.기업인들의 투자 의욕이 크게 높아지지 않고 있는 점도 섣부른 경기부양을 견제하고 있다. 최근 재정경제부가 지난 1월18일부터 30일까지 전국 1백62개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신제품 개발이나 환경시설 개선 등을 위해 올해중 투자를 늘리겠다는 기업은 전체의 41.9%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투자 규모를 동결하겠다는 기업은 37.8%, 오히려 줄이겠다는 기업은 20.3%였다. 이에따라 올해 고용을 동결(43.2%)하거나 축소하겠다(28.4%)는 기업은 70%를 넘어섰다.이같은 양상은 이들 기업의 경기 전망이 대체로 밝지 않은데서 비롯됐다. 「국내경기가 회복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79.4%의 기업이 「그렇지 않다」고 응답한 것이다. 경기가 회복중이라는 대답은 20.6%에 불과했다.「경기가 작년말께 바닥을 치고 상승국면에 진입했다」고 호언하는 재경부와 한국은행을 머쓱하게 만드는 조사결과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