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레미콘 차에 이런 표어를 붙이고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레미콘에 물 타면 부실공사 원인된다」. 그전까지는 몰랐었는데 레미콘 회사가 그동안 저런 식으로 돈을 벌었구나 싶었지만 한편으로 왜 저런 「표어」 같지도 않은 표어를 붙이고 다닐까 궁금했다. 자기 회사는 물을 안타는데 다른 레미콘 회사가 물을 탄다는 사실을 알리려는 정의감에서, 여태까지는 물을 탔지만 앞으론 안타겠다는 다짐. 그러다가 앞으로 계속 할지 안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안 그런 척」 한다는 것을 모든 이에게 알리겠다는 가상한(?) 생각에서 그랬을 거라고 결론을 내렸다. 안 그런 척하려 했지만 머리가 뒷받침을 못하니까 저런 어리석은 표어를 붙이는 것이다.탈옥수 신창원을 잡겠다고 여기저기 검문소를 만들어서 그곳을 지나는 시민들에게 많은 불편을 주고 있지만 과문한 탓인지 검문을 해서 누구를 잡았다는 얘기는 아직 들어본 일이 없다. 이미 검문이라는 원시적 방법으로 범죄인을 잡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문형사 몇명이 눈 앞에서도 몇번씩 놓치는 신출귀몰한 탈옥수를 어떻게 아마추어 전경들이 지키는 검문소에서 잡겠다는 것인가. 방송기자가 검문 책임자에게 질문을 했다. 『잡지도 못하는데 왜 검문소를 설치해서 불편을 끼칩니까?』 책임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잡겠다는 것보다 위에서 하도 난리를 치니까 가만 있을 수는 없고 일하는 척이라도 하다 보니까 이렇게 됐습니다.』 그렇다. 검문을 지시하는 사람도 검문을 하는 사람도 검문을 통해서 아무도 잡을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지시하는 척, 검문하는 척하는 것이다. 그 덕에 영문도 모르는 시민들만 길에다 잔뜩 시간과 기름을 뿌리는 것이고 쓸데없는 일에 비용을 쓰는 것이다.이런 「척」 하는 사람을 사회 곳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또한 권위적이고 관료적인 집단일수록 이런 「척」 하는 사람이 많다. 「척」 하는데 능한 사람을 대접하기 때문이다. 공무원이나 대기업에는 실제 일은 안 하지만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많다.「척」 하는 데 쓰는 에너지와 지혜를 일하는데 쓴다면 벌써 선진국이 됐을텐데. 하지만 「척」 하는 사람보다는 「척」 하게끔 만드는 문화와 분위기가 문제다. 예를 들어 실제 사건 해결건수나 일의 결과와 질로 평가를 하고 그 과정에 대해서는 실무자에게 맡기는 자유로운 분위기라면 이런 우스운 일들은 안 벌어질 것이다. 일이야 하건말건 늦게까지 남아 있는 사람, 범인이야 잡히건 말건 곳곳에 검문소를 설치하는 사람을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라면 앞으로도 이런 어리석은 일은 계속될 것이다.「척」 문화의 압권은 단연 구소련 사회주의 체제다. 일을 하라는 노동자들은 실제 일은 안하고 일하는 척만 한다. 돈을 주는 경영층도 돈 주는 척만 하는 것이다. 우리의 갑돌이 갑순이도 서로 좋아했지만 「안 그런 척」을 하다 불행한 결혼을 하고 평생을 살았다. 「척」 하면서 사는 삶은 사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하고 싶은 일, 영양가 있는 일,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다. 주변의 모든 일을 이런 시각에서 다시 한번 살펴보는 일이 중요하다. 정말로 필요한 일인지 아니면 「척」 하는 일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