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출국 문화 파악 못하면 절반은 실패 ... 강력한 브랜드 전략 중요
지난 달 미국의 월마트가 67억파운드(1백7억달러)에 영국의 아스다를 인수한 것이 영국의 슈퍼마켓이나 유럽 각국 유통업체들에 아주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월마트의 아스다 합병은 유통업체들이 세계화로 나아가기 시작하는 분위기에서 이뤄진 것으로 이 추세는 계속될 전망이다. 지난 몇개월간 네덜란드 슈퍼마켓 업체 로열어홀드는 폴란드에서 한개, 스페인에서 네개, 미국에서 한개, 아르헨티나에서 두 개의 슈퍼마켓을 각각 사들였다. 20개 나라에 진출해 있는 프랑스의 하이퍼마켓그룹 까르푸는 칠레 콜롬비아 인도네시아 체코에다 점포를 열었고 내년에는 일본에 진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영국 최대 식품유통업체 테스코는 6번째 해외시장인 한국에 점포를 냈다. 또 다른 프랑스 대형 슈퍼마켓그룹 프로모드는 아르헨티나에서 제 1인자가 됐다. 12개 시장에 진출해 있는 스웨덴의 헨즈앤드모리츠, 17개 시장에서 영업을 하는 스페인의 자라 등 의류체인들은 수주일만에 한 국가씩에서 지점을 열고 있다.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유통업체들은 다국적화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스웨덴 가구판매업체 IKEA 같은 소수 회사들을 제외하고 기존 다국적 유통업체들은 아직도 대부분의 매출과 이윤을 내수시장에서 얻고 있다.(도표참조) 까르푸의 영업이익 60% 이상은 프랑스에서 나온다. 국제무대에서 30년간 영업하고 있지만 까르푸는 아시아의 대부분과 라틴아메리카, 심지어는 유럽 일부 지역에서도 아직까지 손해를 보고 있다.누구나 해외로 나가면서 성공할 기회도 줄어들고 있다. 중남미의 많은 현지 업체들이 이미 팔리거나 합작기업에 넘어갔고 그나마 남은 업체들도 인수가격이 올라가고 있다. 까르푸의 일본진출 소식이 전해지자 다른 다국적 업체들이 아시아 전지역에서 파트너가 될만한 현지업체들을 낚아채고 있다. 그러나 유통업체 관계자들은 글로벌화는 단순히 매출확대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단언한다. 월마트보다 먼저 아스다를 인수하려했던 킹피셔의 제프 멀키 사장은 유통업체들이 새로운 매출을 원하는 것은 규모의 경제를 이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유럽에서는 유통업체들이 단일통화에 대응하기 위해 국제적 사업망을 구축하기도 한다.◆ 현지 상품 제공업체들 글로벌 소싱 미흡그러나 실제로 국제규모의 영업에서 성과를 얻기는 어렵다. 특정시장에서 충분한 매출과 이익 없이는 영업을 한다해도 거대한 유통망을 구축하고 최신기술을 도입하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 세계를 단일시장으로 삼고 있는 유통업체들의 매출은 이들이 세계화 이전 각국 내수시장에서 각각 올렸던 매출의 총합을 아직 넘어서지는 못하고 있다. 이런 이유는 이들에게 상품을 대주는 큰 공급업체들이 아직 「글로벌 소싱」에 눈을 뜨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JP모건의 한 유통전문가는 프록터앤드갬블(P&G)이 브라질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면 월마트가 될 것이 아니라 브라질 최대업체 CBD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협상도, 상품제조도 전부 현지 공략에 초점을 맞춰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각 지역의 취향은 상품판매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월마트는 인도네시아에 효율적이고 깨끗한 슈퍼마켓을 설립한 적이 있다. 하지만 현지인들은 시장처럼 시끌벅적하게 가격을 흥정할 수 있는 그 옆의 좀더 허름한 가게를 선호했다. 결국 그후 월마트는 철수했다. 영국 제약회사 부츠는 태국지사에서 팝뮤직오디오를 큰소리로 틀어놓자 손님이 아주 늘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고객들은 가게가 너무 조용한 것을 싫어했던 것이다. 이런 것에 착안한 부츠는 7월에 일본점을 열면 계산대 직원들을 서서 일하게 할 계획이다. 일본인들은 앉아 있는 점원에게 돈주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글로벌 경영에서도 지역적 사고는 필요하다. 세부적인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변덕스러운 지역의 취향에도 기꺼이 맞출 생각을 해야 한다. 월마트는 브라질에서 값만 싸다고 콜롬비아 커피를 팔려다 실패했다. 브라질인들이 자국산 커피만을 마셨기 때문이다. IKEA는 미국인의 침구 사이즈에 대해 알기 전에 자체생산한 침대를 팔려다 실패했고, 독일인들이 5다리 책상을 선호한다는 것을 모른 채 4다리 책상을 팔려다 역시 실패했다.지역의 취향을 잘 파악하는 한가지 방법은 로컬 파트너와 합작하는 것이다. 많은 개도국에서 이를 법으로 강제하고 있지만 이것은 종종 갈등을 낳는다. 많은 서방 유통업체들이 현지 파트너들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많은 합작이 실패로 끝나자 지역업체들은 다국적 파트너에게 거래비밀을 알려주는데 주저한다. 몇년 지나지 않아 이들이 다시 경쟁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다국적 유통업체들도 이 과정에서 몇가지 이익을 본다. 그 중 가장 큰 것은 노하우를 얻는 일이다. 또 이러면서 공급업체들과 정보를 나눠 갖게 되면 재고를 최소화하고 고객이 원하는 것을 더 많이 진열해 놓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는 비용절감으로 이어진다. 미국에서의 유통업체간 합병이후 어홀드USA는 올해 약 8천5백만달러, 내년에 1억1천5백만달러의 비용을 각각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월마트도 아스다의 공급체인 구조를 개선하고 진열공간을 더욱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신뢰성 있는 브랜드 가치 필요그러나 조건이 아무리 유리해도 문화적 차이는 어쩔 수 없다. 월마트는 지난 91년부터 합작한 멕시코 유통업체 그루포시프라로부터 2년전 지배적 지분을 인수하고 최근에서야 현대적 정보전달 시스템을 도입했다.유통업체가 성공하려면 강력한 브랜드가 필요하다. 최근의 한 조사는 신뢰성있는 소매 브랜드들이 강력한 힘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조사대상 영국성인 1천명 중 3분의1이 슈퍼마켓 브랜드를 가진 부동산 중개상에게 집을 살 것이라고 말했다. 또 15%는 슈퍼마켓 브랜드의 자동차를 살 것이라고 답했다. 황실가문에 대해서는 10%만이 신뢰감을 갖고 있는 영국 젊은이 중 85%가 부츠를 신뢰하고 있었다.그러나 잘 알려진 브랜드를 창조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새 시장에 들어가는 유통업체들은 처음에는 공급자와 고객들에게 아주 생소하기 때문에 신뢰를 쌓는데 몇 년이 걸린다.시간과 투자가 많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숙련된 경영인이 있고 자금력을 갖춘 몇몇 업체들은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 관점에서 월마트의 아시아 지역 영업방식은 전략적으로 타당한 것이다. 유럽 업체들이 자신들의 앞마당에 월마트가 들어오는 것을 두려워 하는 것도 엄살은 아닌 셈이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