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신약 1호 개발」. 한국제약산업의 꿈이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 제약업계 종사자들과 생명공학자들은 수많은 밤을 연구실에서 하얗게지새웠다.그러나 그 꿈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신약개발은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고 수년간의 임상실험을 거쳐야 하는「돈과 인내와의 싸움」. 이싸움에서 이길만한 여력이 없어서였다.그래서 국내 제약업계는 선진국에서 개발한 신약을 수입하거나 모방해 팔았다. 신약불모지라는 불명예를 써도 별수없었다. 그러기를 1백년. 한세기라는 긴 기다림 끝에 마침내 국내 제약업계는 한을 풀었다.한국 제약산업 1백년사에 금자탑을 세운 주인공은 김대기SK케미칼 중앙연구소 생명과학연구실장(43). 그는 제3세대백금착체 항암제인 「선플라」(개발번호 SKI2053R)를개발, 수년간의 임상실험을거쳐 지난 14일 식품의약안전청으로부터 시판허가를 받았다. 9년2개월의 집념어린 투혼 끝에 국산 신약 1호를 개발한 것이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신약개발국 대열에 당당히 진입했다.◆ 미 제약사 근무중 정보듣고 귀국김실장이 「국산 신약 1호개발」이라는 다소 무모하고 야심찬목표에 도전장을 낸 것은 82년 봄. 서울대 약대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미국 유학길에 나서면서부터였다.『대학원에 다니면서 서울 방배동에서 약국을 운영했는데 목이좋아 수입이 좋았습니다. 잘만하면 큰돈도 벌수 있었으나 학업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약국을 처분했습니다.』미국 뉴욕주립대 박사과정에 입학한 그는 항암제분야 신약 개발 세계적 권위자인 앤더슨교수의 지도를 받아가며 논문준비를했다. 모든 유학생이 그러했듯 그 역시 거의 실험실에서 살다시피했다. 이런 피나는 노력을 기울인 끝에 그는 86년 「나이보마이신 유도합성체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학위를 마친 뒤 연구원으로 첫 둥지를 튼 곳은 미국 제약회사인 ICN사 핵산연구소. 그는 이곳에서 1년동안 근무하면서「한국 제약사 1백년 한」을 풀 중요한 정보를 얻었다.『근무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제3세대 백금착체 항암제를개발중이라는 소문이 나돌더군요. 당시 항암제로는 제1세대 시스플라틴과 제2세대 카보플라틴이 주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독성이 강해 다른 신물질을 찾기위해 연구원들간 경쟁이 치열했습니다.』승부를 걸 것은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자 미련없이 보따리를 싸 귀국했다. 그러나 국내 여건은 그의 의욕을 따라주지 못했다. 정부출연연구소인 한국화학연구소에 들어가 신물질개발에 착수했으나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잠시 꿈을 접고 있던 그에게 89년 1월 기회가 찾아왔다. SK그룹 최종현회장(98년 작고)이 전폭적인 지원을 해줄테니 제3세대 백금착체 항암제를 개발해보라면서 그를 계열사인 선경인더스트리 생명과학연구소 연구원으로 발령냈다.이때부터 그의 신약개발은 순풍에 돛을 달았다. 미국 국립암연구소와 공동연구계약을 맺은 그는 제1, 제2세대 백금착체 항암제와 분자구조를 달리하는 신물질을 차례로 합성해 나갔다.1년 4개월 동안 그가 실험에 실험을 거듭, 만들어낸 신물질은1백20여개.이 가운데 기존 백금착체 항암제보다 독성이 적고 암세포 증식억제 효과가 뛰어난 15개를 골라 미국 국립암연구소에 보냈다.한달여를 기다리자 샘플로 보낸 것중 「SKI2032R」「SKI2034R」가 효능이 뛰어나다는 통보가 왔다.신바람이 난 그는 곧바로 개와 쥐를 상대로 동물실험에 들어갔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였다. 약물을 투여한 개가 위장장애를일으켜 설사를 한 것이다. 부작용이 있다는 신호였다.◆ 동물실험서 부작용, 한때 포기할뻔신약개발 꿈을 포기하고 약국이나 개업할까 생각도 들었으나그동안 들인 노력이 너무나 아까웠다. 마음을 추스른 그는 다시 신물질을 합성해 미국 국립암연구소에 보냈다. 2차 샘플로보낸 것중 「SKI2053R」등 10개가 약리효과가 뛰어나고 부작용이 적다는 통보가 왔다. 그는 다시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을실시,약리효과가 뛰어난 「SKI2053R」를 신약후보 물질로 최종선택, 93년 보사부에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을 신청했다.6개월여를 기다리자 보사부로부터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허가가 떨어졌다. 용기백배한 그는 서울대병원과 공동으로암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에 들어갔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제1상,제2상 임상시험을 실시한 결과 항암효과는 기존 백금착체 항암제보다 탁월한 반면 부작용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김실장이 개발한 제3세대 백금착체 항암제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발생 빈도가 높은 위암에 약리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기나긴 과정을 통해 신약후보물질 「SKI2053R」은「선플라」라는 신약 1호로 태어났다.『신약후보 물질이 아무리 약리효과가 뛰어나더라도 의사들이용법 및 용량 등 모든 것을 꼼꼼히 체크하지 않으면 성공을 거두기 힘듭니다. 따라서 신약1호 개발 영광은 저보다도 임상시험에 참여한 의사와 환자분들께 돌아가야 합니다.』자신은 단지 신약후보 물질을 개발한 것에 불과하다고 밝힌 김실장은 또다른 목표에 도전장을 냈다. 죽기전까지 선플라와 같은 신약 2개를 더 개발하기 위해 지금 연구투혼을 불사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