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증가 공포, 피임법 발달 ... 생명존중 사상과 괴리감 극복해야

인구가 60억명을 넘었다는 것이 인구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물론 일일이 세어보지 않았으니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다 할 것이다. 60억명을 초과한 날짜까지 내세워 이를 기념하고 있으니 마케팅 능력도 대단한 셈이다. 인구건 동물 개체건 숫자를 세는 고도의 통계적 기법이 있다고는 하지만 추산치도 아니고 그저 몇월 며칠 60억명을 넘었다고 말한다면 이는 다만 인구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음을 주장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어떻든 인구가 엄청나게 불어나고 있다. 맬서스는 인구는 산술급수적으로 불어나고 식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기 때문에 필연코 굶주림에 직면할 뿐이라는 주장을 폈다. 얼른 보면 자연법칙을 말한 것 같지만 빈자들에 대한 사회적 부조를 차단하는 가진자들의 냉정하고도 잔인한 논리를 대변할 뿐이었다. 이런 점들이 우리의 부조리다.성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인디언 여인들은 신생아에게 젖먹이는 기간을 늘림으로써 피임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굳이 바람둥이가 아니라 하더라도 출산은 성의 본능과는 언제나 적대관계였다. 중남미 인디언들이 절멸하다시피 한 것은 유럽인들의 살육보다는 그들이 퍼뜨린 질병 때문이었다는 것이고 보면 질병은 언제나 인구증가에 대한 강력한 자연의 제어였다.생명에 대한 외경을 주장하는 분들이 아직도 많다고 하겠지만 인구증가에 대한 공포가 바로 생명경시의 뿌리를 이루고 있음은 분명하다. 피임할 수 있다는 생각이 생명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연결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다. 인구의 증가를 회피한다하더라도 그렇다고해서 질병을 환영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인구증가를 두려워 한다면 생명은 콘트롤해야 한다. 이점이 인간의 불행이다.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사실 아무런 출생 제어 장치가 없다. 발달한 의료제도는 죽을 생명을 살린다. 심지어 인공수정같은 것은 정자들 간의 경주를 차단함으로써 원천적으로 자연의 선택을 무효화한다. 결국 섹스는 종족번식이라는 원천으로부터 스스로를 유리시키고 다만 육체의 즐거움을 주는 것일 뿐이게 되고만다. 섹스로부터의 소외가 모든 현대 인간의 필연적인 함정이다.섹스가 생명으로부터 유리된다면 그것은 육체의 쾌락일 뿐이다. 이점이 사람들이 성 문제에 대해 문란을 논하고 타락을 경계하는 심리적 공포감의 원천이다. 현대사회가 굳이 문란한 사회가 아니라는 것은 이 페이지에서 여러차례 강조한 그대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현대사회야말로 타락한 사회라고 생각하고 있다. 생명으로부터의 소외감이 표현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