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주범 해양사업 과감히 구조조정 ... 핵심기술 특화해 세계시장 공략
세계 최대 악기업체인 야마하그룹의 2륜차 메이커인 야마하발동기가쾌속항진을 하고 있다. 단독결산으로 99년3월기에 5천8백12억엔의매출을 올렸다. 5년 연속 증가기록이다. 영업이익 또한 2백30억엔으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연결결산으로는 매출이 8천82억엔으로 전기에 비해 5.1%가 줄어들기는 했다. 그러나 영업이익은 4백6억엔으로 21.4%나 늘었다.특히 주력제품인 2륜차는 지난 몇년간 계속 호조를 보이고 있다. 유럽에서는 자동차면허로도 1백25cc까지의 2륜차를 탈수 있게 면허제도가 바뀌면서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국내 리스트럭처링은 모터보트 요트 어선선체 등 주정(舟艇)사업의 정리로 일단락됐다.』 하세가와 다케히코(長谷川 武彦)사장은 실적회복의 배경을 이같이 설명했다.하세가와사장이 이처럼 설명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야마하발동기는모터보트와 관련 엔진을 주력으로 하는 국내 해양 사업에서 문제를안고 있었다. 해양사업은 99년3월기에 1천5백22억엔(연결기준)의매출을 올렸다. 전체의 약 20%선에 이른다. 규모로는 2륜차에 이어2번째다. 그러나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1억5천만엔으로 전체의 0.3%에 불과하다. 그나마 영업흑자를 내기는 5년만이다. 해양관련사업은2륜차 부문의 이익을 까먹는 부실의 대명사였다.해양관련 사업의 주력품목은 모터보트와 요트,어선의 선체를 총칭하는 「주정」, 배엔진인 「선외기(船外機)」,1~3인승 수상오토바이 「워터비클」 등 3개부문. 이 가운데 국내용 주정사업은 적자의주범으로 꼽혀왔다.◆ 매출은 감소·인건비는 증가하세가와사장이 마침내 주정사업에 메스를 댔다. 우선 인원삭감에나섰다. 주정사업이 적자를 낸 원인은 간단하다. 버블붕괴후 매출이계속 줄어드는데도 인건비는 오히려 늘어났기 때문이다. 98년도에40세이상 간접부문 사원을 대상으로 조기퇴직자를 모집,5백7명을 정리했다. 그 절반은 해양부문의 사원이었다. 주정 제조 자회사에서도40세이하까지 조기퇴직제를 적용하고 전환배치를 실시했다. 이를통해 8백50명이던 종업원이 절반이하인 3백70명선으로 줄었다.공장도 재편했다. 주정사업의 경우 3개 제조회사를 비롯, 계열 5개공장에서 보트와 어선을 제조해 왔다. 그러나 공장의 가동률이 평균60%에 머물렀다. 이에따라 생산을 3개공장으로 집약시켰다. 어선을주로 제작하는 시도(志度)공장(가가와현)의 폐쇄는 대표적인 구조조정 사례다. 시도공장은 피크때 2백80명이 넘는 종업원을 풀가동했다. 그러나 가동률이 60%선으로 떨어지면서 올 3월 결국 폐쇄됐다.야마하는 또 소형보트의 주력공장인 야쓰시로(八代)공장(구마모토현)을 선외기 공장으로 전환키로 했다. 생산설비 교체가 완료되는 2000년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간다. 2002년에는 연10만대 생산능력을 갖춘 선외기 주력공장으로 만든다는 계획이다.야마하발동기가 선외기 비즈니스쪽으로 「선택과 집중」전략을 추진한 배경은 무엇일까. 첫번째는 자동차의 얼굴 도요타자동차의 해양사업참여다.두번째는 환경분야의 기술개발 강화다. 선외기 분야에서도 자동차엔진처럼 환경분야기술개발 경쟁이 치열하다. 유럽 미국에서는 이미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선외기에도 적용하고 있다. 기술과 판매력을앞세운 도요타의 신규참여와 환경규제에 대비, 야마하가 선외기 비즈니스를 강화하고 나선 것이다.야마하발동기의 문제는 해양사업이었다. 그런데도 해양사업에 선뜻메스를 대지 못한 이유는 바로 이렇다. 해양사업에 첫발을 내디딘것은 지난 60년. 야마하그룹의 「중흥의 아버지」로 통하는 가와카미 겐이치 발동기 초대사장은 4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일본에도 보트요트 등 해양사업 시대가 온다고 내다봤다. 그는 모회사인 일본악기제조(현 야마하)와 공동으로 섬유강화플라스틱에 2륜차 엔진을 개조한 선외기를 탑재한 모터보트를 선보였다. 시장개척을 위해 직영마리너를 건설했다. 선박면허 요트교실을 전국적으로 전개,마린레저보급에도 앞장섰다.이같은 방식은 야마하가 「야마하 음악교실」로 시장을 공략한 것과마찬가지였다. 시장을 개척, 셰어와 브랜드력을 높이는 야마하그룹의 필승 패턴이었다.그러나 해양사업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일본의 해안에서는 지역주민이나 어업협동조합이 어업권을 갖고 있다. 마리너를 건설하는 경우 어업권을 보상해 주지 않으면 안됐다. 이로인해 보트유지비가 비쌀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뜻하지 않은 행운이 닥쳤다. 버블로 레저붐이 일면서 1척당수천만엔에서 수억엔에 이르는 고급 대형보트와 요트가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포드·도요타에 엔진 공급해양사업이 2륜차의 부진을 커버해 줄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80년대 전반 야마하발동기는 톱메이커인 혼다기연과 한판승부를 벌였다. 혼다와 야마하의 영문이니셜을 딴 「HY전쟁」으로 불린 이 싸움에서 야마하는 쓴잔을 마셨다. 재고가 눈덩이처럼 쌓이면서발동기의 실적은 급강하했다. 80년대 후반에 들어와서도 5백㏄이하 2륜차에 대한 헬멧착용 의무화에다 엔고 영향으로 고전을 계속했다.해양사업도 암초에 걸리고 말았다. 버블 붕괴로 레저붐이 사라지면서 해양사업도 큰 타격을 받았다. 90년도에 7천3백20척에 이르렀던보트판매 척수가 98년에는 4천척 이하로 줄어들었다. 어업이 쇠퇴하면서 어선도 90년 6천2백척에서 98년에는 3천척으로 줄어들었다.하세가와사장은 『창업주를 배려, 지금까지 무리를 해왔음이 확인됐다. 주력인 2륜차의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있는 이때 손을 써야 한다』며 해양사업 구조조정을 실현한 것이다.발동기는 해양사업의 당면 목표를 「2001년 3월기 주정사업의 흑자화」로 내걸었다. 이를 계기로 주력인 2륜차와 선외기 부문에 자원을 집중 투입한다는 전략이다. 이를 통해 종합엔진메이커로 거듭 태어난다는 목표다.야마하발동기는 그동안 2륜차엔진 기술을 응용, 보트와 버기(Buggy)차 등으로 사업을 확대해 왔다. 자동차엔진 분야에서도 미국의 포드도요타의 스포츠카에 엔진을 공급하고 있다. 부가가치가 큰 엔진의기술력에서는 세계적인 평판을 얻고 있다.야마하발동기의 성공패턴은 간단하다. 핵심기술인 공랭식엔진을 무기로 제품 영역을 확대, 글로벌시장을 공략하는 것이다. 이 패턴을무시했을 때 결국 실패했다. 혼다와의 2륜차 전쟁에서의 패배, 해양사업의 적자 등이 바로 그 사례다.야마하발동기가 2륜차로부터 선외기 자동차엔진에 이르는 종합 엔진메이커로 도약할수 있을까. 이는 본업에 경영자원을 집중시키는 성공패턴을 재현시킬 수 있느냐의 여부에 달렸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