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입법 추진중인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해서 많은 논란이 야기되고 있다. 그간의 논의 과정을 보면, 주요 관계 당사자들의 선진국 경험에 대한 아전인수적 해석과 사외이사가 중심이 된 이사회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인식 부족이 심한 것 같다.정부 시민단체의 입장은 대주주의 전횡 방지 및 소액주주 보호 차원에서 이사회의 감독 기능 강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단순한 발상이지만 투명경영을 강화하면 경쟁력도 강화될 것이라는 논리다. 서구기업들의 사례가 많이 인용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선진국 경험을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미국에서는 80년대부터 불붙기 시작한 적대적 M&A, 경영진에 대한 대리인 문제 등의 논쟁을 시작으로 이사회의 감독 기능이 강화되었고, 90년대 들어서 Kodak, GM사의 최고 경영자가 자신들이 영입한 사외이사들의 주도에 의해 쫓겨난 사건이 소액주주 운동의 절정이었다.그러나 이 과정에서 부작용도 심각했다. 경영진이 대주주와 월가의 압력에 굴복해서 기업의 장기 발전 전략을 추구하기보다는 주가동향에 전전긍긍했다. 단기수익 극대화를 통한 고배당 과 주가 관리에 급급한 것이다. 그 결과 장기적이고 과감한 투자는 포기되었으며, R&D 투자가 꾸준히 요구되는 가전, 타이어 분야에서 퇴출했다. 이로 인해 미국의 가전 산업은 한국 일본에 주도권을 내주면서 차세대 전자 기술 개발에서도 뒤처지는 실패를 경험했다.일본 기업의 대약진, 근시안적 미국병(Short-term America) 신드롬에 시달리고 가혹한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미국 기업들은 이사회의 대리인 감독기능에서, 경영진의 전략 경영 지원기능을 확대하는 추세로 변화했다. CEO의 보상체계(스톡옵션 등)를 장기 경영 실적과 연계시키는 등 경영진의 장기 경영 전략을 유인하는 시스템으로 발전시켜 왔다.사외이사의 간섭 때문에 의사결정 지연 등 역기능을 우려하는 입장인 재계는 서구식 이사회의 장점을 긍정해야 한다. 글로벌 스탠더드 수준의 지배구조를 갖추면 투자유치 효과도 극대화할 수 있고, 21세기 경영 패러다임인 글로벌 전략경영 차원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선진국 기업들이 나름대로 장점이 많은 사업다각화를 포기하고 전문화를 추구하게 된 배경에는 CEO의 능력의 한계가 가장 큰 원인인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스피드 경영도 중요하지만 격변하는 경영 환경의 흐름을 정확히 꿰뚫고 미래의 통찰력있는 비전을 추구할 수 있는 경영진과 유능한 이사회의 역량은 기업의 중요한 전략 자산이 되고 있다. 또한 초일류 기업의 경우 최고경영진의 구성이 다양한 기업이 동질성이 강한 경우보다 경영성과가 우수하고 의사결정의 오판 가능성이 감소한다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이와 같은 맥락에서 95년 적자에 허덕이던 소니사가 이사회 빅뱅을 통해 외국인을 이사회에 영입하는 등 경영진과 이사회의 세계화를 추구하면서 회생했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사실 사회여건, 문화배경 등 토양이 다른 환경에서 외국제도를 도입 발전시키는 일은 쉬운 과제가 아니다. 또한 선진국에서 검증된 제도이기 때문에 쉽게 정착될 것이라고 전제한다면 안이한 발상이며 시행착오의 가능성이 높다. 선진국형 제도의 도입과 활성화에 치밀한 준비와 노력, 당사자들의 인식 전환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