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주류, 인터넷 벤처기업 등에 전직하거나 직접 창업

삼성SDS 수석연구원 출신인 김정희씨(44)는지난해 회사를 그만두고 지능형 e-비즈니스솔루션 개발 및 판매 업체인 DNC인텔리전스사를 차려 독립을 감행했다. 주변에서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왜 고생을 사서 하느냐며만류했지만 평소의 꿈을 펼치기 위해 과감하게 변신을 시도했다.대학 졸업 후 7년간 쌍용정보통신에서 근무해온 이종훈씨(33)는 대기업을 뒤로 하고 지난해 7월 신생 전자상거래 업체인 인티즌의D/B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쌍용정보통신에서 과장 승진을 눈앞에 두고 있었던 이씨는장기적으로 볼 때 다소 답답한 느낌을 주는대기업보다는 발전 가능성이 돋보이는 벤처기업에서 승부를 거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따라 직장을 바꿨다.◆ 평생직장 개념 ‘와르르’직장인들 사이에 전직·창업 바람이 거세게불고 있다. IMF 사태 직후만 해도 회사가 직장인을 버리는(?) 상황이 연출됐지만 최근들어서는 오히려 직장인들이 회사를 떠나는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직장인들의 엑소더스(대탈출)가 시작됐다」는 다소자극적인 말로 요즘의 오피스가를 소개한다.직장인 탈출 붐은 우선 정보통신 관련 대기업에서 눈에 두드러진다. 정확한 집계는 아니지만 쌍용정보통신의 경우 지난 1년 사이퇴직한 사원수가 전체 직원의 10%를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대부분 정보통신이나인터넷 벤처기업으로 재취업했거나 자신이직접 창업에 나선 것으로 회사측은 파악하고있다. 이 회사의 한 관계자는 『1999년 하반기 이후 회사에 사표를 내는 사람이 급증했다』며 『회사 입장에서도 나가겠다는 사람을 막을 마땅한 방법이 없어 고민』이라고하소연했다.LG-EDS와 삼성SDS 등도 사정은 비슷하다. LG-EDS는 지난해 연말까지 약 50~60명 가량이퇴사, 벤처기업 등으로 방향을 틀었고, 삼성SDS 역시 개발과 연구직을 중심으로 퇴사자가 속출하고 있다. 특히 일부 부서에서는 퇴사한 직원의 빈자리를 메우지 못해 업무의공백사태마저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대기업 종합상사나 대형 제조업체 등도 임직원들이 떠나기는 마찬가지다. 삼성전자 미디어서비스팀 한상기 부장이 벤처포트를 창업하며 마이웨이를 선언했고, 같은 회사의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전문가 10여명이 정보통신 전문기업으로 옮겼다. LG정보통신에서는 지난해말까지 약 50여명이 벤처기업으로전직하거나 직접 창업에 나서며 회사를 떠난것으로 집계되고 있다.다니던 직장을 뜨는 직장인들은 대부분 30대가 주류를 이룬다. 직급으로 치면 대리와 과장급이 다수를 차지한다. 그렇다고 고참급이소외되는 것은 아니다. 일부 업종에서는 임원급의 전직이나 창업도 활발하다. 한국오라클 조일석 이사가 코코넛이라는 보안솔루션업체 사장에 취임했고, 삼성물산 인터넷사업팀 이금용 이사는 인터넷 경매전문 사이트인옥션의 대표로 이동했다. 또 삼성전자 텔레포니사업본부장을 지낸 오재연씨는 최근 한별인터넷 사장으로 인생의 항로를 바꿨다.전원하 대우정보시스템 사장은 이미지검색전문업체인 서치캐스트를 창업, 홀로서기에나섰다.그렇다면 이렇듯 직장인들이 대탈출을 감행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뭘까. 여기에는 몇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분석된다. 우선 하나는 IMF 사태 이후 급격하게 변화된 직장관이다. 대대적인 구조조정으로 평생직장 개념이 깨지면서 기회만 닿으면 전직이나 창업을 해야겠다는 의식이 폭넓게 번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예를든 인티즌의 이종훈씨는 『요즘에는 대리쯤되면 직장을 옮기거나 창업을 하는 문제를심각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평생한 직장에 몸을 담겠다는 사람은 찾아보기어렵다』고 말했다.◆ 자유·성취감·큰 돈 ‘유혹’벤처기업 특유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성취감역시 대기업 직장인들을 뒤흔든다. 대기업에서는 보통 의사결정 과정이 복잡하다. 그동안 많이 줄였지만 여전히 권위적이고 까다롭다. 반면 벤처기업은 상당히 다르다. 결재라인만 봐도 담당자가 사장에게 직접 보고하는형식을 띤다. 직장 분위기가 자유로울 수밖에 없고, 자신이 회사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성취감 역시 대단하다.이밖에 벤처기업에 몰아닥친 「큰 돈」 바람도 직장인들을 유혹한다. 지난해 들어 코스닥시장이 활황세를 보이면서 벤처기업들의주가가 폭등, 직장인들의 탈출러시를 부추기는 느낌이다. 특히 일부 벤처기업의 경우에는 주가가 액면가 5천원 기준으로 1백만원대를 넘어 우리사주를 받은 직원들을 억대의부자로 만들어 대기업 사원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주가가 2백만원대(액면가 5천원 기준)를 기록중인 새롬기술의 경우 경력에 따라 다소다르지만 대략 3억~4억원대의 주식을 보유중인 사원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다음커뮤니케이션 역시 억대의 주식을 갖고 있는 사원들이 수두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더욱이대부분의 벤처기업들이 스톡옵션제를 도입하고 있어 지금 입사하면 적어도 2~3년 후에는상당수의 주식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하지만 직장인들의 변신이 모두 성공을 거두는 것은 아니다. 전직을 하건 창업을 하건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창업을 하기 위해 직장을 떠났던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경험 부족으로 사업을 시작한지 6개월도 안돼 철수하는 사례가 꽤 있는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이에 따라 일부 회사에서는 퇴직했던 사원들을 일정 기간이 지난 다음 다시 채용하는 사례도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어차피 필요한 인력인만큼 본인이 희망할 경우 회사에돌아올 수 있는 길을 열어놓고 있는 셈이다.특히 전문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정보통신 업계의 경우 예전의 동료가 컴백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쌍용정보통신 인사부의 한 관계자는 『퇴직자 가운데약 절반 가량이 전직이나 창업에 실패하는것으로 알고 있다』며 『회사 입장에서는 자리가 날 경우 굳이 이들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전직 사례 / 이경운 인티즌 개발팀장『선택의 핵심은 자유 아니겠습니까.』인터넷 허브 사이트 인티즌(www.intizen.com)의 개발팀을 맡고 있는이경운(36) 팀장의 벤처 선택론이다.지난 1990년 서울대 계산통계학과를 졸업한 그는 외국계 기업, 대기업을 거쳐 현재는 신생 벤처에서 일하고 있는 벤처지향 인력의 전형이다.「한국프루덴셜생명 시스템 담당(1990년), 포항제철 자회사 포스데이타 개발팀(1992년), 한글과컴퓨터(이하 한컴) 인트라넷 개발팀(1996년), LG인터넷 채널아이 개발과장(1998년), 인티즌 개발팀장(1999년 8월).」그의 지난 10년 이력서다.『좀 거창한 것 같지만 무형의 억압에서 탈피해 자유를 얻고 싶었습니다.』그는 그동안 거쳐 온 회사가 훌륭한 회사들이었지만 자신과는 뭔가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고 말한다.외국계 기업은 합리적이지만 예상외로 보수적이었다. 대기업은 최고를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을 지니고 있지만 결정시간이 오래 걸렸다. 반면에 벤처기업은 순발력있는 의사결정 라인과 개인의 창의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시스템을 지니고 있다.그는 자신을 「시키는 일이면 무엇이든 힘 모아 훌륭하게 처리하는대기업형」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하는 벤처기업형 체질이라고 한다. 벤처행을 택한 근본적인 이유도바로 여기에 있다.첫 직장을 떠나게 된 것은 합리적인 듯 하지만 보수적인 외국계 회사의 사내결혼 사규 때문이었다.이어진 그의 전직 과정에서 4년간의 포스데이타 개발업무를 청산하고 한컴으로 옮긴 것은 말 그대로 모험이었다. 그는 포스데이타보다25%(연봉기준 5백만∼6백만원) 낮은 임금으로 한컴으로 옮겼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맡은 프로젝트가 IMF 여파로 취소되기 전까지 한컴의 생활에 만족했다고 한다. 이유는 그가 원했던 자유가 있었기때문이라는 것.하지만 캐나다 코렐사와의 공동 프로젝트가 무산된 후 그는 안정적벤처를 택했다. 대기업 속의 벤처-LG인터넷에서 그는 안정과 자유를동시에 누렸다고 한다.『LG인터넷의 경우 LG그룹 내에서 가장 자유로운 조직이었다 해도과언은 아니었죠. 하지만 대기업이라는 그늘을 완전히 벗어나긴 힘들었습니다.』그의 역마살(?)은 그가 대기업 사내 벤처기업에서 신생벤처로 옮기도록 만들었다. 완전하게 대기업의 울을 벗어날 수 없는 대기업 벤처보다는 순수한 벤처가 그의 체질에 맞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그는 부장 승진과 스톡옵션을 조건으로 인티즌으로 옮겼지만 전직이유가 이 때문은 아니다. 직급은 올랐지만 임금은 별 차이가 없다.스톡옵션 역시 LG인터넷에서도 받을 수 있었다.『스톡옵션이요? 주면 좋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습니다. 그보단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중요하죠.』그가 벤처를 선택한 이유가 함축돼 있다.★ 창업 사례 / 김상국 시원테크 사장“하고 싶은 일이라 힘들어도 즐겁다”첨단 기술을 보유한 유망 벤처기업으로 주목받고 있는 시원테크(www.c1tech.co.kr)의 김상국 사장(43). 1999년2월 삼성전관(현 삼성SDI) 인사부장 자리를 박차고 나와 달랑 1천9백만원을 들고 시원테크를 설립했다. 거의 빈손으로 홀로서기에 나섰던 셈이다.하지만 창업 10개월이 지난 지금, 시원테크는 자본금 50억원에 직원수 20명의 듬직한 기업으로 자랐다. 그동안 삼성물산 골든게이트,국민기술금융, 와이즈내일인베스트먼트 등에서 선뜻 투자를 하고 엔젤투자자도 유치한 덕분이다.시원테크는 초소형 MP3플레이어 「WOW」, 인터넷 동영상 프로그램,액정표시장치(LCD) 검사장비, 초저가 의료장비의 연구·개발이 주업무다. 하나같이 첨단 기술을 필요로 하는 한편 김사장이 「평소 꼭한번 해보고싶었던 분야」라는 공통점이 있다.김사장이 15년간 몸담았던 회사를 미련없이 떠난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평소 초저가 의료장비를 개발해 「홈닥터 시장」을 이끌어보겠다는 생각이 가장 컸다. 그 이면에는 불우한 어린이들을 돕고싶다는 순수한 의도가 자리잡고 있다. 진단 의료장비가 널리 보급되면 어린이 질병의 예방 또한 가능하리라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분야에 가장 큰 애정을 갖고 있기도 하다.IMF한파 이후 구조조정팀에 참여하면서 느꼈던 고충 역시 그를 조직울타리 밖으로 이끌었다. 인력 조정에 대한 의무와 「악역」에 대한거부감이 상충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지금 하지 않으면 늦는다」는 생각이 그를 지배했다.퇴직을 감행했을 때, 주변에서는 모두 그를 말렸다. 격려보다는 우려를 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았고 전직장에서도 놓아 주지 않으려했다.곡절 끝에 시원테크를 설립하고 나서는 「된다」는 확신이 있는 MP3플레이어 개발·생산에 먼저 뛰어들었다. 지난해 8월 내놓은 「WOW」 MP3플레이어는 손바닥 절반 크기의 초소형 제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각기 특별한 기능을 가진 네가지 타입에 디자인도 우수해 외국바이어들의 탄성을 자아내고 있는 중이다. 이미 해외시장에서 판매호조를 보이고 있으며 내년 봄 국내시장에도 선보일 예정이다.김사장은 각 분야 전문가를 찾아내고 파트너로 만드는 일에 정성을들인다. 핵물리학 전문가인 미국 프린스턴대 박현거 박사, 초저가의료장비 생산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일본 동경의대 주기환 박사 등세계적인 석학들이 그와 손을 잡았다. 물론 시원테크의 전문인력들도 김사장이 공을 들이는 파트너들이다.그는 벌써 2개월째 가족이 있는 부산 집에 가지 못했다. 숙식은 독신 직원들과 함께 회사 근처 오피스텔에서 해결한다. 그나마 2~3일에 한번은 회사에서 밤을 새워야 한다. 10개월 남짓 「사장」생활을하면서 녹녹지 않은 국내외 시장 분위기도 체험했다.「힘들다」는 말이 저절로 나올 법한데도 그는 『즐겁고 보람있다』고 말한다. 아울러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돼 행복하다』는말도 덧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