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블 빠지면서 미즈시마체제 성장 한계 … 채무면제 합의도 ‘미지수’

6천억엔 이상의 눈덩이 채무초과로 붕괴위기를 맞고 있는 대형백화점 소고의 아베부사장(63)이 4월27일 자택에서 자살했다. 그는 “할말이 없다. 사정을 이해해 달라”는 내용의 메모를 부인에게 남겼다. 재무담당인 아베부사장은 회사를 위기에서 구해내지 못한데 대한 죄책감으로 목숨을 끊고말았다. 아베부사장을 비롯한 은행출신 임원들은 회사회생방법을 둘러싸고 미즈시마 히로오회장및 그 측근들과 갈등을 빚어왔다. 아베부사장은 대대적인 구조개혁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실질적인 오너인 미즈시마회장을 상대로 싸움을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출신은행인 일본장기신용은행의 파산으로 은행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다. 고립무원 상태에서 결국 자살을 택하고만 것이다.재무담당 부사장의 자살은 소고그룹의 상황이 최악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경영재건을 위해 4월6일 73개 거래은행에 2001년말까지 총 6천3백90억엔의 채무를 면제해주도록 요청했었다. 그러나 채무면제요청 때 발표한 예상 손실규모가 20일만에 무려 5백억엔이나 늘어났다. 소고는 4월26일 2월 결산기의 채무초과액이 5천8백억엔에 이르렀다고 발표했다. 연결최종 손익은 1천3백76억엔의 적자를 기록했다.미즈시마회장의 지바소고주식 무상양도로 연결대상기업이 지난해 1개사에서 1백27개사로 늘어나면서 매출은 1조54억엔으로 6. 4배나 늘어났다. 그러나 경상손익은 70억엔의 적자로 전락했다. 지바소고는 수많은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그룹의 핵심기업이다.이러한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을 지고 미즈시마회장(88)이 물러났다. 미즈시마회장은 그룹지주회사인 지바소고의 보유주식 51%를 무상 양도키로 했다. 지난 62년 사장에 취임한 이래 40년 가까이 카리스마로 군림해온 미즈시마체제가 막을 내린 것이다.◆ 성장·몰락극 주연은 미즈시마회장소고그룹의 성장과 몰락극의 주연은 미즈시마회장. 그는 주오대학 영법(英法)과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그러나 학자의 길을 포기하고 일본산업육성을 맡은 고교은행을 택했다. 부자나라 부유한 생활을 동경해온 그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틈틈이 모교인 주오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53년에 ‘부동담보연구’로 박사학위를 땄다. 이 논문을 바탕으로 ‘기업담보법’이 제정됐다. 기업담보법은 기업의 자금조달을 지원,전후 고도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그는 법률지식을 활용,경영자로서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소고와는 지난58년 처가쪽인 이타야가에서 경영중이던 도쿄 유락초점의 부사장으로 인연을 맺었다. 적자로 물러난 이타야사장의 뒤를 이어 오너측 대표로 경영에 참여했다. 사장에 오른지 5년만인 67년 지바소고를 내면서 본격적인 확대경영에 나섰다.본사와 별도로 설립한 회사와 계열사간 상호보증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점포확대에 나섰다. 경영에 실패하더라도 소고본사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했다. 주오대학 제자들을 중심으로 한 국철(JR)인맥을 활용,JR주요역 인접지역 출점을 본격화했다. ‘도매상 중시주의’를 내걸고 백화점의 상품구성을 도매상에 맡겼다. 79년에 그룹10개 점포를 목표로 한 ‘그레이트 소고’구상을 달성한 다음 87년에 ‘더블소고’(20개 점포),91년에 ‘트리플소고’(30개 점포)를 실현했다.주거래은행인 장기신용은행과 고교은행이 경쟁적으로 자금을 대줬다. 지방자치단체들도 도심개발을 위해 소고의 출점을 적극 지원해줬다. 버블경기를 타고 수백억엔에 불과했던 매출액이 일본 최대인 1조2천억엔 규모로까지 늘어났다.정계 재계 관계의 거미줄 같은 인맥도 소고성장에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 처가쪽인 가가와현의 기무라 국회의원을 비롯, 고교은행시절때부터 교류해온 기시 다나카 나카소네 후쿠다 등 역대 총리출신들과 인맥을 형성했다. 모교인 주오대학 법학부의 강의로 인연을 맺은 제자들과도 끈끈한 관계를 맺었다.소고는 성장의 모델 사례로 통했다. 그러나 89년의 대점포법 완화논의가 시작되면서 브레이크가 걸렸다. 대규모 소매점의 출점을 억제하는 법률의 완화 철폐는 백화점으로서는 치명타였다. 미즈시마회장은 “무질서한 경쟁을 유발한다”며 법률완화에 반대했다. 그러나 이를 관철시키지 못했다. 엎친데 덥친격으로 버블이 빠지면서 부실채권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92년 미즈시마회장은 확대전략에 메스를 댔다. 그러나 기본노선은 달라지지 않았다. 구조재구축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94년 주거래은행인 니혼고교은행과 일본장기신용은행으로부터 부사장을 수혈받았다. 미즈시마는 회장으로 승진,일선에서 한걸음 물러나는 듯했다. 그러나 미즈시마의 독재는 여전히 계속됐다. 거액의 빚이 경영난을 가중시켰으나 개의치 않았다. “내가 담보를 서고 융자를 부탁하면 은행이 거절할 수 없다”고 호언장담하고 다녔다.소고의 실적은 전후 최악의 소비불황으로 갈수록 나빠졌다. 부채가 무려 1조7천억엔으로 늘어나고 말았다. 결국 채무초과액을 전액 면제해주도록 금융기관에 요청했다. 미즈시마회장이 굴욕을 당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의 하나는 회계제도의 개혁. 회계법인은 그룹회사에 대한 대부나 채무보증에 1천4백억엔 이상의 충당금을 적립했다. 그 결과 1천2백30억엔의 채무초과 상태가 되고 말았다. 계열사의 실적이 소고본사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차단해온 시스템이 무너져버렸다. 법률과 제도의 맹점을 교묘히 활용해온 미즈시마의 연금술에 종지부가 찍히고만 셈이다. 그동안 급성장의 원동력이 돼온 회계제도에 거꾸로 발목이 잡히고 만 꼴이 됐다.미즈시마회장은 매스컴들과의 인터뷰에서 “경영은 정상적이었다. 채무면제 실현에 자신이 있다”고 강변했다. 경영진도 사태해결에 낙관적인 입장이다. 아베 부사장은 26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룹이 직면한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며 채무면제를 둘러싼 금융기관들과의 교섭에 진전이 있음을 내비쳤다. “비채산점포의 정리로 수익이 비약적으로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구조조정의 큰틀을 개혁할 필요도 없다고 설명한다.◆ 경영진 낙관전망에 은행측 불신그러나 이같은 전망은 너무도 낙관적이라는게 은행측의 진단이다. 비채산점포의 정리로 수익이 향상될지는 의문이라는게 은행측 지적이다. 일부 은행에서는 “주주가 납득할 수 있는 재건계획을 내놓지 않으면 안된다”며 추가자료제출을 요구하고 있다. 2차손실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채무면제액의 산정근거와 주거래은행과의 부담배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재건계획발표로부터 불과 3주일만에 채무초과액을 대폭 상향수정한 소고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언론에서도 “소고구제를 위해 은행이 채권을 포기하는 것은 경영책임을 면제해주는 것”이라며 채무면제에 반대논리를 펼치고 있다. 도덕적 해이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은행쪽만 문제가 있는게 아니다. 소고자체에도 넘어야 할 산들이 수두룩하다. 경영체제의 동요가 최대 현안이다. 괴물이라는 별명으로 사내외에 ‘미즈시마교단’을 형성, 군림해온 오너의 퇴진에 따른 공백이 엄청나다. 5월 주주총회 때 이와무라 상담역 등 2명이 퇴진하고 3명이 새로 임원으로 선임된다. 이러한 임원개편과 관련 야마다사장은 “신체제가 아니라 잠정체제”라고 잘라 말한다. 야마다사장 등 경영진도 그룹재편 목표가 확정되는 대로 물러난다. 문제는 그후의 신체제 발족이다. 누가 총대를 메고 어떻게 사태를 수습할 것인가 하는 청사진이 전혀 없다.소고가 계획대로 5월말까지 모든 채권은행으로부터 채무면제 합의를 받아낼지는 의문이다. 일부에서는 2012년2월기에 그룹 채무초과해소를 목표로 내건 재건계획의 수정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한다. 소고의 붕괴가 초읽기에 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