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시중은행 신용등급 하향조정 … 신뢰회복 미흡 ‘경고’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은 지난 97년 한국의 신용등급을 무려 10단계 이상 하향 조정하면서 IMF행을 촉발시켰다. 사진은 IMF 당시 한국의 신용등급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무디스 관계자들.최근 무디스사의 ‘한국은행 분야 ─ 아직도 신뢰성 위기에는 취약’이란 짧은 보고서와 뱅크 워치사의 조흥, 한빛, 외환 등 3개 시중은행에 대한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한 것을 계기로 국제신용평가기관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현재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으로는 유럽의 피치 IBCA와 미국의 무디스, 스탠더드&푸어스(S&P)사를 꼽고 있다. 이들 기관보다 영향력은 덜하지만 외환위기 과정에서 미국의 Duff&Phelps사와 이번에 국내 시중은행에 대한 신용등급을 평가한 Tomson Bank Watch사가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물론 국제금융시장에서 이들 신용평가기관들의 영향력은 매우 크다. 특히 개도국에 대한 투자결정에 있어서 그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아시아 국가를 비롯한 개도국들의 경우 이들 기관들의 평가에 의해 일희일비했던 모습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갈 것으로 보인다.우리의 경우 97년 외환위기에 몰리면서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이 신용등급을 무려 10단계 이상 하향 조정하면서 IMF행을 촉발시켰다.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도 이들 기관들이 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할 때마다 국내 주가가 크게 움직이고 국제기체시장에서 국내기업과 금융기관들의 가산금리 수준을 결정해 왔다.◆ 외환위기 탈출 아직은 안심 못해실제로 이들 기관들이 신용등급을 조정할 경우 개도국들이 물어야 할 가산금리는 평균 0.2∼0.5% 포인트가 변경된다. 특히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할 때가 상향 조정할 때보다 가산금리가 약 0.1% 포인트 가량 더 떨어진다. 그만큼 대외신용을 한번 잃게 되면 개도국들의 부담은 늘어난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그래서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은 공정성, 독립성, 전문성을 생명처럼 여기고 있다. 한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들 기관들도 고객을 대상으로 한 수익기관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외환위기 국가를 중심으로 이들 기관의 공정성에 대해 자주 의혹의 눈초리로 바라본 것도 이런 연유다.국제신용평가기관들이 각국의 신용등급을 평가하는 기준은 의외로 단순하다. 기관마다 다소 차이가 있으나 국가위험, 산업위험, 영업위험, 재무위험을 공통적으로 고려한다.이밖에 각종 기준이나 관행 등이 국제기준에 얼마나 부합되는지 소위 글로벌 스탠더드의 충족도를 고려한다.국가위험은 해당국가의 경제성과와 외환관리능력이 주된 평가대상이다. 산업위험은 산업환경과 산업구조, 산업경쟁에 있어서 특성을 고려한다. 특히 새로운 성장동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신기술과 신상품 능력을 중시해 기업차원이든 경제 전체 차원이든 간에 지속적인 성장기반이 갖춰져 있는지를 평가한다.영업위험은 평가대상국의 시장지위와 사업다각화 여부, 경영진의 능력 등을 평가한다. 마지막으로 평가대상 항목중 가장 중시하는 재무위험은 금융기관과 기업을 중심으로 재무건전도(cash-flow)가 어느 정도인지 평가한다. 특히 포트폴리오 투자에 대해 투자의견을 개진하는 신용평가기관일수록 재무위험을 중시한다.이런 기준마저도 국가위험을 유동성 위험으로, 나머지 위험들은 시스템 위험으로 단순화할 수 있다. 특히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은 유동성 위험을 해결하고 시스템 위험을 치유하는 단계로 이행되는 과정에 있어서 신용등급을 조정할 때 매우 신중을 기하는 것이 과거의 관례다.우리나라처럼 외환위기 국가들의 신용등급을 조정할 때에는 비교적 이 원칙을 철저히 준수한다. 위기극복 초기단계에는 유동성 위험의 해결정도를 우선적으로 고려해 신용등급을 조정한다. 대체로 대외신용을 지킬 수 있는 외화유동성만 확보되면 투자적격 단계로 조정되는 것이 관례다.외화유동성 문제가 해결된 후 추가적인 신용등급의 조정여부는 시스템 위험의 치유정도에 따라 좌우된다. 다시 말해 개혁과 구조조정을 통해 외환위기를 낳게 한 경제체질이 개선됐느냐 여부를 중시한다. 바로 이 점에 있어 최근에 무디스사를 비롯한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이 의문을 제기한 대목이다.문제는 대부분 외환위기 국가들이 유동성 위험을 해결한 후 시스템 위험을 해결하는 단계로 순조롭게 이행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국가에서는 ‘IMF 3년차 증후군’이 나타나면서 유동성 위험단계로 환원(feed-back)되기도 한다. 물론 이 경우 신용등급은 다시 투기등급으로 떨어진다. 물론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기간이 그만큼 지연되는 것은 당연하다.전형적인 예가 중남미 국가들이다. 외환위기를 당한지 무려 20여년 동안 위기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여전히 불안한 것은 이 과정을 순조롭게 이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멕시코의 경우에도 외환위기 초기단계에서 유동성 문제를 잘 해결했으나 시스템 위기를 치유하지 못해 최근까지 금융시장을 중심으로 불안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금년 들어 우리 경제내에서도 이기주의가 팽배해지면서 무역수지가 악화되고 단기외채가 늘어나고 있다. 금년 들어 4월까지 무역수지가 7억7천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0분 1 수준에 그치고 있다. 단기외채 비중도 다시 30%대에 진입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앞서 언급한 각도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특히 최근 들어서는 대외환경마저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미국 금리를 비롯한 국제금리가 전반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국제유가도 서부텍사스 중질유(WTI) 기준으로 다시 30달러대에 진입하고 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교역상대국의 수입규제 움직임은 더욱 강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따라서 경제주체들의 고통이 다소 심하더라도 초기단계부터 유동성 위험과 시스템 위험을 함께 해결하는 것이 근본적인 대안이다.외환위기를 낳게 한 체질을 개선하는 개혁과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규모 경상수지흑자를 기록할 경우 유동성 위험도 함께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이 해당된다.◆ 정책당국, IMF극복 초심으로 돌아가야이런 점에서 어떻게 보면 무디스사를 비롯한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의 평가는 예견됐던 일이다. 만약 신용평가기관들의 평가에 대해 정부가 발끈한다면 ‘사대주의’라는 비난과 함께 궁색한 변명으로 들릴지 모른다. 이미 오래전부터 국내전문가와 언론들이 지적해온 문제이고 외국기관들의 긍정적인 평가를 누구보다 잘 홍보한 것도 정책당국이기 때문이다.정책당국은 이번 신용평가기관들의 평가를 겸허하게 받아 들이고 위기극복 초기단계의 마음가짐(初心)을 갖고 개혁과 구조조정을 좀더 신속하게 추진할 수 있도록 국민들로부터 도덕적 합의(moral suasion)를 구해 나가야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정책당국의 책임은 반드시 전제가 돼야 한다.개혁과 구조조정도 현재 정책여건을 감안할 때 금리를 시장여건에 맞게 현실화시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한 정책수단이다.특히 정책당국에서는 최근처럼 국제금리가 상승해 대내외 금리차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저금리를 고집할 경우 어느 순간에 외환위기에 대한 우려감이 증폭된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