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도덕성의 문제로 물러난 박태준 총리 후임에 지명된 이한동씨의 말과 행동이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다. 새삼 그의 말과 행동을 여기서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의 솔직하지 못함이 주는 폐해는 온전히 국민들의 몫으로 되돌아온다고 생각한다. 뻔한 거짓말을 하고 이를 합리화시키느라 당사자는 당사자대로 힘들고, 또 그런 자들을 상대로 조사하느라 드는 비용, 그것을 방송하는데 사용된 비용, 그것이 전국민에게 끼치는 악영향 등은 너무 많다. 이렇듯 솔직하지 못한 사회 분위기로 인해 우리가 치르는 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초등학교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중학교 진학 시험을 망치고 말았다. 솔직하게 성적표를 보여드리고 향후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하면 별 문제가 없었을텐데 성적표를 보여 주고난 후를 생각하니 마음이 내키지 않아 부모님께 거짓말을 했다. “이번에는 이상하게 성적표를 주지 않네요.” 아는지 모르는지 어머니는 그냥 넘어가는 듯했다. 그때는 학교가 제법 멀고 전화도 없던 시절이라 며칠간은 약효가 유지됐지만 문제는 그후의 긴장이었다. 집에 친구가 놀러 오거나 어머님이 이웃에 마실이라도 가게 되면 혹시 시험 얘기가 나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결국 며칠 못가 들통이 나고 몇배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되었지만 그후엔 발을 뻗고 편히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때 나는 다시는 그런 수지타산 맞지 않는 일은 하지 말자고 결심했다.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거나 큰 깨달음이 있어 결심했다기 보다 거짓말로 인해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너무 많았고 무엇보다 내 마음이 너무 불편했던 것이다.사람들은 왜 거짓말을 하게 될까. 거짓말이 솔직한 것보다 당장은 욕 안먹고 쉽고 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거짓말의 채산성이 나쁘고 그로 인한 후유증이 크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혹은 제도적으로 깨달을 수 있게 한다면 우리 사회는 보다 솔직한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솔직함은 때로 창피하고 체면이 손상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한다. 거짓말을 하게 되면 머리를 바쁘게 돌리면서 합리화를 해야 하고, 알리바이를 위해 각종 증거를 수집하고 입을 맞추는 등의 피나는 노력을 필요로 한다. 또 완료형이 아니고 진행형이라 처음 거짓말을 덮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을 하게 되는 등 그곳에 계속 신경을 집중해야 하지만 솔직함은 그럴 필요가 없다. 사실을 사실대로 얘기했으므로 그 일에 대해서는 잊고 다른 일에 몰두할 수 있다.솔직하고 투명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의 꿈이다. 거짓말이 없는 솔직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각 개인이 거짓말이 별로 수익성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또 그런 사실을 못 깨달은 자들이 사회 고위층이 되는 길을 차단해야 한다. 단 한번의 신용불량으로도 카드를 사용할 수 없듯이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의 공직 진출을 막는 장치가 필요하다. 공직자 재산공개처럼 고위 공무원 후보별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관리하면 어떨까 싶다. 만일 그가 국회의원이라면 그가 제안해 성공한 정책과 실패, 찬성하고 반대한 정책과 그 이유 및 결과, 그가 연설한 내용을 토대로 그의 철학을 분석하고 철학과 행동의 연계성을 조사하고, 약속한 내용과 그 실천 여부를 낱낱이 기록했다가 선거 때나 국회의장 후보로 거론될 때 언론에 이를 공개하는 것이다. 지금의 선거처럼 그야말로 어느 당 소속인지, 학력이 어떤지, 생긴 것은 어떤지만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막연히 솔직하고 맑은 사회를 꿈꾸기 보다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작은 일이라도 하나씩 진행해 보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