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문제 없다’지만 국제금융시장은 예의주시 … 외자관리 조기경보체제 도입 시급

이헌재 전재정경제부 장관이 지난달 열린 국제 재경위에서 단기외채 등 경제 현안에 대해 보고하고 있다.최근 들어 개도국의 단기외채에 대한 국제금융기관들의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단기외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개도국의 단기외채는 대외신용 여부에 따라 자금의 해외유출과 직결되는 문제다. 우리가 외환위기를 당한 것도 총외채 보다는 외채의 질적 관리를 잘못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다시 말해 단기외채가 과도하게 많았기 때문이다.그래서인지 현 정부의 외채정책은 총외채 규모를 줄이기 보다는 단기외채 비중을 낮게 가져가는데 중점을 두어 추진해 왔다. 그 결과 단기외채 비중이 한때는 20% 내외수준까지 떨어졌고 다른 금융위기국에 비해 빨리 외화유동성 확보와 국가신용등급을 투자적격단계로 회복할 수 있었다.문제는 최근 들어 단기외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6월말 현재 단기외채 비율은 33.4%에 달하고 있다. 뉴욕채권단 협상의 성공으로 20%대까지 내려갔던 98년2월과 비교해서는 무려 13% 포인트 이상 증가한 수준이다.사정이 이런데 정책당국의 태도를 보자. 한마디로 단기외채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 문제가 될게 없다는 시각이다. 외환보유고대비 단기외채 비율이 52.4%로 임계수준인 60%를 밑돌고 있는 점을 위안의 근거로 삼고 있다. 단기외채도 주로 무역신용에 기인하고 있어 경기가 둔화되면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정책당국이 이런 시각을 갖고 있어서 그런지 전체적인 사회분위기도 단기외채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히려 국제금융시장에서 우리의 단기외채가 늘어나는 점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것이 이색적이다.그렇다면 동일한 현상을 놓고 대내외적으로 이런 시각차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국제금융시장에서는 한국의 정책당국자가 특정기준에 대해 신드롬에 걸려 있다고 보고 있다. 국제기구들이 내놓는 기준은 참고지표에 불과하다. 따라서 ‘한국의 정책당국자가 외환보유고대비 외채비율이 임계수준보다 낮다고 해서 문제가 없다고 보는 시각은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한다.한국의 대외신용에 문제가 생겼을 때 해외유출 가능성이 있는 자금은 단기외채만이 아니다. 포트폴리오 자금은 더 빨리 유출된다. 개인의 외화거래 자유화 계획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는 한국 국민들의 국부유출도 가세될 가능성이 있다. 외환보유고대비 단기외채 비율이 절대지표가 못되는 것도 이런 연유다.이런 시각에서 단기외채는 잔존변수(stock)가 아니라 유량변수(flow)로 파악해야 한다. 현재 외환보유고는 9백억 달러를 상회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어느 정도 안정된 수준을 확보하지 않았느냐는 심리가 확산되고 있다.◆ 외환보유고 최소 1천억달러 이상 확보돼야그렇지만 최근 단기외채 비중이 33%대에 달하고 국내에 유입된 외국인 주식투자자금이 6백40억달러 내외인 점을 감안하면 대외신용을 안심하고 지킬 수 있기 위해서는 외환보유고가 최소한 1천억달러 이상은 확보돼야 한다.최근처럼 단순히 금융수익을 목적으로 국제간 자금흐름이 주도되는 상황에서는 1년을 기준으로 투기자금과 투자자금으로 분류하는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외환보유고의 질적인 측면에서 건전성은 고사하고 절대규모로도 여전히 부족한 상태이다.무역신용도 그렇다. 물론 정책당국의 시각대로 경기가 둔화되면 무역신용은 줄어든다. 대신 최근처럼 구조조정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환차익을 겨냥한 외국은행의 단기외화차입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국내 금융기관과 기업들도 대외신용 때문에 해외자금조달때 단기자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순채권국이기 때문에 단기외채가 늘어나도 문제가 없다는 시각은 정책당국의 도덕적 해이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아무리 많은 자산을 갖고 있어도 외화가 필요할 때 제때에 매각할 수 없는 점을 경험했다. 자산가치도 위기설이 나돌면 곧바로 급격히 떨어졌다.더욱 우려되는 것은 앞으로 외환보유고를추가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여력이 갈수록 줄어든다는 점이다. 대부분 전망기관들은 내년에 경상수지흑자는 50억 달러에 못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반면 내년부터는 세계은행(IBRD)으로부터 차입한 중장기 구제금융의 상환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예정이다.특히 일부 정책당국자의 시각대로 경상수지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자본수지흑자로 메울 수 있으면 단기외채가 늘어난다 하더라도 외화유동성에는 문제가 없다는 시각은 지극히 위험하다.미국과 달리 우리처럼 소규모 개방국가에서는 자율권을 행사할 수 있는 부문은 경상거래에 국한된다. 외국인투자는 최근처럼 글로벌 투자, 기금(fund)투자가 보편화된 시대에 있어서는 투자환경만 변하면 언제든지 이탈될 가능성이 있다. 이를 믿다가는 큰 화(禍)를 당할 가능성이 있다.현시점에서 우선적으로 정책당국이 단기외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한다. 외채통계를 발표할 때마다 이런 저런 기준을 대면서 ‘문제가 없다’는 식의 평가는 하지 말았으면 한다. 정책평가나 통계에 대한 의미부여는 국민들이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분명한 것은 최근처럼 경상수지가 악화되고 경제활동에서 외국인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는 상황에서는 단기외채를 엄격히 관리해야 한다. 가능한 한 단기외채 비중을 낮게 가져가야 대외환경 변화에 완충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특히 단기외채 관리는 현 정부의 모든 정책실패(policy failure)를 초기대책 부재로 비유하는 ‘바가지론’의 대표적인 사례가 될 수 있다. 그만큼 초기부터 엄격하게 관리해야 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처럼 외환위기를 당한 국가에서는 단기외채 비중이 일단 늘어나면 다시 줄이기가 어려운 하방경직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투자 투자환경 변하면 언제든 이탈이런 인식을 전제로 무역신용은 금융기관들의 외환건전성 기준에 포함시켜 관리해야 한다. 지금처럼 어정쩡한 모습으로는 곤란하다. 다만 사치재 수입신용은 엄격하게 관리하되 수출용 원자재 수입신용은 규제를 완화해 질적인 내용이 감안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구조조정도 수익성 개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최근처럼 단순히 조직과 인원을 줄이는 ‘축소형 구조조정’만으로는 단기자금조달에 의존하는 패턴에서 벗어날 수 없다. 특히 이 부문은 국제금융기관들이 갈수록 우리나라의 구조조정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보내는 가장 큰 요인이라는 점에서 유념해야 한다.마지막으로 외자유출입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해 놓아야 한다. 외자유입은 원칙적으로 자유로운 점을 감안하면 조기경보체제를 도입해 자금의 성격을 사전에 파악해 놓을 필요가 있다. 동시에 가변예치제나 외환거래세를 도입해 한순간 급격한 자본유출 가능성에 대비해 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