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현대중공업 분위기는 약간 침울하다. 임직원의 표정에는 어딘지 냉소적인 그늘이 배어있다. 드러내놓고 속상함을 토로하는 이들도 있다. 잔뜩 기대를 걸었던 현대그룹으로부터의 계열분리가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8월13일 현대 구조조정위원회가 정주영 전명예회장의 자동차 지분 6.1%를 매각키로 발표하면서 현대자동차 계열분리는 확정됐지만 현대중공업의 계열분리 시점은 2002년 상반기로 정해졌다.당초 중공업의 계열분리 시기가 2003년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1년 앞당겨진 것이지만 최근 현대전자와 소송사태까지 벌이면서 조기 계열분리를 원해온 임직원들로선 앞으로 남은 2년이 길게 느껴질 뿐이다. 게다가 현대건설측이 중공업 보유지분을 끝내 매각하지 않고 교환사채(EB)로 발행키로 한데 대해 그룹측의 의도를 잔뜩 경계하는 분위기다.사실 현대상선과 현대건설이 갖고 있는 지분 20%는 부담스런 규모임에 틀림없다. 당장 경영권을 장악하지는 못하지만 기관투자가나 외국인과 연대할 경우 경영권 견제가 가능한 33.3% 이상의 지분 매집은 가능하다. 더욱이 기존 대주주인 정몽준 고문의 지분은 8.1%에 불과한 수준이다. 중공업은 이에 따라 조기 계열분리를 위한 강도높은 수순을 단계적으로 밟아나갈 것으로 보인다. 사외이사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현대중공업 이사회는 이미 독립경영을 선포한 상태인 만큼 거칠 것이 없다는 태도다.◆ 노조도 그룹 부당지원 중단 촉구하며 압박중공업 노동조합도 그룹측에 대한 부당지원 중단을 촉구하며 그룹측을 압박하고 있다. 다만 당장 계열분리를 외치고 나올 경우 겨우 진정된 ‘현대사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또 정몽준 고문은 정치인이라는 ‘약점’때문에 계열분리를 둘러싼 갈등이 자신의 이미지 추락으로 나타날 것을 경계하고 있다.중공업은 그러나 2002년까지는 못기다리겠다는 방침은 확고히 세워놓았다. 그룹 구조조정 전개상황과 여론의 추이를 봐가며 적절한 수단을 모색하겠다는 것이다. 중공업은 필요하다면 실력행사도 서슴지 않을 태세다. 소송을 진행중인 현대전자 자산을 가압류하거나 현대전자 보유지분(9.3%)을 임의로 처분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중공업측은 극단적으로 현대전자를 상대로 적대적M&A를 구사할 수도 있다는 뜻도 내비치고 있다. 동시에 경영권 방어를 위해 19%에 달하는 자사주를 통해 우호세력을 확보하는 방안도 추진할 계획이다. 그룹측 지분이 많긴 하지만 ‘정몽준+자사주+우리사주’ 지분이 효과적으로 연대할 경우 경영권을 유지하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판단이다.이같은 상황이라면 그룹측이 끝까지 중공업을 품에 안고 가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자금력이나 지분구조, 대외 명분까지 어느 것하나 우호적이지 않다. “최종 분리 시기는 우리가 언제 ‘투쟁’의 깃발을 올리느냐에 달려있다”는 중공업 관계자의 얘기는 현대내 ‘권력투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