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스’ 등 교재 히트상품 줄줄 … 창업이후 매년 매출 2배 성장, 종합교육업체 야심

“지난 10여년을 정리하면 소설을 쓸 정돕니다. 그만큼 파란만장했어요. 세번을 망한 끝에 겨우 자리를 잡았으니까요.” 서울시 서초동에 자리잡은 (주)한국교육미디어 최대환(44)회장의 말이다. 출근하자마자 각 팀을 돌며 결재를 하고, ‘도와줄 일이 없냐’는 말로 일과를 시작하는 독특한 경영인이다. 사무실의 자리를 지키는 일도 드물다. 지역총판, 새로운 사업 등을 챙기느라 앉아 있을 짬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이런 파격적인 최회장의 행보에 학습지업계에서는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있다. 바로 ‘케이스’라는 수능전문학습지로 교육시장에 돌풍을 일으킨 주인공이어서다. ‘온몸영업’으로 한국교육미디어를 불과 창업 4년만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교육업체로 일궈냈다.경영실적도 괄목할 만하다. 매출액을 보면 창업 이듬해인 97년에 49억5천8백만원, 98년 1백30억5천8백만원, 99년 2백40억6천4백만원으로 매년 평균 2배 정도 늘었다. 영업이익도 97년 6천3백만원에서 지난해에는 23억4천만원으로 무려 4배 가까이 증가했다. 올해도 성장세는 지속돼 상반기에만 매출 4백억원에 6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실패를 ‘약’ 삼은 오뚝이 인생‘소설을 쓸 정도’라는 파란만장한 최회장의 과거는 3전4기의 좌절과 극복이다. 첫 실패는 지난 80년 공무원 생활을 접고 고향인 경주에서 한 학습지업체의 지사를 운영하면서. 하지만 결과는 빚만 남는 참담한 실패. “세살이 된 딸에게 세발자전거 하나 사주지 못한 아버지”라는 자괴감이 아직도 최회장에게는 쓰디쓴 기억으로 남아 있다.그러나 절망은 희망이란 쪽문을 가진 막다른 골목. “그나마 젊고 건강한 심신이 있다”며 스스로를 격려한 뒤 다시 학습지사업에 뛰어들었다. 경주의 조그만 출판사의 한 구석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회원모집을 위해 발이 부르트도록 다녔다. 평소의 원만한 대인관계 덕분에 차츰 회원이 늘고, 직원도 20∼30명을 데리고 다닐 정도가 됐다. 하지만 2년만에 다시 문을 닫아야 했다. 회원에게 학습지를 제공해야 하는데, 학습지업체가 부도가 난 것이다. “비록 망하더라도 사기꾼이라는 소리는 들을 수 없다는 생각”에 부랴부랴 서울의 다른 학습지업체를 통해 회원들에게 학습지를 공급하기도 했다.85년 사무실을 부산으로 옮기고 전국을 상대로 한 교재판매에 도전했다. 봉고차에 직원을 태우고 직접 운전을 하며 전국을 누볐다. 동가식 서가숙하며 판매에 매달린 끝에 한달만에 3천명의 회원을 모집, 당시 돈으로 1억5천만원의 매출을 올리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을 30바퀴 정도는 돌았다”고 최회장은 회고한다.하지만 교재내용에 대한 불만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교직에 있는 친구들로부터 내용이 부실하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는 최회장은 직원들과 “제대로 된 교재를 직접 만들어 보자”는 결의를 다진다. 3년여의 고생끝에 마침내 회사를 차릴 여력을 갖췄다고 판단, 오랜 꿈이던 학습지 제작에 뛰어들었다. 그게 지난 89년. 서울에 출판사를 차리고 직접 학습지를 만들어 판매했다. 그러나 얼마 안가 다시 1억원의 빚을 안은 채 문을 닫았다. 남은 빚을 갚기 위해 최회장은 다른 출판사에 취업했다. 여기서 5년 동안 연간 1백억원이라는 놀라운 영업실적을 올리면서 다시 바닥을 다졌다. 차츰 자신감이 생기자 예전의 꿈이 되살아났다. 결국 5년간 판매조직을 운영하면서 모은 돈을 모두 털어 새로 회사를 만들고 학습지 제작에 들어갔다. 그게 지난 95년이다.◆ 중국진출·e-비즈 등으로 변신중“세번의 실패를 통해 비싼 수강료를 냈습니다. 하지만 10년 이상의 영업을 통해 25개의 직영총판을 확보한만큼 판매는 자신있었습니다. 게다가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해 어떤 교재가 필요한지도 파악했고요.” 틈새시장인 수능학습지시장을 겨냥, 첫 옥동자로 ‘사탐·과탐(사회탐구·과학탐구) 케이스’를 선보였다.그간의 고생을 위로하듯 반응이 곧바로 왔다. “출판 3개월만에 회원이 12만명을 돌파했을 정도로 ‘대박’이 터졌다”는 것이 최회장의 말이다. 곧 경쟁업체에서도 유사한 학습지를 출판했지만, ‘사탐·과탐 케이스’의 아성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종합학습지 ‘케이스’, 수능총정리집 ‘노스트라다무스’, 수학전문학습지 ‘징기스칸’ 등을 연달아 냈다. 학습지 내용에 충실을 기하기 위해 최고의 필진을 확보했으며, 편집과정을 의무적으로 6개월 이상 걸리도록 하는 등 한치의 소흘함도 용납하지 않았다.덕분에 회원수가 97년 15만명, 98년 20만명, 99년 25만명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지난 6월 한국갤럽의 조사에서는 브랜드파워와 시장점유율에서 후발업체와 현격한 차이로 한국교육미디어가 1위에 올랐으며, 구독하고 싶은 학습지에서도 ‘케이스’가 1위를 차지하는 등 확고한 자리매김에도 성공했다.그러나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오뚝이 최회장은 종합교육업체로의 탈바꿈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 4년간의 고속성장을 “이제 준비가 됐다”고 평가하는 것이나, 코스닥등록을 준비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10여년 이상 ‘교육은 백년대계’라며 매달려온 직원들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자 자신과 동료들이 추구해온 길”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교육관련 e-비즈니스에 뛰어드는 등 2년 전부터 과감한 투자를 해왔으며, 현재 온라인 교육포털사이트를 준비중이다. “완벽을 기하기 위해 점검중이며 내년 2월께 선보일 예정”이라는 것이 최회장의 설명이다.조직의 틀도 다시 짜 (주)케이스, (주)에듀캠프, (주)한교인쇄 등을 분사했다. 사업다각화와 시너지효과를 겨냥한 정지작업을 마친 것이다. 국내 입시시장에서의 성공을 배경으로 해외진출도 적극 추진, 현재 중국의 입시시장을 겨냥한 사업이 진행중이다.“직원들이 자부심을 갖는 최고의 교육전문업체로 자리잡는 것입니다. 내부고객(직원)의 만족이 바로 고객만족의 시작이니까요.” 이제 장외교육(사교육)도 제도적으로 인정받았으면 좋겠다며 최회장이 밝힌 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