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무원·3S·알덱스, B2B전자상거래 등 인터넷기업 ‘뺨치는’ 기술 보유 … 잠재력 차근차근 실현

얼마전 산업자원부가 국내 3백16개 대기업과 중소기업체를 대상으로 ‘e-비즈니스를 얼마나 잘 활용하는지’를 조사해 발표했다. 그 활용도를 수치화한 이른바 ‘e-비즈니스 지수’의 평균은 1백점 만점에 고작 30점을 간신히 넘었을 정도다. 영락없는 ‘낙제점’이다. 그러나 이 점수만을 놓고 국내 제조업체들이 e-비즈니스를 제대로 실현하는 것이 아직 멀었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숫자는 말 그대로 숫자일 뿐이다. 어떤 기업에서건 e-비즈니스와 디지털혁명은 현재의 객관화된 자료로 점쳐질 수 없는 무한한 발전가능성이 잠재돼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기업들도 이 점을 간과하지 않고 꾸준히 변신을 서두르고 있다. 실제로 이런 노력들은 국내 제조업체들에서도 성공사례로 생생하게 증명되고 있다.◆ 풀무원한 대형할인마트로 생식품을 가득 싣고 가는 냉동차량 운전사가 연료를 아끼려고 냉동화물칸의 온도를 기준치 이상으로 높였다. 순간 이 사실이 들통나 소속 운송업체는 유통을 맡긴 생식품업체로부터 ‘퇴출’을 당하고 말았다. 냉동칸의 온도를 올려 생식품의 신선도를 떨어뜨렸다는게 내쫓긴 이유였다. 이 생식품업체는 운전사가 의도적으로 온도를 올렸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풀무원’ 하면 생식품이나 건강보조식품, 혹은 먹는샘물을 만들어 파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제조·유통 업체로만 알려져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 회사가 이미 구축해놓은 위치정보시스템은 운송차량의 위치는 물론 화물칸의 온도까지 실시간으로 추적한다. 이같은 솔루션을 포함한 풀무원의 첨단 물류시스템은 어지간한 인터넷기업 ‘뺨치는’ 수준이다.우선 풀무원의 물류창고엔 주문을 담당하는 직원이 없다. ‘웹오더’라 불리는 웹기반 주문시스템으로 모든 수주업무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예전 같으면 중간유통상인 대리점들이 전화나 팩스로 주문하면 이를 다시 본사에 연락해 필요 수량을 알려줘 물량을 확보했다. 실제로 대부분의 회사들은 지금도 이런 방식으로 수주가 이뤄진다. 이 때문에 본사에 주문을 받는 담당직원이 늘 지키고 있어야 하는데다 넘치고 모자라는 계산상의 오류도 여기저기서 생기기 마련이다.‘웹오더’는 이 문제를 간단히 해결했다. “현재 2백49개 가맹대리점과 협력업체, 현장 영업사원이 전국 어느 곳에서라도 인터넷에만 접속하면 필요한 물량을 주문할 수 있다”는게 정보기술팀 김헌득 과장의 설명이다. 주문뿐이 아니다. 매출확인에서 다음날 발송물량 확인까지 모든게 인터넷에서 일사천리로 처리된다. 이때문에 업무시간이 단축돼 그 결과 절약된 시간만큼 영업 등 일손이 딸리는 업무에 인력을 집중할 수 있다.기업간 전자상거래(B2B)에도 풀무원의 도전은 계속된다. 먼저 풀무원의 e-비즈니스 사업에 대한 백본역할을 하는 관계사 (주)링크웨어가 지난 4월 설립한 식음료 B2B 전문업체인 (주)푸드머스닷컴(www.foodmerce. com)을 통해 싼 값으로 식자재 등을 공동 구매하고 있다. 링크웨어는 풀무원 전산실에서 독립해 SI전문기업으로 성장, 올해 코스닥에도 등록한 기업이다.푸드머스닷컴에는 CM개발, 63씨티, TGI프라이데이, 정글짐, 마르쉐, 삐에뜨로 등이 주주로 참여했다. 식음료 제조업체와 케이터링 업체, 패밀리 레스토랑, 호텔, e-비즈니스 전문기업 등이 식음료 B2B 서비스를 위해 한데 뭉친 것이다. 이들 업체들간의 판매·구매 정보 교류와 공동구매로 원가는 절감되고 서비스 질은 높아졌다. 그 결과 지난 9월 한달 매출만 20억원이 넘는 실적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진행중인 국내 케이터링 업체와 레스토랑 업체들을 대상으로 한 구매 대행서비스는 시작에 불과하다.앞으로 아시아 시장에서 식자재 구매자와 공급자를 잇는 보털 서비스를 거쳐 전략적 제휴를 통해 전세계로 서비스를 넓혀나간다는게 풀무원측의 전략이다. 11월에 개설할 e-마켓플레이스에는 네고기능과 물류기능, e-카달로그 기능도 포함된다. 지난 9월엔 인터넷 자연식품 쇼핑몰 (주)내추럴홀푸드(www.newfood.co. kr)를 만들어 두부와 콩나물에서부터 유기농 과일까지 빠르게는 3시간에서 2일 이내에 전국으로 냉장 배달하는 시스템도 갖췄다.◆ 삼에스코리아3년전인 98년초 중소기업 진흥공단 자동화연수센터에서 중소기업인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넷 기초강좌가 열렸다. 이 수업에 참석한 삼에스코리아 박종익 사장은 그때까지만 해도 ‘컴맹’이나 다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열량계를 만드는 회사에서 인터넷은 물론이고 컴퓨터시스템이 거래업체를 상대로 영업하는데 그다지 필요한게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것 없이도 이제까지 회사를 잘 꾸려서 ‘먹고 살만’ 했던 것도 사실이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며 박사장은 강사에게 물었다. “우리 같은 회사에서도 인터넷이 필요할까요?” 강사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멀지않아 구멍가게에서도 인터넷으로 물건을 들여와 파는 시대가 올 겁니다.”‘구멍가게보다야 나아야지’ 하는 생각이 사장의 머리를 스쳤다. 열량계 제조로 연간 50억원 정도의 물량을 국내 가전회사 등에 납품하는 삼에스코리아 박사장이 기존 사업에 e-비즈니스를 접목하게 된 최초의 동기다.삼에스코리아가 생산·납품하는 공업용 열량계란 대형가전 회사에서 주로 에어컨이나 냉장고 압축기 등의 열량을 측정해 에너지 효율을 판정하는 장치. 이 회사는 현재 연간 30대 정도의 열량계를 비롯해 인공환경시험장치, 항온항습기, 가습기 등을 생산해 수출한다. 3건의 특허와 산자부의 우수기계(EM) 마크도 획득한 기업으로, 올초에는 벤처기업으로 지정받기도 했다.삼에스코리아가 전통 제조업체에서 디지털기업으로 변신하기까지 박사장은 몇번이나 시행착오를 거듭해야 했다. 본격적으로 전자상거래에 진출한건 지난해 초. 냉동공조제품과 부품을 인터넷으로 팔아보기로 했다. B2B 사이트가 질좋고 값싼 제품을 공급하면 파는 쪽이나 사는 쪽 모두가 덕을 볼 것이란 판단 때문이었다. 여기저기 ‘잘한다’는 인터넷솔루션업체를 찾아다니며 홈페이지와 포털사이트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했다.그러나 막상 많은 돈을 들여 만들어놓은 사이트도 찾아오는 업체가 없어 실망하기를 몇 차례. ‘성공할 수 있을까’하고 불안하기도 했지만 투자는 계속됐다. 당시는 IMF 경제위기 여파로 경기도 불안했고 무엇보다 회사 내부에서 나오는 높은 반대의 목소리가 박사장의 발목을 잡기도 했다. ‘왜 사이트를 방문하는 업체가 없을까.’ 박사장은 고민 끝에 ‘기다리는 e-비즈니스’가 아닌 ‘찾아가는 e-비즈니스’ 전략을 세웠다. 우선 한번 참여하는데 5천만~6천만원씩이나 경비가 드는 국제전시회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제품을 싣고 날아갔다. 해외 전시장에서 브랜드를 알리며 빠뜨리지 않고 냉동공조기기·부품 전자상거래 사이트(www.tsref.com) 주소를 내걸었다. 냉동전문학회지 등에도 사이트를 알렸다.지성이면 감천. 해외홍보를 거듭하면서 한해를 보낸 끝에 해외업체로부터 주문을 알리는 e-메일이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다. 대성공이었다. 일본 산요사(SANYO)에 월 6억원어치의 수출을 시작으로 물량을 대기 힘들 정도로 주문이 쇄도했다. 덕분에 98년 23억원이던 매출이 지난해엔 50억원으로 껑충 뛰었고, 대통령상 등 각종 상 세례도 받았다.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박사장은 2004년까지 5백억원의 매출을 이룬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세계 냉동공조 설비 및 부품거래 규모가 연 10억달러. 그러나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기존 오프라인 에이전트들의 반발에 부딪쳐 제대로 된 B2B 포털사이트가 없다는 점에서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는 확신에 따른 것이다.조만간 거래 부품 수를 더욱 늘려 세계 최대의 냉동공조기기·부품 B2B 포털사이트로 키운다는 야심을 차근차근 실천할 방침이다.◆ 알덱스(ALDEX)제철소에서 철이 만들어지기까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다. 가열된 철 속에 들어 있는 산소를 빼내는 일이다. 이때 주로 사용되는 탈산제가 바로 알루미늄. 이 탈산제 알루미늄을 생산하기 위해선 많은 양의 고철 알루미늄 재료가 확보돼야 한다. ‘얼마나 많은 양질의 폐알루미늄을 싼 값으로 살 수 있느냐’가 탈산제 알루미늄 생산업체들의 경쟁력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B2B 전자상거래로 화끈하게 불을 당긴 대표주자가 있다. 바로 알덱스(ALDEX)다.지난 95년 코스닥시장에 등록된 알루미늄 탈산제 생산업체인 덕은산업의 새 이름이다. 연간 7만t의 탈산제를 생산하며 지난해 35억원의 순이익을 낸 탄탄한 기업이다. 이를 토대로 2차전지사업, 전자상거래사업, 바이오관련사업, 창업알선 및 투자관련사업 등 신규사업 추진을 겨냥하고 전략적으로 사명부터 바꾼 것이다.최근에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차세대 전지 2차전지용 전극재료인 수소저장합금을 생산하는 능력도 보여줬다.알덱스가 준비하는 B2B 전자상거래의 핵심은 ‘역경매’ 방식의 리사이클 알루미늄 구매다. 현재 B2B 솔루션 전문업체 아이비젠(IBZEN)과 공동으로 ‘피맥스(PMEX)’란 비철금속 부문 B2B 전문회사를 설립해 사이트 오픈을 눈앞에 두고 막바지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비철금속 B2B 부문에선 국내 최초가 될 알덱스의 수익모델은 ‘똑’ 떨어진다. “우선 알덱스와 국내외로부터 리사이클 알루미늄 제공업체들을 연결·중개하는 에이전트에게 돌아가는 중개수수료를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효과”라고 유성종 업무담당 이사는 설명한다.또 그동안 수십개에 불과했던 미국, 유럽 등지의 해외공급업체들도 수백개로 늘어나 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를 틀 수 있는 이점도 있다.알덱스의 B2B는 리사이클 알루미늄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구리 등 비철금속을 모두 아우르는 B2B 마켓플레이스를 구축한다”는게 최창호 관리담당 이사가 밝힌 중장기 계획이다.★ 인터뷰 / 이창근 풀무원 부사장‘오프 노하우’ 있어야 e-비즈 유리“가상공간은 현실공간을 닮을 수밖에 없는 속성을 지녔습니다. 오프라인에서의 노하우는 그대로 온라인에서도 반영될 수 있습니다.”풀무원의 물류시스템부터 B2B사업에 이르기까지 e-비즈니스 부문을 진두지휘하는 이창근 부사장은 순수 인터넷기업보다 오프라인 경험이 풍부한 제조업체가 e-비즈니스에서 유리한 고지에 있다는 역설을 풀어놓았다.“대부분의 제조업체들이 기존 사업에 e-비즈니스를 접목할 때 성급한 추진과 현실과 동떨어진 무리한 ‘이식’을 강행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이부사장의 지적이다.현재의 경영구조나 마케팅 체계에서 온라인으로 비용이 절감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내 단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모든 직원들에게 컴퓨터를 공급하고 인터넷 사이트에 상품을 올려놓았다고 해서 e-비즈니스가 이뤄지는게 아닙니다.”오프라인의 기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곳은 보강하면서 네트워크가 가능한 곳에 집중하는 선별적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는 뜻이다. 집중과 함께 이부사장이 강조하는 또 다른 e-비즈니스 성공 전략은 이른바 ‘적과의 동침’이라는 전략적 제휴다.“겉으로 보기엔 전혀 이질적인 업종이나 심지어 경쟁관계에 있는 업종이라도 시너지 효과가 있다고 판단되면 사업부문별로 협조해야 한다”는게 이부사장의 주장이다.e-비즈니스의 토대가 되는 네트워크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제조업체야말로 알짜 디지털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으며 전략적 제휴는 이를 이루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