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유럽과 아시아에 유입된 자금이 이탈돼 미국으로 유입되는 현상이 눈에 띈다.최근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자금흐름에 이상징후가 감지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유럽과 아시아에 유입된 자금이 이탈돼 미국으로 유입되는 현상이다. 지난주 유로화 가치가 출범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외국인투자가 주도하고 있는 아시아 증시가 침체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유로화 가치안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연일 힘을 더해가고 있고 아시아 지역에서는 자금이탈과 유동성 위기에 대한 우려가 재연되고 있다.우리나라도 금년 들어 8월까지 1백19억7천만달러가 순유입됐던 외국인주식투자자금이 지난달부터는 유출로 반전되고 있다. 물론 규모면에서는 9월 9억3천만달러, 10월 들어 16일까지 1억8천만달러로 보기에 따라서는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정책당국의 반응도 이와 비슷하다. 최근 자금유출 현상은 대만, 싱가포르, 태국과 같은 아시아 국가에서 일제히 나타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국제유가 상승, 포드사의 대우차 인수포기와 같은 특수한 요인 때문에 외국인자금이 이탈되는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입장이다.그렇다면 정책당국이 이렇게 낙관할 만큼 자금이탈 현상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일까. 일단 국내 주식시장에 유입된 외국인자금의 성격을 보면 거래소의 93% 정도가 주가시세차익을 노리는 포트폴리오 성격이 강하다. 규모면에서도 외국인 비중이 30%에 달해 미국 7%, 독일 10%에 비해 훨씬 높다.문제는 이런 자금이 대부분 최근에 국제간 자금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글로벌·기금투자의 일환이라는 점이다. 이 자금들은 단순히 금융수익을 노리는 투기성이 강한 데다 자신을 믿고 투자한 고객과의 신뢰를 생명처럼 여기고 있다.최근 들어 세계증시가 조정국면을 보임에 따라 이들 기금들이 많은 손실을 보고 있다. 이럴 때 국제금융시장에서는 투자손실원금을 보전하라는 ‘최후의 통첩(margin call)’이 발생한다. 기금운영자들은 이 요구에 반드시 응해야 하기 때문에 미국 이외의 여타 지역에 투자한 자금을 회수하는 것이 관례다.우리 경제여건은 어떤가. 현시점에서 외국인자금을 묶어둘 만한 특별한 유인(誘因)이 없어 보인다. 외국인들이 우리와 같은 개도국에 투자할 때 환차익과 주가시세차익간의 선순환 고리를 겨냥한다. 물론 이 고리는 투자대상국의 통화가치가 저평가돼 있어야 가능하다.실질실효환율을 기준으로 최근 원화 가치는 고평가돼 있는 상태다. 조기경보지수로 보더라도 외환위기 이후 외자이탈 가능성이 가장 높다. 경제여건면에서도 올해 9%에 근접할 것으로 보이는 성장률이 내년에는 5%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내외 금리차도 없는데다 채권시장도 마비돼 있다.결국 외형상으로 지금까지 이탈된 외자규모가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니더라도 외자가 이탈될 수 있는 여건은 충분히 성숙돼 있는 상태다. 만약 이럴 때 무디스, 스탠더드&푸어스(S&P)와 같은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이 국가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할 경우 외자이탈 규모가 의외로 커질 수 있다.더욱이 정책당국이 외환자유화 일정을 당초 계획보다 빨리 가져감에 따라 환율변동폭이 확대되고 환율예측이 어려워지는 등 외환시장의 구조변화가 크게 일고 있다. 반면 대부분 국내기업들은 이런 변화에 대응하지 못함에 따라 환차손이 커지고 외환거래 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못함에 따라 대외거래에 많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외환자유화 추진 이후 외환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가장 큰 변화는 환율변동성이 커지고 있는 점이다. 외환수급이 극히 불안정했던 97년10월부터 98년말 기간을 제외한 외환위기 전후의 환율변동폭을 비교해 보면 시장평균환율제가 시작된 90년3월부터 97년9월까지는 환율변동폭은 0.09%에 불과했다. 반면 99년 이후 최근까지는 0.28%로 위기 이전에 비해 3배 이상 확대됐다.외환자유화 추진 이후 환율예측이 어려워지고 있는 것도 기업들에 이중고(二重苦)가 되고 있다. 전일에 환율이 1% 상승했을 경우 다음날 환율이 상승할 가능성은 외환위기 이전에는 0.32%였으나 외환위기 이후에는 0.19%로 크게 떨어졌다. 그만큼 과거의 환율자료를 이용해 환율예측이 어려워지고 있음을 시사해주는 대목이다.이처럼 외환자유화 추진 이후 구조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무엇보다 경제여건에 따라 유·출입이 심한 자본거래가 외화거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자본거래에 따른 외화유출입 규모가 경상거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30%에 머물렀으나 최근에는 60∼70%에 달하고 있다. 특히 주식, 채권과 관련된 포트폴리오 비중이 전체 외환거래의 25%에 달하고 있다.◆ 외국인 자금 묶을 유인책 없어 난감반면 외환당국은 빈번한 외환거래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동안 외환당국이 환율이 상승할 때 외화를 매도하고 환율이 하락할 때 외화를 매입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외환위기 이전에는 원화 환율이 1% 상승할 때 외환보유고가 1.36% 감소했으나 외환위기 이전에는 0.64% 감소하는데 그쳤다.(LG경제연구원 추정)결국 대규모 자본유출입에 대해 외환당국이 시장개입을 통해 적절하게 중화(Sterilization)시키지 못함에 따라 환율변동폭이 확대되고 환율예측이 어려워졌다고 볼 수 있다.최근 들어 헤지펀드의 활동이 재개되면서 동남아, 중남미 통화가치가 다시 불안해 지고 있다. 특히 원화 환율이 나스닥 시장의 반도체 주가에 동조화 추세를 보이면서 환율변동폭이 크게 확대되고 있다.내년 1월부터는 개인들 외화거래까지 원칙적으로 자유화하는 ‘제2단계 외환자유화 계획’을 실시할 예정이다. 과거 외환자유화를 실시한 국가의 경험에 비춰볼 때 개인들의 외환거래까지 자유화될 경우 환율변동폭이 이전에 비해 2배 정도 확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문제는 대부분 국내기업들이 외환자유화 추진 이후 발생하고 있는 구조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구조조정이 추진되면서 기존의 환위험 관리체계마저 무너져 피부적으로 느끼는 환율변동에 따른 부담은 외환위기 이전보다 큰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국내기업들의 환위험 관리실태를 보면 대기업의 경우 외환관리를 한 곳에 집중시켜 관리하는 사내 선물환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반면 중소기업은 수출보험공사에서 제공하는 환율변동보험제를 이용하고 있으나 대부분 환율변동에 1백% 노출된 상태다.따라서 정책당국은 이럴 때 일수록 시장을 철저히 모니터링해야 한다. 제도적으로도 지금까지 강구해온 장치의 실효성을 점검해 놓아야 한다. 특히 내년 1월 ‘2단계 외환거래 자유화 계획’을 목전에 두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자금이 외자이탈과 상승작용을 일으켜 유출될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한 보완책도 시급하다.유념해야 할 것은 최근에 정책당국자가 취하는 입장이 국민들의 눈에는 ‘펀더멘탈스’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97년3월 태국 바트화 폭락을 계기로 시작된 외자이탈에 대한 우려 목소리를 당시 정책당국자가 우리 경제의 건전성을 들어 무시한 것이 결국은 지금까지 우리가 엄청난 고통과 비용을 치르는 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동시에 정책당국은 외환자유화 추진 이후 나타나고 있는 구조변화에 기업들이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보완책을 시급히 마련해줘야 한다. 현시점에서 대기업 외환관계자와 외환전문가로 구성된 환율자문위원회 제도를 설치·지원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