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한 투자감각·탄탄한 실력 … 남성중심·연공서열 위주 인사관행 허물고 ‘승승장구’

여성이 중요한 업무를 맡고 있다고, 혹은 높은 자리에 올랐다고 호들갑을 떠는 건 어쩌면 촌스런 일이다. ‘여성 사장’ ‘여성 팀장’ 식의 구분도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장 이상 직급의 여성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 곳이 바로 금융계다.우선 요직에 포진한 인력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적다. 대표적 금융기관은 오랜 세월 구축된 조직이 대부분인데 반해 유수의 금융기관에서 여성에게 문을 연 것은 비교적 최근 일이라, 관리자급의 지위에 오른 여성을 찾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그래도 서서히 자리를 잡고 영역을 넓혀가는 ‘여걸’들이 보수적 금융권에서 심심찮게 눈에 띈다. 구조조정 등 삭풍이 몰아치는 가운데서도 이들 여걸들의 입지는 좀처럼 흔들리는 기색이 없다. 우선 외국계 금융사에서 활동이 두드러진다. 외국계 은행은 한발 앞서 여성 인력을 비교적 차별없이 활용했는데, 그들이 낸 성과가 우수해 성공적인 인사정책이었다는게 업계의 중론이다. 씨티은행이 대표적인 경우다.반면 토종 금융사에서는 소매금융 분야에서 여성 인력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현재 한빛은행 15명, 국민은행에 6명 등 여성지점장이 급속히 증가했다. 증권업계에는 젊은 여성 애널리스트가 많고, 영업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한국국제금융연수원 김상경 원장은 “금융계 여성 인력은 세계적으로도 최고수준이다. 이들 대부분은 일중독자이고, 목표 의식이 뚜렷하다”면서 “그냥 일만 열심히 해서 인정받는 경우가 많은데 폭넓은 인간관계와 경험을 보완해 한 단계 더 도약해야할 시기가 아닐까”라고 충고한다. ‘그저 일이 즐거워서’ 타고난 승부사 기질을 발휘하고 있는 금융계의 아마조네스들을 만났다.● 이성남 금융감독원 검사총괄실장‘1호’ 타이틀 달고다닌 한국 금융계 대모이성남(53) 금융감독원 검사총괄실장은 금융계의 ‘대모’이자 ‘산 증인’이다. 금융계 경력 30여년. 이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69년 씨티은행에 입사해 91년 그만둘 때까지 무려 22년을 씨티은행에서 일했다. 처음에는 수출입, 인사, 감사, 차관대출 등의 업무를 두루 맡아보았고 관리직에 올라서는 영업총지배인과 인사총지배인 데이터센터장 등을 거쳤다. 홍콩지사에서 아시아 프로젝트 매니저로도 일했으며 수석 재정담당 부사장으로 씨티은행에서의 이력을 마쳤다.이실장은 자신이 무엇을 하든, 어떤 직책에 오르든 ‘처음’이라는 수식이 따라다녔다고 기억한다. 씨티은행 입사 후 대리가 되었을 때 남자직원들이 식사하는데도 끼워주지 않을 정도였다. 요즘말로 ‘왕따’를 당한 것이다. “1년 넘게 수위 아저씨랑 밥먹곤 했었지”라며 이실장은 웃는다. 부하직원들이 가급적 여자 상사에게 결재받는 것을 피하기 위해 다른 상급자를 찾기도 했다. 그러나 세월이 많이 흘렀기 때문일까, 별 원망이 없는 눈치다. ‘그런 풍토가 이상한 시절도 아니었고, 남자들이 자존심 상해하는 것이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았다’고 말했다.금융경력 30여년 … 남자직원들에 ‘왕따’도이실장이 금감원에 들어온 것은 99년1월. 금감원에서 외국 은행 출신의 외부 인사를 발탁한 것도 흔치 않은 일이었던데다 여성 국장도 처음이라 파격적인 인사로 받아들여졌다. 정운찬 서울대 교수의 추천으로 이헌재 전금감위장이 발탁했고, 그간 금감원이 겪은 풍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같은 업무를 맡고 있다.활기차면서도 부드러운 태도가 몸에 밴 이실장이 온 이후 금감원 검사국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이실장이 이끌고 있는 검사총괄국은 금감원내 10개 검사국의 업무를 조정 기획 지휘하는 역할을 하는데, 업무 성격상 잘했을 때 보다는 잘못 했을 때 티가 난다. 그러나 그간 불협화음 없이 조직을 이끌어 온 것이야말로 ‘화려하지 않은 성과’라 할 수 있다.감독기관에 와서도 이실장은 ‘저는 다른 의견을 갖고 있어요’ 라는 말을 자주 쓴다고 했다.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는게 아니라 다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방법, 또는 달리 볼 수 있는데도 그저 무언의 동의로 넘어가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신선한 공기를 주입하는 방법으로는 그만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이실장은 “내가 이렇게 얘기함으로써 나보다 더 똑똑한 다른 사람도 입을 열게 만드는게 목적입니다. 제가 수행해야 할 역할이 바로 그런 것 아니겠어요” 라고 말했다.● 전영희 주택은행 연수원장세심한 고객서비스·자기관리로 성공전영희(46) 주택은행 연수원장이 주택은행에 입사한 지난 77년은 국내 금융계에 처음으로 여성 공채 인력을 채용하던 해다. 76년 세계여성의 해를 맞아 여성취업이 각나라에서 이슈가 되었고, 남녀 불평등이 심한 한국금융계에 여성인력을 의무적으로 채용하는 과제가 주어졌던 것.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준비하던 전원장은 주택은행 인사과 직원이 제일 친절하다는 이유로 덜렁 이 은행 문을 두드렸고 그런뒤 한눈팔지 않고 23년 동안 근무하고 있다.줄곧 영업부에서 일한 전원장은 지난 96년 경기도 분당 야탑지점장을 시작으로 서울 성산동 지점장, 삼성동 지점장을 거친다. 연수원장에 오른 것은 올해 2월, 금융계 전문인력을 키워가는 연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역할이다.“금융계가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여성들이 넘을 수 없는 장벽은 있습니다. 결국 실력으로 이 장벽을 뛰어넘을 수밖에 없어요. 리스크 관리, 자금회계, 투자은행 등 유망한 분야는 많습니다. 적성에 맞는 분야를 택해 전문지식을 쌓아야 해요. 그래서 어디를 가더라도 경력을 인정받는 여성이 돼야 합니다.”처음 지점장으로 발령을 받고 나서는 일에 대한 의욕이 넘쳐 정말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직원들을 제대로 휴가도 보내지 못했을 뿐더러 자신 또한 휴가를 반납하고 예금유치에 나섰다. 전원장은 지금 생각하면 직원들 휴가 못보낸 것이 못내 가슴 아프지만 20년 동안 금융계에서 쌓아놓은 실력을 그때 원없이 발휘했다고 회고한다.하지만 97년 IMF체제가 시작되면서 기업 부실이 속출해 애써 뚫어놓은 거래선이 하나 둘 끊어졌다. 낙담하는 전원장에게 선배들은 “너무 서두르지 마라. 여유를 갖고 일하다보면 길이 보인다”며 격려해줘 어려운 시절을 넘겼다.한국사회에서 보통 술자리를 통해 영업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전원장은 철저히 실력으로 승부했다. 때론 점심식사를 통해 안면을 넓히고 고객의 생일이나 기업의 창립기념일 등을 외워두었다가 조그마한 선물을 주는 등 사소한 것에 관심을 가져주었다. 반응은 의외로 좋았다. 여성특유의 세밀함을 살려 고객을 관리한 것이다.휴가도 반납한 맹렬여성 … 전문인력 양성 심혈전원장은 지점장 시절 바쁜 와중에서도 서강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하는 등 자기관리에도 힘을 쏟았다. 이젠 주택은행의 전직원들이 금융분야의 전문가가 되도록 도와주는 것이 그의 꿈. “요즘 젊은 후배들을 보면 자유롭고 자신의 의견이 뚜렷해서 보기에 좋습니다. 조직생활을 하다보면 이런 패기가 꺾일 때도 있지만 끝까지 지켜나가기를 바랍니다. 은행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내부구조의 혁신도 필요하지만 사람을 키우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금융 전문가로 구성된 주택은행을 만드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조성신 국민은행 국제업무실 IR팀장투자자·경영진 교감 돕는 국제IR 전문가‘주가가 모든 것을 말한다. 시장만이 유일한 판단 근거다.’ 조성신(43) 국민은행 국제 IR팀장은 은행에 20여년 근무하는 동안 세상이, 그것도 금융계가 참 빠르게 변했음을 실감하고 있다. 현재 맡고 있는 국제 IR라는 업무만 해도 그렇다. 은행의 신용 등급과 해외투자자들을 관리하는 일이 지금처럼 부각되리라고는 상상치 못했던 일이다.조팀장은 99년 국민은행이 골드만삭스로부터 5억달러를 유치했던 협상의 주역이다. 골드만삭스측은 매주 질문 리스트를 보내왔고 열흘만에 답변지를 만들면 책 한권이 됐다. 나중에는 까다롭기로 유명한 골드만삭스측도 훌륭한 협상 파트너라고 추켜세웠다.그러나 이후 한동안 ‘헐값에 넘겼다’는 논란과 비판이 많아 마음 고생도 적지 않았다. 당시 골드만삭스측의 국민은행 주식 인수가격은 1만4천원. “투자 유치 발표 이후로 주가가 치솟았다. 그러자 헐값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투자 유치 후 단기 주가상승은 당연한 일인데도 말이다”라고 조팀장은 설명한다.“사업 파트너끼리는 윈-윈게임을 해야 한다. 투자자들의 목적은 이익이다. 한국 기업에 투자해서 노상 손해만 보라고 하는 것도 우스운 일 아닌가. 그리고 이제 돌이켜 생각해보면 골드만 삭스가 산 가격보다 주가가 낮은 시절이 더 많았다. 우리의 계약은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것이었다고 확신한다”고 조팀장은 잘라 말했다.탁월한 국제감각 … 국민은행 터줏대감조팀장은 국제 IR를 “주주와 회사가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경영진과 교감을 돕고, 발전적인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가끔 ‘주가가 떨어졌는데 IR 한번 해야 되는 것 아니냐’라든가 ‘IR을 했는데 주가가 왜 안 오르냐’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IR는 반짝 효과를 내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은행이 잘한 부분은 충분히 알리고, 단점은 지적받아 고치도록 노력하는 것이죠.”조팀장은 항공대학교와 서강대 경영대학원을 나왔고 97년에는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에서 MBA과정을 이수했다. 국민은행에 들어간 것은 81년. 행내에서는 조사부와 종합기획부 등의 핵심 부서를 두루 거쳤다.“한 10년간은 일중독자 상태였다. 팀장이 된 이후로는 일의 양보다는 효율성을, 팀워크를 더 중시하게 되더라”며 조팀장은 한결 넉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김정숙 대한투자신탁운용 채권운용팀 펀드매니저국내 첫 여성펀드매니저로 ‘주목’근무시간 중에는 펀드 운용하랴, 퇴근 뒤에는 지점에 시가평가 채권 설명회 나가랴, 김정숙(29) 대한투신 채권운용팀 펀드매니저는 요즘 무척 바쁘다. “고객은 물론이거니와 고객에게 믿음을 주어야 하는 영업담당자들도 시가평가채권에 대해 불안감을 갖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확신을 갖게 해야 할 진짜 고객은 바로 우리회사직원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설명회를 갖자고 제안했어요.”이렇게 ‘일을 만들어서’ 즐기고 있는 김펀드매니저는 국내 첫 여성 채권펀드매니저다. 펀드매니저가 되기까지는 쉬운 과정이 아니었다. 김씨는 한국 외대 영어과와 고려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대한투자신탁에 입사, 다른 신입사원들과 마찬가지로 지점 영업부터 시작했다.지점서 일하면서 회사의 채권운용전문가 연수과정에 지원했다. 투자신탁회사 직원들은 대개 운용전문가가 되고 싶어하기 때문에 항상 경쟁이 치열하다. 사내 선발 시험을 통과, 두달여의 교육 과정을 거치고 난 후 치른 자격 시험에서 김씨는 여덟명의 교육생중 수석을 했다. 하지만 고대하던 채권팀 발령은 나지 않았다. 그동안 함께 교육을 이수했던 그녀의 동기들은 모두 차례차례 배치를 받았다.우수한 성적에도 채권팀에 배치되지 않자 김펀드매니저는 법인영업부에 자원했다. “고객의 요구가 무엇인지, 기업의 자금이 어떻게 순환하는지 등 값진 것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계속 채권팀에 지원, 결국 99년3월에 채권지원팀 발령이 났고 올해 8월 펀드매니저가 됐다. 입사 5년만의 일이다. 지금은 1조원 상당의 자산을 운용한다.‘우먼파워’상품 개발, 운용중여성펀드매니저가 있다고 소문이 나니까 ‘그 여성’이 운용하는 펀드에 가입하고 싶다는 고객이 있다고, 지점에서 본사로 종종 전화가 왔다. 그래서 고객들의 요구에 귀기울여 ‘우먼파워’라는 상품을 개발, 운용중이다. 회사에서는 김펀드매니저를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내세운다. 고객이 여성매니저를 찾는 이유를 김씨는 이렇게 분석했다.“우선 고객들이 여성은 더 깐깐하고, 술자리 문화에서 구조적으로 소외되어 있으니까 상대적으로 깨끗할 거라는 편견(?)을 갖고 있는 듯합니다. 또 여성이 투기성이 적고 보수적으로 운용할거라고들 생각합니다. 원래 채권투자자들이 보수적인데다 요즘 시장 상황이 나빠 투자자들이 안전성을 최우선 가치로 보는 흐름과 잘 맞아 떨어진 것 같습니다.”김정숙펀드매니저는 아직 채권팀 막내다. “지금은 단지 여성이라고 주목받고 있음을 잘 안다. 하지만 다음에는 최고의 수익률을 낸 펀드매니저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포부는 ‘금융 시장의 오피니언 리더 중 하나가 되는 것’이다.● 장정자 한빛은행 론리뷰팀장“투명하고 꼼꼼한 일처리로 팀장대열”장정자(48) 한빛은행 론리뷰팀장은 휘하에 35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다. 미국 보스턴 컴퍼니 계열사인 멜론뱅크에서 오랫동안 기업여신 업무를 해온 장팀장은 지난해 10월 한빛은행 론리뷰팀으로 직장을 옮겼다. 장팀장은 “20여년간 미국에서 쌓은 워크아웃, 부실여신 처리, 클린뱅크 운영 등의 경험으로 국내 금융계에 도움을 주기 위해 귀국했다”고 말했다.론리뷰(Loan Review)팀은 기업여신의 적정성 여부를 재검토하는 부서. 김진만 한빛은행장이 기업여신의 투명성을 높이고 부실여신을 방지한다는 목적으로 설립했다. 여신을 담당하는 직원들이 책정한 여신이 적정규모인지 상환능력은 있는지 체크하고, 충분한 담보를 설정했는지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 론리뷰팀의 역할이다.미국 은행에는 대부분 이 팀이 있지만 국내엔 다소 생소한 부서다. 그만큼 여신 관리를 철저하게 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처음 생긴 부서기 때문에 직원들과 마찰도 있었지만 지금은 은행의 투명성을 높이고 고객들에게 신뢰를 받는다는 측면에서 서로 돕고 있다. 장팀장이 부임한 뒤 “부실여신이 나간 적이 없다”는 말을 듣는다.“80년 중반 제가 근무했던 멜론뱅크도 원유가 인상, 부동산 부실여신 증가, 남미지역 여신의 부실화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때 부실자산은 배드뱅크를 만들어 청산하고 클린뱅크를 만들어 좋은 여신만 관리해 위기를 넘겼어요. 멜론뱅크는 그 뒤 주가가 10배 이상 올랐습니다. 한빛은행도 곧 이렇게 될 겁니다.”“여성 전문인 탄생에는 남편 외조 필수”장팀장은 지난 74년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체이스맨해튼 한국지점에서 2년 동안 일한 뒤 미국으로 건너갔다. 멜론뱅크에 입사한 후 피츠버그 대학에서 MBA를 취득하고 미국 공인회계사를 취득하는 등 경력관리를 게을리 하지 않은 결과, 은행에서 인정받는 기업여신 전문가가 됐다.“국내 금융계가 보수적이라고 하지만 여성이 일하기엔 미국보다 더 좋습니다. 미국에선 때론 제가 동양계 여성이라는 이유로 고객사들에 무시당한 경우도 있었어요.”한국은 직원들이 무엇이든 배우려고 하고 실력도 있어 장팀장은 요즘 일하는 보람을 느낀다. 장팀장은 “고객들이 다양해 일이 지루하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라고 말한다. 그는 또 후배들에게 “자신의 한계를 정해놓으면 그 이상 클 수 없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것이 여성직원들에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제가 좋아하는 후배는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얘기하고 일에 철두철미한 사람입니다. 여기에 신뢰할 수 있는 성격을 갖췄으면 금상첨화죠.”육아문제는 남편이 잘 도와주기 때문에 그렇게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는 “여성이 전문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남편의 외조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김윤경 서울은행 국제금융팀장“실력·원만한 인간관계가 생존 좌우”“금융계는 여성이 일하기에 좋은 곳이에요. 입사한 뒤 3년만 잘 견뎌내면 금융 전문가로 성공할 수 있습니다.”김윤경(43) 서울은행 국제금융팀장은 “여성이 금융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실력과 원만한 인간관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여성 신입사원은 실력은 뛰어나지만 조직생활에 실패해 그만 직장을 그만두는 사례가 많다. 이는 남자 직원들처럼 술자리에 자주 참석하거나 상사에게 아첨을 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무엇이든지 겸손하게 배운다는 자세라면 조직에 성공적으로 적응할 수 있다”고 김팀장은 전했다.“나도 입사한 뒤 얼마 동안은 복사하고 커피 심부름했어요. 이런 일 하려고 비싼 학비내면서 대학 다녔나 하는 회의감이 들었죠. 그래도 열심히 했어요. 3년 하니까 슬슬 조직에 적응할 수 있겠더군요. 그때부터 내가 하고 싶은 분야에 경력을 쌓았습니다.”국내 은행 첫 국제금융팀장으로 발탁지난 79년 연세대 독문학과를 졸업한 김팀장은 서울은행 국제부에 입사한다. 국제부는 능력있는 남자 사원들이 ‘우글대는’ 부서여서 실력 있는 여성이라도 견뎌내기 힘든 곳. 김팀장은 이곳에서 만 20년을 근무하고 지난해 3월 서울은행은 물론 국내 은행가에선 처음으로 국제금융팀장에 올랐다. 만 21년을 근무하면서 사표를 쓰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첫 애가 출근하는 자신을 붙들고 “나가지 마, 엄마” 하며 눈물을 글썽일 때는 그만 출근하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지기도 했다. 하지만 시누이의 도움으로 직장 생활을 계속했고, 국내에서 알아주는 국제금융팀장이 됐다.“지금은 회사가 병원에 갈 수 있는 시간을 주었지만, 제가 임신할 때만해도 상사 눈치 보며 병원에 갔어요.”국제금융팀은 해당분야의 전문지식, 언어실력뿐 아니라 은행 전반의 돌아가는 상황과 사회, 문화적인 일들도 신문에 나오는 만큼은 알아야 한다. 상대하는 고객이 외국계 금융인사여서 이들의 질문은 은행 수신고나 고객이 늘었느냐는 질문부터 국내 경제사정과 하다못해 한반도 통일까지 일일이 물어본다.“때론 대답하기 곤란할 정도로 우리 은행사정에 대해 물어봅니다. 이럴 때엔 솔직하게 답하는 것이 최선이에요. 정직한 답변만이 신뢰를 얻을 수 있어요.”서울은행은 독자생존으로 가닥을 잡았다. 도이치 은행에서 내년 4월부터 실사에 들어가고, 구조조정도 진행중이다. 내년 상반기엔 외국인 투자유치 등 제2의 도약을 위해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예정이다. 그는 국내에서 최고의 국제금융팀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 씨티은행은 여성인력 사관학교‘씨티은행 인맥’이 금융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특히 현재 금융계 곳곳에서 요직을 맡고 있는 여성 실력자들은 거의 씨티은행 출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금감원 최초의 여성국장인 이성남 감독총괄실장을 비롯, 최명희 금감원 외국은행 검사팀장도 씨티은행 영업부 총지배인 출신이다. 최명희팀장은 99년 서울은행에서 부행장으로 영입을 시도하기도 했다. 본인의 고사로 무산됐지만 최초의 국내은행 여성부행장이 될 수 있었다. 현재 서울은행 상무인 김명옥씨도 검사업무 총괄이사를 역임한 씨티은행 출신이다. 99년 11월부터 교보생명 금융사업부문을 책임지고 있는 구안숙 상무도 아메리카 은행과 씨티은행에서 이사까지 지냈다.아예 씨티은행 여성 간부 출신들이 모여 ‘인텔맥스’라는 금융컨설팅사를 차리기도 했다. 김재명, 이현주, 김정선, 김희경, 최성희, 김은선, 엄혜선, 신교정, 임은식, 이주식씨 등 씨티은행 경력 15년 이상의 간부들이 모여 98년 창립했다. 이 회사는 금융사의 자금 재무 영업 컨설팅 등 틈새시장을 개척하고 있다.이렇게 씨티출신들이 약진하는데 대해 이성남 금감원 검사총괄실장은 “어떤 일을 맡아도 적응해 나갈 수 있도록 강훈련시키는 씨티의 인사관리 노하우 덕분일 것”이라고 말한다. 씨티은행측은 동등한 기회, 성과주의라는 인사의 기본원칙과 이를 뒷받침하는 평가시스템 덕분에 인재가 많이 배출된 것 같다고 자평한다. 부서배치를 할 때도 우선 부서별 필요 인원을 회사에서 밝히고 직원이 이에 지원을 하는 ‘오프닝’ 방식이다. 본인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하기 때문에 ‘전문가’가 자라기 좋은 토양이라는 것. 오히려 씨티은행측은 내부 인재들이 자꾸만 떠나, 은행서 습득한 노하우를 활용하는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