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동 지음/삼성경제연구소/453쪽/2000년/1만8천원

출판가에서는 ‘불황이면 반성서가 잘 팔린다’는 말이 상식으로 통한다. IMF경제위기 직후, 한국 지식인사회에는 반성 열풍이 일었다. 경제 영역을 넘어 문화, 심지어 민족성까지 들먹이는 평가와 반성들이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그리고 그 후 2년. 경제는 그럭저럭 되살아나는 듯했고, 반성의 목소리는 서서히 사그라져 들어갔다. 그 동안 한 사회학자는 모처럼 맞이했던 반성의 계기가 십분 활용되지 못하고, 제대로 된 반성은 이뤄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 ‘미래를 위한 성찰’을 한 번 해보자는 의도로 책을 준비해왔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나올 즈음 기업이 줄줄이 쓰러지고 환율이 폭등하는 등 다시 2년 전으로 회귀한 것 같은 상황이 연출되고 있으니, 묘한 우연의 일치라고 해야 할까.<선진한국, 과연 실패작인가 designtimesp=20418>는 서울대 사회학과 김경동 교수가 쓴 한국 사회 성찰서다. 정치·경제·사회·교육·사회적 정체성과 갈등 등, 사회학자의 시선은 다양한 주제를 파고든다. 저자는 ‘한국 사회의 문제들’에 대한 이제까지의 접근 방식이 반성 주체의 관심사에 따라 전문적이거나 한정돼 있어 종합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면서, 이에 대한 대안으로 ‘문명론적 성찰’을 제시한다.저자에 따르면 문명론적 접근이란 삶의 총체적인 성격 자체를 돌아보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지금 앞날의 목표를 설정하고자 할 때,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그러나 거창하게 밝혀둔 집필 동기와 실제 내용은 괴리가 심하다. 어떤 대목에서 이 책은 갑자기 사회학 개론서로 둔갑한다. ‘문명’ ‘사회적 갈등’ ‘가산제’ 등을 설명하는 부분이 그 예다. 참고로 이런 주제들은 사회학의 오래되고 중요한 테마들이었다. 그러다가 또 어떤 대목에서는 택시를 타면 쉽게 들을 수 있는 ‘성토’를 넘지 못한다고 여겨질 정도로, 직관과 인상적 관찰에 의존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요컨대 이 책은 직관적 비판과 사회학자로서의 이론적 접근 사이를 종횡무진 오가고 있는데, ‘변증법적’이라고 하기엔 둘을 잇는 어떤 필연성도 보이지 않고 거리가 너무 멀며 느닷없다.그렇다고 흥미로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 사회의 일그러진 교육관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로부터 시작해 교육 제도의 허점과 교육 현장의 난맥상, 교과내용이 만들어진 사회학적 과정까지 추적하는 5장에서는 저자가 말하는 근본적인 성찰이 구현되어 있다. 특히 스스로 대학의 교수이면서 공평한 태도로 연구하지 않는 교수사회와 교수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들을 지적한 대목들은 값지다.글자 그대로 ‘뼈를 깎는 반성’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성찰은 결국 미래를 위한 것이다. 현재를 진단하는 작업은 과거를 정리하는 일보다 어렵고, 미래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이보다 더 어렵다.앞만 보고 질주하는데 훨씬 익숙한 우리 사회의 특성상, 성찰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노 사회학자의 사회 전반에 대한 성찰 결과가 의욕만큼 만족스럽지 못하다 해도, 귀기울이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반성은 계속되어야 한다. 쭈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