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산업 전담·고객유치 마케팅 등 역할 다양 … 재무지식·경험 필수

한국금융연수원 신용분석사 수업“우리도 당연히 애널리스트죠.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자기자본을 중심으로 분석한다면 종합금융회사나 은행 애널리스트는 타인자본을 분석한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입니다.”한빛은행 심상돈 심사역은 이렇게 금융회사의 기업분석가를 명쾌하게 정리했다. 은행을 비롯해 보험, 종합금융회사 등에도 분명 기업분석가가 있다. ‘애널리스트’라는 명칭이 통용되지는 않지만 여신업무를 책임지는 심사역이 바로 그들이다. 은행에 따라 명칭이 조금씩 다르고, 세부 업무에도 차이는 있으나 신용조사역, 신용감사역(Roan Reviewer) 등도 이 범주에 포함된다. 어떤 기업에 돈을 빌려줄 만한지, 기업이 속해 있는 업종의 경기를 전망하고 이 기업이 돈을 갚지 못할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지 등을 예측 평가한다. 그리고 대출 후에 기업을 관리하고 문제가 생겼을 경우 조치를 취하는 것도 그들 몫이다.외환위기 이후 여신담당 심사역 강화사실 ‘금융회사의 한 부서’가 아닌 ‘전문가’라는 의미에서 여신담당자들의 역할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오래된 일은 아니다. 은행 여신 담당은 굴곡이 심하고 사연 많은 부서였다. 오랫동안 ‘대부계’나 ‘당좌계’는 은행내 최고의 부서로 각광받았다. 우리나라 은행의 역사적 특성상, 돈을 ‘골라서 나줘주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업체들 앞에서 큰소리쳤고,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떡고물이 생겼던 것도 사실이다. 담보나 보증 대출 위주였으므로 기업을 분석할 필요도 없었다. 때문에 조사란 요식행위에 그칠 뿐이었고 심사역은 지금과는 다른 역할을 수행했다.그러나 심사역에 대한 이런 인식은 98년을 전후로 급속도로 바뀌었다. 외환딜러나 펀드매니저가 전문직으로 각광받으면서 신탁부나 국제금융부가 더 인기 좋은 부서가 됐다. 기업이 툭하면 ‘거래은행 옮기겠다’는 으름장을 놓을 정도로 위치가 뒤바뀌면서 여신담당자의 기세가 예전만 못해진데다 부실여신이라도 발생하면 져야 하는 책임은 커졌다. 한동안 오히려 여신 담당은 ‘일과 책임은 막중하고 권한은 없어’ 기피 부서가 되기도 했다.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금융회사마다 리스크 관리가 최고경영자의 핵심업무로 부상했고, 금융감독원은 대형 금융회사마다 전담 리스크관리부서를 만들라고 다그쳤다. 당시 금감원이 요구한 ‘여신관행혁신 과제’는 △신용평가등급제 도입 이용 및 활성화 △심사역합의체에 의한 의사결정 등 여신승인과정의 투명성 제고 △여신감리(Roan Rewiew)강화 △담보위주의 여신관행서 탈피해 신용대출 중심의 여신관행 정착 △차주의 채무상태 투명성 확보 △부실징후 조기경보제 도입 △영업점 조직체계의 집중화 △마케팅개념에 의한 여신상담 △여신전문직군제 도입 △여신정보시스템 구축 등이었다. 한마디로 ‘투명한 여신’을 실현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라는 것이었다. 은행 경영진들 사이에 FLC나 ALM 등이 유행어처럼 입에 오르내리게 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이때부터 은행에서는 여신조직 개편과 강화가 대대적으로 시작됐다. 한빛은행이 올해 초 가동하기 시작한 ‘한빛 크레딧 리스크 매니지먼트 시스템(Hanvit Credit Risk Mana-gement System)’이나, 조흥은행의 ‘여신종합관리시스템’ 등이 이때부터 시작돼 최근 구축을 마치고 가동되기 시작한 결과물이다. 이렇게 시스템을 도입, 정착시키기 위한 시도가 계속되면서 서서히 은행의 분석가들이 과거와는 다른 의미에서 다시 주목받게 된 것이다.이들의 역할은 금융사의 규모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대형은행에서는 하나의 특정산업을 전담하고 그에 관련된 여신에 대해 보다 전문가의 역할이 요구된다. 반면 소형은행에서는 개인대출을 포함한 대출 회수 및 고객을 유치하는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전과정에 참여한다. 기본 정보를 수집하고, 재무상황을 검토해 기업의 현재가치와 미래가치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이를 토대로 대출 여부를 판단하게 하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평소 일과다. 대출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대출 여부를 결정하는 협의체도 심사역들로 구성돼 있다.심사역이나 신용조사역은 한국금융연수원에서 교육을 받고 신용분석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금감원에서 실시하는 평가에 합격해야 한다. 이 과정 자체가 대단히 전문적이라거나 특별히 어렵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신용분석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사람만 전국적으로 1만 3천여명이다. 게다가 역사가 일천하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전문가를 찾는 일은 아직 수월치 않다. 이제까지는 국제 금융, 지점 영업 등 무관한 부서를 돌다가 배치를 받으면 연수를 거쳐 심사역이 되고, 다시 몇년 후에는 다른 부서로 옮기는 식의 인사관리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책적으로 전문직군제를 채택하는 은행들이 늘면서 앞으로는 여신분야 업무에만 종사하는 전문가들이 양성될 예정이다. 한빛은행 심상돈 심사역은 “앞으로 은행의 꽃은 리스크 관리다. 이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려면 먼저 기업을 통찰하는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심사역 업무를 통해서 이런 훈련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은행에서 한 번 성공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심사역이 되고 싶어해 행내에서도 인기 1위라는 것이다. 다른 은행에 앞서 신용시스템 개혁에 나선 한빛은행은 선진심사기법 습득을 목적으로 외부 전문가를 영입하기도 했다. 새로 생긴 론리뷰팀을 이끄는 장정자 팀장은 멜론뱅크, 대기업금융팀의 김경은 임성규 선임심사역은 각각 BOA, 크레디리요네 출신이다.여신관리 의지나 인식부족 자주 지적좋은 심사역의 기본은 수치를 해석하는데 필요한 재무 지식과 정보 수집 능력이다. 그러나 기술적인 지식만으로는 여신 결정을 내리는데 충분치 않으므로 채무자의 성격과 채무상환 의지 등을 판단하는 능력과 대출에 포함된 비재무적인 위험들을 냄새맡을 수 있는 분별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인간적인 요소와 경험이 필수적이다. “지금은 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진정한 전문가라고 부르기 위해서는 어느 직종보다 오랜 경험이 필요하므로 노련함을 갖춘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잘 맞는 일”이라고 향영 21C 리스크 컨설팅 이정조 사장은 말했다.조흥은행 경영연구소 윤태순 책임연구원은 “현재 대부분의 국내은행들은 신용평가모형으로 신용평점 모형, 소위 스코어링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대출 여부를 판단하는데 그치고 만다는게 이 모형의 문제점이다. 대출 후 부실화 확률까지 연결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외국의 유명 은행에서는 전문가 판단모형이 주류다. 이는 심사역의 오랜 경험에 의한 판단이 어떤 과학적 계량모델보다도 우월하다는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논리가 통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심사역제도 정착이 선행되어야 한다. 더구나 외압이나 개인의 독단에 의한 부실대출 문제가 아직 뿌리뽑히지 않은 우리나라의 대출관행상 개인의 주관적 판단에 대한 거부감이 심하다.시스템을 갖추었다고 해서 은행의 여신관행 혁신이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이뤄졌다고 말하는 이는 없다. 은행들이 구조조정이라는 현안에 휩싸여 있는 문제가 가장 크다. ‘제도가 의식을 앞서간다’며 의지나 인식부족도 자주 지적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향영 21C리스크 컨설팅 이사장은 “구조조정이 마무리되고 추진중인 시스템이 정착될수록 애널리스트들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될 것”이라면서 “어차피 기업이든 금융기관이든 경제계가 투명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21세기 최고 유망직업이 애널리스트라고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용어설명●FLC (Forward-Looking Criterria)미래 채무상환능력을 고려한 자산건전성 분류방식. 기업의 현재가치가 주가라면, FLC는 기업의 신용위험을 현재 얻을 수 있는 모든 정보를 토대로 미래에 예상할 수 있는 기업의 성과를 판단하는 것이다. 원래는 자산건전성을 분류하고 이에 따라 적립해야 할 충당금의 규모를 결정하기 위한 것이지만, 여신사후관리에도 활용해 은행이 기업감시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 한다.●ALM(Asset Liability Management)자산부채 종합관리. 은행이 리스크를 통제하면서 최대의 수익을 꾀하는 종합적인 시스템을 말한다. 예금이나 대출금리, 기간을 파악한 다음 공정할인율의 변동 등이 있을 경우 은행의 수익이 어떻게 변동될지를 예측해 은행 전반 에 걸쳐 어떻게 조달이나 운용을 할 것인가를 결정한다. 은행 수익은 금리변동에 따라 좌우되게 되므로 리스크 관리기법으로 ALM의 중요성이 높아졌다.대부분 은행을 선두로 보험사 등도 속속 구축하고 있지만 활용에 있어서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