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직 위한 처절한 몸부림 몇개월째 “열려라 참깨야!”

서울 관악지방 노동사무소현장 하나. 2000년12월20일 오후 2시 서울시 구로공단 1지구. 한산한 거리와 달리 관악지방 노동사무소 안은 북새통 그 자체다. 젊은이들은 구직신청서나 인턴지원서를 쓰느라 여념이 없고, 40대 초반쯤 돼보이는 구직자들은 여기저기 붙어 있는 구인게시판을 쳐다보고 있다.4층 대강당엔 1백명 넘는 정장 차림의 젊은이들이 모여 있다. 관악지방 노동사무소 고용안정센터가 매달 여는 ‘구인구직자 만남의 날’ 현장 면접에 참가한 것이다. 이번에 참여한 기업체는 구로공단에서 이름이 꽤 알려진 애경유화로 당일 뽑을 인원은 모두 11명. 차례를 기다리는 박성완(29·가명)씨는 “여기 온 애들은 전부 (대학)졸업예정자 같네요”라며 상대적으로 ‘고참’인 자신을 쑥스러워한다. 그는 “될리가 없죠. 그냥 갈까 봐요”라면서도 자기 차례가 오기를 두시간이나 기다렸다. 박씨는 D대학 재료공학과를 졸업한 이후 3년 동안 뚜렷한 ‘적’이 없이 지내왔다. 처음엔 대우계열사에 들어갔었지만 구조조정으로 자리를 잃었고, 다음번 직장은 맞지 않는 것 같아 그만뒀다. 그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근근이 지냈다.고용안정센터 구인구직자 만남의 날 운영 담당자 권경남씨는 “구인 업체 섭외는 전보다 어렵고, 구직자는 점점 많아졌다”며 “특히 지난 추석 이후로 눈에 띄게 심해졌다”고 설명한다.현장 둘. 직업을 갖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은 인터넷상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인터넷 구직사이트 게시판에 자신의 절절한 사연을 올려놓은 이민호(24·가명)씨. Y대 건축과 졸업예정인 그는 오늘 모 화학업체 고졸 생산직 면접을 보고 왔다. “이제까지 이력서를 한 70, 80통은 쓴 것 같다”는 그는 2000년8월부터 본격적으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지만 11월을 넘겨도 취직이 안되자 고졸을 뽑는 생산직에 지원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대학졸업증명서도 냈지만 지금은 그게 오히려 방해가 됐다는 걸 깨달았다. 취직이 잘 안되면서 여자친구와도 헤어졌다. 결혼한 형과 함께 사는데 집에만 있는 것이 눈치 보여 오전 10시부터 일당 2만원짜리, 꽃집 전단지 돌리는 아르바이트를 한다.노동부 중앙고용정보관리소가 지난 12월14일 내놓은 ‘3/4분기 고용동향’을 보면 취업난에 따라 학력파괴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3/4분기 전문대졸 구직자는 5만5천8백60명, 구인자는 2만3천3백18명으로 2.4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대졸은 더욱 심각해 구인자 8천8백77명, 구직자 6만9백19명으로 경쟁률이 6.9대1이었다. 전문지식 없이 ‘가방끈 긴’ 구직자들에게 취업 대란은 이미 현실이고 이들이 느끼는 구직 체감온도는 엄동설한에 몰아치는 칼바람 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