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설계사 조직은 양보다 질로 ... TMㆍ인터넷 등 새 판매 채널 부상중

신한생명 세종파일럿 지점.세상에는 두 종류의 상품이 있다. 하나는 필요한 사람이 제발로 걸어가서 사는 것. 쌀, 과일, 옷을 살 때 소비자는 스스로 상점까지 방문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는 절대 팔리지 않는 상품도 있다. 사람들은 주말에 백화점 들르듯 보험사에 들러서 보험을 사지 않는다. 보험상품에 관한 인식이 바뀌어서 필요를 느낀 고객이 설계사의 방문을 요청해 구매하기도 한다지만 아직은 예외적인 경우다. 그래서 여전히 보험의 ‘시작과 끝’은 영업이다.국내 보험사에서는 본사에서 좋은 자리로 승진하고 싶으면 반드시 ‘외야’에서 몇년을 보내야 했다. 외야란 영업소장으로 영업 일선에서 뛰는 것을 일컫는 업계의 용어다. 보험 판매의 최전선 경험을 해봐야 보험 업무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 조직 내에서도 가장 목소리 큰 곳은 영업관련부서다. 시대가 조금씩 바뀌어서 규모보다는 수익성을, 자산의 건전성을 중시하게 됨에 따라 이제는 자산 운용의 중요성도 부각되고, 상품 개발 부서도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그렇다고 영업의 중요성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다만 양상이 변하고 있을 뿐.” 삼성생명 관계자는 말한다.영업 패턴의 변화는 외국 보험사들의 본격적인 국내 시장 진출과 관계가 있다. ‘아줌마 조직만 있으면 못할게 없다.’며 밀어붙이던 국내 보험사들은 갑자기 미끈한 차림과 세련된 화술로 고액 종신보험을 판매하는 넥타이부대들의 저력을 목격하게 된 것.아줌마 조직 ‘슬림화’·‘업그레이드’예외적인 경우에 속하던 이같은 종신보험 판매 전담 고학력 남성설계사들은 이제 보편화됐다.삼성생명, SK생명, 동양생명, 신한생명, 흥국생명등이 남성설계사 조직 구축에 뛰어든 뒤 뒤늦게 눈치를 보고 있던 교보생명까지 지난해 하반기 조직 구축을 시작함으로써 이제 나설만한 보험사는 다 나섰다. 일단 이들의 실적이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돼 계속 확장하는 추세다. 게다가 국내 보험시장이 포화상태에 달해, 종신보험만이 차세대 시장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라이프 플래너(LP), 어카운드 리프리젠터티브(AR), 파이낸셜 컨설턴트(FC) 등 회사마다 명칭은 다양하지만 이들의 역할과 조직 구성은 거의 같다. 모두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 푸르덴셜생명을 벤치마킹했기 때문이다.선발부터 6개월 이상 걸리는 교육에 이르기까지 회사는 이들에게 많은 투자를 한다. 수당 체계도 일반 조직과는 전혀 다르다. 유지율, 정착률, 1인당 생산성 등 보험 영업에서 중시되는 각종 지표들이 월등히 높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남성설계사 조직 구축은 실제 영업을 시작하기까지 평균 1년 가량이 소요되느 어려운 작업이다. 더구나 남성설계사 조직을 구축하는데는 경험자가 필수적이다.이러다 보니 종신보험에 관한 한 선발주자인 푸르덴셜과 ING생명 출신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스카우트 전쟁 열기가 뜨겁다. 3억원대라는 엄청난 액수를 제시해가면서까지 국내 보험사들은 유능한 남성 영업조직 구축 인력을 확보하려고 안달이다.푸르덴셜과 ING를 거친 최모씨는 아예 ‘조직 구축 전문가’로 나서, SK생명에서 남성설계사 조직을 형성하는 일을 끝내고 최근 메트라이프로 옮겨가 또 다른 조직 구축작업에 들어갔다. 그는 이 과정서 근 2년 동안 10억원 가량을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대졸 남성조직의 전유물로 인식됐던 종신보험시장에 고학력 여성 전문조직도 등장하고 있다. 메트라이프는 종신보험판매를 전담할 여성 전문조직을 만들기 위해 최근 신문광고도 내고 구인 작업을 시작했다.영업 지원 틈새시장 노린 사업자 속속 등장한편 기존 ‘아줌마 조직’에 대해서는 인해전술로 밀어붙이는 대신 판매인의 자질을 중시하는 것이 업계의 화두다. 조직은 슬림화했다.생명보험협회의 집계에 따르면 보험설계사 수는 4년 동안 11만명이 줄어들었다. 96년 활동 설계사는 모두 35만명이 넘었으나 2000년에는 24만명 선이다. 종신보험이 여기에 불을 붙였다.종신보험은 보험료가 고액인데다, 사망하면 원인에 관계없이 무조건 보험금을 지급하게 되어 있는 구조라 마구 팔았다가는 오히려 보험사에 손해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국내 보험사들은 자사가 보유한 기존 설계사 중에서 교육을 시켜 일정 과정을 통과한 사람에게만 종신보험을 판매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이제는 고부가가치 창출에 역점을 두는 것이다.이와 함께 쫓아다니며 보험가입을 설득하는 방식뿐 아니라 판매 채널이 다양해지고 있다. TM이라 불리는 텔레마케팅의 성장이 특히 주목할 만하다. 현재 TM의 시장점유율은 1%선에 그치지만, 지난해 4월부터 금감원이 그동안 금지해오던 보험 전화가입권유 규제조치를 풀어, 이 분야는 더욱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영업을 지원하기 위한 틈새시장을 겨냥한 사업자도 속속 생겨난다. XML솔루션 개발업체인 인컴아이엔씨는 생명보험사 영업지원 모바일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개발, 본격 판매에 들어갈 계획이다.푸르덴셜 LP출신인 이용진씨는 웹클릭이라는 회사를 차렸다. 여기서 그는 종신보험판매에 대한 강사로 나서 종신보험 영업 노하우에 관해 강의하는 한편, 종신보험판매 과정에서 좋은 설득수단으로 쓸 수 있는 상속세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개발해 보험사 등을 상대로 판매할 계획이다. 그는 종신보험 영업 틈새시장은 무궁무진하다며 “이제는 무조건 밀어붙이고 끝없이 소모하는 영업이 아니라, 시스템에 의해 저절로 굴러갈 수 있는 체계적인 영업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포상제도한국엔 ‘연도상’, 미국엔 ‘MDRT’삼성생명 TM.국내 생명보험사의 5월은 시끌벅적하다. 체육관이나 호텔 같은 넓은 공간에 모여 ‘연도상’이라는 화려한 축제를 연다. 영업이 중요한 업종일수록 이같은 포상 제도가 꼭 있는데, 보험사의 연도상은 다른 어느 업종보다 규모도 크고 중요하게 여기는 행사다. 국내 생명보험사 중 가장 규모가 큰 삼성생명의 경우 6만여명의 설계사를 보유하고 있다. 이중에서 신규계약 체결과 유지율(새로 보험계약을 한 가입자가 보험료를 얼마나 오래 꼬박꼬박 납부하는지를 따지는 비율로, 영업 실적의 중요한 잣대 중 하나다), 수입보험료 등을 기준으로 실적을 평가해 ‘여왕’을 뽑는 것. 가장 뛰어난 영업달인이라는 명예와 함께 보너스나 자동차 같은 부상, 해외연수 기회 등을 받게 된다. 당연히 연도상 한번 받아보는 것이 보험설계사들의 소망이다. 2000년 삼성생명의 연도상에서 여왕으로 뽑혔던 대구지점 예영숙(42) 팀장은 99년4월부터 2000년 3월까지 한해 동안 5백58건의 신계약과 44억원의 수입보험료를 유지했다. 연봉은 4억원이 넘는다.아줌마들에게 연도대상이 있다면, 아저씨들에겐 MDRT가 있다. 백만달러원탁회의(Million Dallar Round Table)는 연간 수입보험료 1백만달러 이상인 설계사들의 모임. 1927년 미국에서 32명의 회원으로 결성돼 현재 60개국 2만1천여명의 회원으로 커졌다. 한해동안 신규 고객을 유치해 얻는 수수료 수입이 연간 5만5천달러(약 6천만원) 이상이 되면 MDRT회원 자격이 주어지고, 이보다 세 배 가량의 실적(9백16만5천달러,1억7천7백만원)이 높은 설계사에게는 COT(Court of Table)라는 명칭이, 6배를 달성하면 TOT라는 명칭이 주어진다. 국내에서는 푸르덴셜생명보험의 이채석 라이프플래너가 유일한 TOT로, 업계의 거물 설계사 중에서도 그는 독보적인 존재로 꼽힌다. 위에서 언급한 삼성생명의 연도상 수상자들도 MDRT회원 자격을 갖고 있는 이들이 다수지만, 국내 보험사들은 이를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취급한다. 최근 국내에도 지난 해 11월 한국 MDRT가 창립됐는데, 삼성 교보 등 국내 보험사들은 불참해 외국사-국내사 간의 신경전을 드러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