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Corporate Executive Officer)는 보통 기업의 최고경영자를 말한다. 때론 회장이 맡기도 하고 때론 사장이 맡기도 하는 기업내 최고 의사결정권자이다. 그 CEO 아래 요즘 또다른 CEO가 뜨고 있다. 기업윤리담당임원(Corporate Ethics Officer). 최고경영자와 구분하기 위해 통상 EO라고 부른다.EO는 10년 전만 해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기업내 보직이다. 그러나 지금은 CIO(Chief Information Officer)와 맞먹을 정도로 친숙해지고 있다. 매사추세츠주 벨몬트에 있는 EO연합회의 회원수가 창립당시인 92년 12명에서 지금은 7백6명으로 늘어났을 정도다. EO라는 이름 말고도 옴부즈맨 등 그런 역할을 하는 직책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EO가 늘어난다는 것은 쉽게 말해 기업들의 윤리의식이 강화되고 있다는 뜻과 같다. 이유는 간단하다. 기업들이 자신들의 강한 힘을 오직 이윤창출에만 쓰고 있다는 여론의 질책을 의식해서다. 사회문제와 환경문제에 대한 책임감을 더욱 느껴달라는 압력이 거세지고 있어 이제 도덕성이 희박한 기업은 기업활동에 어려움을 겪을게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지난 10년간 경기가 활황을 보이면서 기업에 대한 비판이 줄어들었으나 경기가 악화되면 기업들이 갖고 있는 문제점이 많이 드러날 것”이라고 말하는 마켓리서치회사 DYG의 다니엘 양켈로비치 사장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과거에 비해 크게 늘어난 기업들에 대한 사회의 감시가 더욱 강해질 것”으로 전망한다.미 법무부, 윤리규정 마련 기업에 인센티브치열한 경쟁풍토에서 미국 기업들의 엄격한 윤리기준 마련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정부도 기업들의 윤리의식 강화에 한몫하고 있다. 미국 법무부는 지난 91년 윤리규정을 마련해놓고 있는 회사의 기업주는 문제가 발생할 경우 상대적으로 관대하게 처리하겠다는 내부 지침을 만들었다. 이 지침은 얼마전 윤리규정이 없는 회사들의 경우 종업원들이 잘못한 일에 기업주가 개인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내용으로까지 발전했다. 민간단체들도 기업윤리강화를 요구하고 나선다.예를 들어 환경보호주의자 노동조합 등으로 구성된 기업선샤인워킹그룹(The Corporate Sunshine Working Group)같은 곳은 미국 증권관리위원회에 기업들이 자신이 사회적 환경친화적으로 활동한 실천내용을 증권시장에 공시하는 규정을 만들라고 재촉하고 있을 정도다.결국 문제가 야기된 이후에 사태를 해결하기보다는 사전에 윤리적인 무장을 하는게 훨씬 좋다는 생각이 기업들에도 확산되고 있는 셈이다. 미국기업들에 대한 설문조사결과 이사회에서 윤리적인 문제를 다루는 회사가 87년 21%에서 91년에는 41%, 지금은 78%까지 올라갔을 정도다. EO연합회관계자는 “EO의 역할은 이제 사건이 터졌을 경우 이를 해결해주는 기업내 경찰이 아니라 기업의 윤리적인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기업내의 코치”라고 말한다.지난해 북해에서 석유유출을 감추려했다는 비판을 받았던 로열더치셸은 최근 윤리헌장격인 <셸 리포트 designtimesp=20666>를 발간했다. 이 리포트는 “지구와 지구인들의 행복에 기여하면서 이익을 창출한다”는게 기업목표라는 마크 무디스튜어트회장의 약속으로 시작한다. ‘이익창출’만을 목적으로 하는 경영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셸은 리포트에 나와 있는 종업원들의 윤리성이나 오일찌꺼기 청소같은 환경오염 방지에 대한 약속의 실천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회계·컨설팅회사인 KPMG 및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와 감사계약을 맺기도 했다.장난감제조업체인 마텔도 마텔감시위원회라는 사외인사로 구성된 독립된 기구를 만들어 놓고 있다. 3년전에 만들어진 이 위원회는 1년 이상을 휴식시간의 길이, 공장내 화장실 숫자, 해외공장의 미성년자 노동금지 등 2백개 조항의 작업장기준을 만드는데 썼을 정도로 회사와 관련된 윤리기준 강화에 주력했다.직장안에서 종업원에 대한 윤리교육도 점차 강화되고 있다. 군수용품업체인 록히드마틴은 회사내에서 <윤리신문(Ethics Daily) designtimesp=20671>을 발간한다. 종업원들이 직면하는 윤리적인 문제를 주로 다루는 이 신문은 직원들을 위한 윤리교육프로그램에 유용하게 활용된다. 회사측의 신문발행이후 종업원의 절반 이상이 과거의 잘못된 행동을 되풀이 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히고 있다.EO가 부사장직급까지 올라간 비행기제조업체 보잉사의 경우는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직원들이 1년에 최소한 1시간 이상의 윤리교육을 받아야 한다. 교육내용은 아주 구체적인 사례에 대한 학습이다. 예를들어 ‘거래처에서 프로야구 무료티켓을 받았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하는 식이다. 물론 ‘거절한다’가 대답이지만 “왜 받으면 안되는지에 대해 직원들이 서로 대화를 나눠보는 것이 중요하다”(게일 앤드류 부사장겸 EO)는 생각에서 이를 반복 교육한다.지나친 윤리강화 종업원 사생활침해 우려이러한 기업들의 윤리의식 강화노력을 바라보는 시각이 항상 고운 것만은 아니다. 이미지가 나쁜 기업들이 이미지개선을 목적으로 겉으로만 ‘십자가운동’에 동참하는 경향이 크다는 지적이다. 그동안 기업들의 역사를 비추어 볼때 “기업들이 발표하는 활자화된 윤리헌장이 기업속성상 활자를 벗어나기는 매우 어렵다”(기업윤리전문 경영컨설턴트인 바바라 레이 토플러)는 부정적인 시각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기업의 윤리기준강화가 자칫 종업원들의 사생활을 침해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부 회사에선 회사의 e-메일이나 전화를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등 작업장에서의 ‘비윤리적인 행동’을 못하게 할 목적으로 직원들의 e-메일이나 전화통화 내용을 체크하고 비디오 카메라를 설치하는 ‘비윤리적인 조치’를 취하기도 한다. “미국 근로자들은 일하러 갈 때 거의 개인적인 프라이버시를 잃어버린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그러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윤리적인 유혹’을 이기는 것이 쉽지 않은 풍토에서 기업들의 엄격한 윤리기준 마련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 아직 초보적이라는 지적을 받을지는 몰라도 이미 기업정신 세계에서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잡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일반 기업세계에서 일어나는 디지털혁명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