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브라더’는 사생활 침해라는 정보사회의 어두운 미래를 이야기할 때마다 사용하는 상징적인 단어다. 하지만 정보기술의 발달에 따른 미래사회에서 ‘빅브라더’의 출현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빅브라더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전체주의 정부다.빅브라더의 전체주의적 통제는 사생활에 대한 통제를 통해 이뤄진다. 과학기술을 동원해 일상을 끊임없이 모니터하고 염탐한다. 항상 거리엔 경찰, 하늘엔 감시헬기가 떠 있다. 가장 기본적인 감시수단은 텔레스크린이다. 시청자들을 지켜볼 수 있는 일종의 양방향 TV다.기술발달에 의한 도청이나 감시의 문제는 사생활 보호의 중요한 부분임에 틀림없지만 일부에 불과하다.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데이터베이스에 집적하는 과정 자체가 빅브라더 같은 권력에 의해 일관성 있게 추진되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민간 혹은 공공부문에서 필요할 때마다 그때 그때의 가능한 기술수준으로 구축한다. 또한 개개인의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도 ‘빅브라더’의 사악한 의도 때문이 아니라 업무효율을 높이거나 고객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다.국민의 사생활을 지배하려는 권력집단과 이에 맞서는 변호사 이야기를 다룬 영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designtimesp=20680>.데이터베이스와 인터넷의 확산으로 발생하는 사생활의 문제는 ‘빅브라더’ 혹은 ‘리틀브라더’가 지배하는 사회를 향한 움직임이 아니다.물론 사생활의 문제가 감시와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개인정보에 목말라 하는 소비자의 행동을 모니터하는 마케팅 담당자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소비자의 행동과 특성을 알아내 개인별로 필요한 상품을 소개하려 한다. 그러나 마케팅 담당자들은 빅브라더처럼 개성을 억압하는 존재는 아니다. 소비자들의 개성을 연구해 기업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다.인터넷시대의 어두운 모습은 빅브라더가 지배하는 사회보다는 카프카의 소설 <심판 designtimesp=20685>에 가깝다. 미국 뉴저지 세튼홀 법학대학의 다니엘 솔로보(28) 교수는 컴퓨터 데이터베이스에서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심판 designtimesp=20686>이야말로 인터넷시대에 사생활의 문제를 적절하게 포착하고 있다고 그의 최근 논문 <사생활과 권력(Privacy and Power) designtimesp=20687>에서 밝혔다.프란츠 카프카의 <심판 designtimesp=20690>은 주인공 요세프 K가 어느날 영문도 모른 채 체포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카프카의 소설 <심판 designtimesp=20691>은 거대한 관료조직에서 무기력한 개인을 묘사하고 있다. 합리적인 관료조직은 개인의 삶에 대한 세세한 부분까지 문서로 보관한다. 그 문서를 통해 개인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내린다. 그러나 개인은 그 판단에 대해 아는 바도 없고 항거할 능력도 없다. 다만 조직의 프로세스대로 움직일 뿐이다.솔로보 교수는 그의 논문에서 데이터베이스의 보급으로 개개인은 무기력하고 취약한 상태에 빠진다며 사생활 침해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데이터베이스에 개인의 정보를 수집 및 활용하는 과정에서 당사자의 참여가 제한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전화 전기 인터넷서비스 신용카드 보험 등에 가입하는 등 일상생활을 하기 위해선 개인은 신상정보를 제공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일단 외부에 제공한 정보에 대해 당사자는 아무런 통제권이 없다. 또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신상정보가 데이터베이스에 집적되기도 한다. 이런 정보는 기업의 이해관계에 의해 유통되거나 관리자의 부주의로 인터넷에 유출된다. 문제는 일단 유출된 개인정보에 대해서 당사자는 아무런 손을 쓸 수 없다는 데 있다. 어떻게 쓰이며, 이후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다.솔로보 교수는 사생활 보호를 위해선 개인의 정보가 유출될 때는 당사자에게 통보해야 할 뿐 아니라 정보의 활용에 당사자의 참여가 보장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기업이 수집한 개인신상정보는 기업이 소유할 수 없으며 교환 혹은 매매의 대상이 되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