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 벤처 기업 주식을 사고 파는 도쿄증시의 마더스부(部)는 작년 하반기부터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묻지마 투자’를 연상케 할 만큼 벤처 주식 사모으기에 온 정신을 빼앗겼던 투자자들이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너도나도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닷컴 기업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사라지면서 주식 투자자들이 냉정을 되찾기 시작한 것이 주요 원인중 하나였다. 마더스에 상장된 일부 벤처 기업 사장이 폭력조직인 야쿠자 출신이었다는 점도 마더스의 열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같은 분위기는 올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벤처 기업 주식 값들은 상장 초기에 비해 반토막난 것이 수두룩했고 신규 상장하는 것들의 최초 거래가는 공모가를 훨씬 밑도는 일이 다반사였다.그러나 지난 2월26일 벤처 경영자들과 도쿄 증시의 눈길을 끄는 이변이 일어났다. 이날 거래가 시작된 ACCESS(www.access.co.jp)라는 인터넷 벤처의 최초 주식 값이 주당 3백62만엔으로 공모가 2백10만엔을 72%나 웃돈 것이었다. 증시의 관심은 자연 “ACCESS는 어떤 회사길래 마더스가 죽을 쑤고 있는 상황에서도 그렇게 주식 값이 높게 형성됐느냐”로 모아졌다.사정은 그럴만 했다. 이 회사는 휴대전화를 통한 무선 인터넷에서 세계 최고를 자부한다는 일본에서 최정상급의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84년에 설립된 이 회사는 2000년 한햇동안 25억3천4백만엔의 매출을 올리고 4억3천9백만엔의 적자를 냈다. 그저 그런 기업중 하나로 보일 만한 성적이다. 하지만 이 회사는 휴대전화 및 휴대정보단말기(PDA)와 게임기에 사용되는 열람소프트, 다시 말해 브라우저 시장에서 일본 전체의 80%를 장악하고 있다. 일본에서 시판되는 휴대전화중 1백종 이상이 이 회사의 브라우저를 채택하고 있으며 누계로는 2천4백만대 이상의 휴대전화에 공급한 실적을 갖고 있다. NTT도코모의 i모드 휴대폰도 물론 이 회사 브라우저를 사용하고 있다. 한마디로 ‘드러나지 않은 작은 걸리버 기업’인 셈이다.마더스에서 단번에 초우량기업 대접을 받게된 이 회사의 창업주 아라카와 도오루 사장(42)은 어려 보이는 얼굴이지만 사업경력은 벌써 23년째다. 인터넷 붐을 타고 학생 사장들이 속속 등장하지만 그는 자신이야말로 ‘학생 벤처 사장’의 원조라고 자부한다. 도쿄전기대학에 재학중이던 79년 20세의 나이로 설계사무소를 세우고 빌딩관리시스템 설계를 비롯, 가전제품 등의 프로그래밍 사업을 벌여 왔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아르바이트하던 도쿄대 대학원생과 손을 잡고 오늘의 ACCESS를 설립했다. 그리고 전세계에 통용되는 일본발 소프트웨어를 만들겠다는 집념을 키워 왔다. 아라카와 사장은 퍼스널 컴퓨터의 기본 소프트웨어를 미국 제품이 모두 휘어잡고 있는 게 안타까워 미국을 능가할 다른 분야를 파고 든 것이 오늘의 성공기반이 됐다고 털어놓고 있다.“미국과 같은 것을 해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가전, 통신기기제품은 시장이 방대하지 않습니까.”그는 디지털 혁명의 흐름을 정확히 예견하고 여기에 맞춰 휴대전화를 타깃으로 한 제품개발에 전력투구한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 왔다고 믿고 있다. 일본의 증시 전문가들은 2000년 봄을 전후한 시기에 기업을 공개한 인터넷 벤처기업들이 미국의 실리콘밸리 사업모델을 모방한 케이스가 많았다며 고유의 독자적 경쟁력을 갖지 못한 기업일수록 시장에서 푸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컴퓨터보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실용적으로 쓸 수 있는 열람소프트를 만들어 낸 ACCESS의 기술력과 아이디어야 말로 기업가치를 빛낸 큰 자산이라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