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매금융 바탕 위에 투자은행 기능 보강 … 구체적 전략 부재 앞날 불안
‘주사위는 던져졌다’.길고 지루한 논쟁 끝에 정부주도의 금융지주회사가 출범한다. 한빛 광주 경남 하나로종금 등 공적자금 투입 4개 금융사를 자회사로 4월2일부터 공식적인 업무를 시작할 예정이다.지주회사의 본격적인 틀 짜기는 인선으로 시작됐다. 지난 3월12일 윤병철 하나은행 회장이 CEO로 취임했고 사명도 ‘우리금융지주회사’로 확정됐다. 이덕훈 한빛은행장, 전광우 국제금융센터 소장, 민유성 살로먼스미스바지 환은증권 대표를 상근이사로 선임하고 이사회를 통해 전광우씨를 전략담당 부회장(CSO), 민유성씨를 재부담당 부회장(CFO)에 임명했다.금융지주회사의 출범 실무를 지휘했던 설립추진 사무국 양원근 사무국장의 지적대로 지주회사의 핵심은 지배구조의 문제다. 미국에서 지주회사가 발달한 목적이 규제 회피를 위한 것이었던 것과 달리 한국 지주회사의 핵심 쟁점은 부실을 정리하고 기업가치를 높이는 데 주된 목적이 있다. ‘Hands on 모델’, 즉 지주회사가 자회사를 ‘쥐는’ 형태의 금융지주사 모델에 따라 설립추진 사무국은 자회사 행장을 이사회 멤버에서 배제하는 골격을 확정지었다.인선 외에는 이렇다 할 실체를 드러내지 않은 우리금융지주회사의 앞날을 점치는 것은 성급한 작업일 수도 있으나 상존한 불안 요인이 한둘이 아니다.너도 나도 수익성, 실현 방법은우리지주회사의 CEO로 선임된 윤병철 회장은 “한빛의 기업금융과 광주 경남은행의 지역별 소매금융 바탕 위에 겸업화 추세에 맞춰 투자은행의 기능을 보강, 비용 절감과 수익성을 추구하겠다”고 지난 12일 취임사에서 밝혔다. 현재 국내 은행들의 이자부문 수익성은 은행간 경쟁 등으로 98년부터 계속 줄어들어 2000년 예대금리차(신규취급액 기준)는 은행 평균 2.36%에 그쳤다. 이는 미국 은행의 4.62%대에 비해 크게 못미치는 수치. 수수료부문의 수입마저 극히 미미한 상태에서 이자마진이 계속 줄어든 것이다. 평화은행 황석희 행장, 경남 강신철 행장, 광주 엄종대 행장 등 자회사의 새 경영진 역시 한결같이 ‘수익성이 우수한 은행으로 변모시키겠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이를 어떻게 실현할 지에 대해선 구체적인 전략이 서지 않은 상태. IT부문의 중복 투자로 인한 비용 절감을 위해 전산통합 작업을 우선 실시하겠다는 것 외에는 어떤 방법으로 수익성을 개선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이 부재한다는 평이 일반적이다.이와 관련, 삼성경제연구소 현경일 수석연구원은 좀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합병 국민 주택은행이나 다른 시중은행과 비교할 때 가질 수 있는 경쟁력이 무엇인지, 지주회사만이 내놓을 수 있는 서비스는 무엇인지 등에 관한 명확한 비전이나 전략 제시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결국 지주회사 설립의 명분과 정당성에 대한 국민적 이해를 얻어내지 못한다는 것으로 연결된다. 이해관계로 직접 얽히지 않은 측의 정당성도 획득하지 못하면서 당사자인 자회사 직원들의 융합을 어떻게 끌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 현연구원은 “끊임없이 공격대상이 되고 있는 설립 명분에 대해 아직도 정확한 해명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한 예로 미국서 HSBC와 메릴린치는 업무 제휴를 통해 새로운 금융사를 만들어 대리점 형식으로 브랜드를 빌려주고 이곳에서 은행 증권 보험 통합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회사를 2001년부터 출범시켰다. 이처럼 지주회사라는 구조가 달리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줘야만 한다는 것이다.한편 한 시중은행 임원은 “한빛은행은 상업 한일은행이 합병 이후 수익 창출 부분에 갖고 있는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다. 관악지점 불법대출 사건 이후 더 위축된 경향이 있다”며 “이를 지주회사로 가면서 일시에 단절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수익성이란 기본적으로 직원의 열의가 바탕이 돼야 하는데 아직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지배 구조 문제현연구원은 ‘지주회사 모델 자체는 필연적이다’는 전제아래 “출발부터 불안하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인선 문제를 가장 먼저 지적했다. 정부 의지가 부족했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든 인선 결과가 정부가 천명한 ‘국제감각을 갖춘 40대의 개혁적 인물’ 에 크게 못 미쳤기 때문이다. 물망에 올랐던 인물들을 ‘안 끌어왔다면’ 지주회사의 성패가 달린 경영진 구성부터 의지가 흔들린다는 의미로 해석돼 지주회사의 앞날이 순탄치 못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그는 “ ‘못 끌어왔다면’ 결국은 시장논리에 따라 수급이 맞지 않은 것이다. 파격적인 대우를 제시하는 등 가능한 방법을 동원해 성사시켰어야 하고 만약 안된다면 그 이유를 정확히 분석해야 한다. 안된다고 개탄만 하면 될 일인가”라며 “이같은 상황 자체가 상징적으로 시사점을 던져주는 것이 아닌가” 라고 말했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재경부와 금감원간의 보이지 않는 헤게모니 다툼도 지적하고 있다.진행과정의 잡음자회사의 원활한 통합을 통한 시너지 효과 극대화는 우리금융지주회사가 넘어야 할 또하나의 산이다. 지주회사 경영진은 가시적이고 강력한 성과물을 내놓으려고 할 것이다. 반면 직원들은 개인에게 올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현재를 고수하길 원한다. 향후 지주회사는 증권 투신 은행 등의 업무 영역에서 중복을 피하고 기능적인 통폐합을 시도할 계획이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현재 실제로 자회사 내부 및 자회사간의 갈등, 임직원의 도덕적 해이 등 곳곳에서 잡음이 들려오고 있다고 전했다. 딜로이트컨설팅의 한 관계자는“정부의 은행 대형화 정책으로 만들어진 한빛은행은 합병 후 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통합된 프로세스를 갖추지 못했다”며 우려를 표했다. 인력 및 감축을 둘러싸고 예상되는 자회사 노조와 경영진 간의 한판 대결이 출혈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해결될 것인가 역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투명성 우려, 공적 자금 회수는 어떻게우리금융지주회사 역시 다른 은행과 마찬가지로 수익성 제고를 통해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당위 목표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들 은행은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된 데다 여전히 해결해야 할 부실이 있는 만큼 정부가 대주주인 은행으로서 기관으로서의 공공성과 금융사로서의 수익성 창출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익성을 추구하다 보면 기업퇴출이 소홀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덕훈 신임 한빛은행장은 “살릴 기업은 살리고 소생 불가능한 기업은 하루빨리 과감한 결단을 내릴 것이다”라고 의지를 표명했다. 그러나 얼마나 의지대로 추진,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현재까지 예금보험공사와 부실채권정리기금에서 한빛은행 5조2천억원, 평화은행 2천9백억원 등 우리지주회사에 모두 8조5천억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한빛은행의 고정이하 여신 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14.0%에 이른다. 중앙대 송국신 교수는 “합병은행의 출발 조건이 열악한데다 워크아웃 대우사태 투신불안 미래상환능력 기준으로 부실여신 기준 강화 등 수익경영의 악재가 겹쳐 단시간에 수익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부실여신들을 CRV를 통해 털어내게 해 확실한 클린뱅크로 만들어 주가를 상승시키는 것만이 유일한 공적자금 회수 방법”이라고 말했다.현 시점에서 금융지주회사가 선택의 여지가 없는 대안이라는 데는 별 이견이 없다. 이번 프로젝트는 만일 잘못되면 한국금융산업의 실패, 더 나아가 경제 전체의 파국이라는 인식 아래 추진되고 있다. 추진사무국 양원근 국장은 “사무국 직원 모두가 절박한 사명감을 갖고 일했기 때문에 이 짧은 기간동안 회사의 꼴을 갖추는 작업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윤병철 회장이 맡은 역할은 ‘절대절명의 위기에 등장한 마지막 구원투수’로 흔히 비유된다. 금융지주회사를 두고 제각각 견해를 제시하던 학자와 시중은행 관계자들은 ‘던져진 주사위’를 두고 가급적 말을 아끼고 있다. 송교수는 “대우사태 이후 열번이 넘는 자금시장 안정대책을 편 것은 그때 그때는 성공한 듯 보였으나 금융구조조정이라는 큰 싸움에서 패한 것”이라는 교훈을 되새길 것을 주문하면서 금융지주회사에 대해서도 ‘대승적’이고 ‘장기적’인 원칙을 강조했다.우리금융지주회사 경영진 해부윤병철 CEO ‘실무·이론 갖춘 금융통’지주회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경영협의회는 4명의 상임이사와 5명의 자회사 CEO로 구성된다. 우리지주회사의 경영진과 자회사의 행장은 일단 결정됐지만 자회사의 이하 경영진 등 인력 구성이 마무리되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가장 먼저 선임된 우리지주회사의 윤병철(64) CEO는 실무와 이론을 두루 갖추고 금융계 외길을 걸어온 인물이다. 다소 특이한 이력과 개성의 소유자로 평가되기도 한다. 37년 경남 거제 출생으로 부산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60년 농업은행에 입행해 금융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63∼67년까지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과장을 지냈다. 장기신용은행 상무로 재직 중이던 82년 자회사인 한국투자금융 상무로 사실상 좌천당하기도 했으나 91년 당시 사장을 맡고 있던 한국투자금융이 은행으로 전환된다. 하나은행 초대행장을 맡아 97년까지 경영자로 있다 은행이 궤도에 오르자 행장자리를 넘겼다.세간에 한빛은행장으로 유력시되던 전광우 전략담당 부회장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 인디애나대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개발금융을 거쳐 세계은행에서 12년을 근무했다. 98년 이규성 재정경제부 장관 시절 재경부장관 특보로 발탁되면서 주목받았다. 지난해부터 국제금융센터 소장을 맡아 국제감각을 검증받기도 했다.민유성 재무담당 부회장은 82년부터 씨티뱅크 자딘플레밍 증권 리만브러더스 서울사무소 모건 스탠리 증권 서울사무소장 등을 지낸 기업금융분야 전문가다. 54년 서울 출생으로 이사회 멤버 중 가장 젊다. 시티뱅크 시절의 금융지주회사 경험이 인선에 영향을 미쳤다. 경기고와 서강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 뉴욕주립대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취득했다. 정부가 천명한 ‘국제감각이 밝은 40대’ 인물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이다.우리지주회사 및 자회사 경영진 인사는 국민은행 임원의 득세, 장기신용은행 출신들의 두각, 서강학파의 세 과시 등으로 특징지어진다. 황석희 평화은행장, 강신철 경남은행장이 장기신용은행 출신이다. 장은 출신인 윤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진다.또 국민 주택은행의 합병을 감안한 포석으로 국민은행 출신이 기용된 것도 발견할 수 있다. 황행장이 국은투신운용사장, 강행장은 국민은행리스크관리 본부장, 엄종대 광주은행장은 국민리스사장을 각각 지냈다.제일·서울은행의 승부수수신·여신·인사 등 ‘파격적 변신 또 변신’제일은행은 최근 본점 영업점 인테리어를 완전히 바꿨다. 영업장 전체에 테이블을 배열, 상담직원들을 배치한 것이다. 인테리어도 부담이 느껴질 정도로 고급스럽다. 이는 호리에 행장이 일관되게 강조해온 “은행 수익에 도움이 되는 고객 중심의 경영” 실현 전략 중 하나다. 단순 입출금 고객은 자동화 창구나 폰뱅킹 등을 이용하게 하고 은행측에 높은 수익을 안겨 줄 고객을 주로 상대하겠다는 의도다.기업여신 비율은 20%로 낮추고 소매금융에 치중하겠다는 게 올해 제일은행의 여신전략. 정부의 제일은행 매각의 명분이 선진금융기법을 배워 국내 금융관행 혁신의 전도사 구실을 해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면 애초의 의도와는 다른 길을 가고 있는 셈이다. 국내 은행들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분야가 바로 기업금융이기 때문이다. 소매영업은 이미 포화경쟁 상태이기 때문에 제일은행의 전략이 유용한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다. 부실채권을 정부가 사줘서 대손충당금을 6백30억원만 쌓아도 됐기 때문이긴 하지만 어쨌든 99년 1조46억원 적자에서 바로 다음해 2000년 순이익 3천64억원으로 돌아섰다.15조8천억원이라는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됐고 98년 정부가 뉴브리지 캐피털에 7천억원을 받고 지분 51%와 함께 경영권을 넘긴 이 은행은 최근 임원에게 스톡옵션을 부여하는 문제를 두고 예금보험공사와 마찰을 빚고 있다. ‘수익 우선경영’ 원칙과 ‘정부 및 국민정서’ 사이의 균형에 이 은행의 성패가 달려있다는 지적이 많다.또하나의 부실은행이던 서울은행은 외형적으로 제일은행과 비슷한 길을 가고 있다. 역시 ‘수익경영’을 목표로 3개월 평균잔액 20만원을 유지하지 않으면 이자를 한푼도 주지 않기로 했다. 강정원 행장의 파격적인 인사와 개혁에 대해 기대를 걸고 있다. 서울은행은 정부와 맺은 양해각서에 따라 오는 6월말까지 해외매각을 성사시키지 못하면 금융지주회사에 편입될 예정이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