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불황의 터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계를 꾸려나가기가 어렵다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각종 지표들도 아직은 본격적인 경기회복과는 거리가 멀다는 신호다. 피부에 직접 와 닿는 물가는 가파르게 올라 가계에 주름살을 주고 있으며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다시 불면서 실업자들도 1백만명을 넘어섰다. 주머니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생활형편에 대한 평가도 평균 이하에서 헤매고 있다. 50미만이면 전년대비 생활형편이 악화된 것을 의미하는 생활형편지수는 수년간 평균치인 50이하에서 맴돌고 있다.(그래프 참조) 이래저래 가계부를 열면 찡그릴 수밖에 없는 경제상황이다.사정이 이렇다보니 자연 살림에 조금이라도 보탬을 주려는 마음으로 무언가 해보려고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마련이다. 덕분에 불황에도 불구하고 유난히 문턱을 넘나드는 발길이 분주한 곳들이 있다. 다단계 판매업, 프랜차이즈업, 경마 경륜 복권 카지노 등 일확천금을 거머쥐겠다는 사람들이 몰리는 사행산업, 미래에 조금이라도 기대보려는 사람들이 붐비는 점비즈니스 등이 그런 예다.이 가운데 가장 크게 ‘불황은 없다’를 외치는 곳으로 다단계 판매업을 들 수 있다. 지난해만도 서울 2백65개 업체, 지방 32개 업체 등 총 2백97개 업체에서 모두 2조12억원어치를 판매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는 99년의 총판매액 9천1백46억원에 비해 2배 이상 뛰어오른 실적이다. 업계에서 ‘금자탑을 이룬 해’라는 자축의 평가가 나왔을 정도다. 올 들어서도 지난 3월15일 현재 전국에서 30여개업체가 늘어났다. 회원수도 1백50여만명으로 지난 98년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했다. 시장규모도 3조원대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때문에 물 좋은 국내시장을 노리고 속속 한국에 진출하는 외국업체들도 늘고 있다.‘대박’을 꿈꾸며 주머니를 털어 배팅에 열중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사행산업도 불황과는 거리가 멀다는 표정이다. 3월 들어 정선카지노의 경우 하루평균 2천5백여명이 북적거리며 경마장을 찾는 인파도 하루평균 13만1천명에 이른다. 한국마사회 S지점(장외경마장)의 한 관계자는 “경기불황임에도 항상 적정수용인원보다 5백∼1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려 안이 꽉 찰 정도”라고 말했다. 경륜과 복권도 마찬가지다. ‘돈 놓고 돈 먹기’로 향하는 행렬은 결코 줄어들지 않을 추세다.프랜차이즈업체도 불황이 오히려 사업에 도움이 된다는 분위기다. 소자본창업이라도 해서 어려운 경기를 견뎌보겠다는 실직자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덕분에 지난 97년 5백여개에 불과하던 프랜차이즈업체 수가 올해 2천여개로 늘어났으며 가맹자 수도 50만명에 이를 정도로 팽창했다. 닭갈비 프랜차이즈사업을 하는 류모씨는 “불경기일수록 보다 적은 비용으로 가게를 차리려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닭갈비 프랜차이즈의 인기가 많이 떨어졌지만 최근 다시 문의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점집들도 마찬가지다. 사주카페나 인터넷 역술원들은 경기와는 무관하듯 붐빈다. 기존 철학관의 복비보다 저렴한 값에 상담을 받을 수 있고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 때문이다. 인터넷에 역술상담을 하는 사이트만 2백70여개를 웃돌 정도다. 경기도 성남 O철학원의 손모씨는 “기존 역술원의 경우 손님이 다소 줄어드는 모습이지만 사주카페나 인터넷 역술사이트 등은 오히려 호황”이라고 말했다.그러나 이처럼 불황에도 잘나가는 업체들의 웃음 한편으로는 이를 우려하는 눈길도 적지 않다. 연세대 심리학과 이훈구 교수는 “경제사정이 나빠지면 삶에 대한 만족도와 질이 떨어지고 자기통제에 대한 과신이나 환상에 쉽게 빠져든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지나치게 돈에 집착하게 돼 결국 폐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커진다는 것이다. 이범용신경정신과 이범용 원장도 “경제적인 스트레스로 건전하지 못한 희망, 현실로부터 도피하고픈 마음, 쉽게 돈을 벌고픈 마음 등 취약한 부분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며 “정서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의 경우 병적으로 몰입되는 부작용이 있다”고 지적했다.불황기에는 어떤 일이?담배꽁초 길이 짧아지면 ‘불황’경제학에서는 경기를 호황-후퇴-불황-회복의 4가지 국면으로 설명한다. 이 중 불황기에는 후퇴기에 진행된 생산 소비 투자 소득 고용 기업이윤의 감소가 계속되며 물가 주가 임금 이자율 등도 내림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 경제학 교과서에 실린 정설이다.하지만 일반인들이 이런 교과서적인 경기진단을 하거나 어려운 이론을 토대로 경기를 이해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 게다가 딱딱한 숫자까지 나오면 더욱 골치 아프게 느껴진다. 그래서 경험론으로 실마리를 푸는 경기진단이 오르내리기도 한다. 거리에 자동차가 많아지거나 신차 발표가 늘어나면 경기가 좋아지거나 좋은 상태이고 자동차 무이자 또는 저리의 할부판매가 늘어나면 경기가 좋지 않다는 식의 이야기들이다.이처럼 일반인들이 쉽게 경기를 알 수 있는 방법이 경제학 교과서에 실려 간단히 소개한다. 서울대 경제학부 이준구·이창용 두교수가 쓴 <경제학원론 designtimesp=20846>(2000, 법문사)의 일부다. “제비가 오면 봄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듯”이 일반인들이 쉽게 경기를 이해할 수 있는 사례라는 게 저자들의 설명이다.●경제가 불황이면 여성들의 치마길이가 길어지며 의류 색상은 어두운 색이 주조를 이룬다.●경기불황기에는 점을 보러 다니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담배꽁초의 길이가 짧아지면 불황이다.●불경기일수록 비싼 위스키나 맥주보다 싼 소주판매가 늘어나고 라면의 소비도 증가한다.●호황기에는 과식 운동부족 등으로 당뇨병환자가 늘어나지만 불황기에는 과식이 줄어들어 당뇨병 발생이 줄어든다.●경기가 나쁠수록 성형외과나 치과를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소화불량 근육통 등으로 내과를 찾거나 정신과를 찾아 상담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