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1월달러금고 ‘텅텅’ 정부정책 ‘팔짱’일반적으로 한 나라의 외화부채(Cash-Flow) 상황에 따라 ‘4륜 구동형 경제’와 ‘2륜 페달식 경제’로 구분된다. 다시 말해 선진국처럼 외화부채 상황이 건실한 국가를 4륜 구동형 경제라 부르고 개도국처럼 외화부채 상황이 불건전한 국가를 2륜 페달식 경제라 부른다.어느 국가에 외환위기가 발생할 것인가 여부는 바로 두가지 경제유형 가운데 어느 유형에 속하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97년 하반기 이후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라는 직격탄을 맞게 된 것은 여러 가지 요인 중에서 우리처럼 2륜 페달식 경제에서 외화유동성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이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와환위기 이후 하락세를 보였던 원화 환율이 최근 1천3백50원대로 재상승했다.당시 우리나라의 외화유동성을 개괄해 보면 총 외채 1천5백80억달러 가운데 대외신용 상실에 따라 자전거 페달을 밟지 못할 경우 곧바로 외국금융기관으로부터 회수당할 가능성이 높았던 단기외채가 무려 9백억달러가 넘었다.반면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방지하기 위해 3백억달러의 외환보유고를 갖고 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으나 실제로 가용할 수 있는 외환보유고는 39억달러에 불과했다. 한국은행의 해외점포 예치 등으로 소진했기 때문이다.이 상황에서 97년 들어서자마자 한보그룹을 비롯한 대기업들의 부도사태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같은 해 3월 태국 바트화 폭락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외환위기 가능성에 대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정책당국에서는 ‘여전히 우리의 거시경제 변수가 건전하다’는 소위 펀더멘털론을 거론하면서 안이한 상황이 지속됐다.같은 해 3월 이후 우리나라의 외화유동성은 계속 감소됨에 따라 원화 환율은 상승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책당국은 지방순회까지 나서면서 펀더멘털론을 강조했다. 심지어 해외에 나가 이미 한국경제에 대한 해외시각이 완전히 부정적으로 바뀌었는데도 불구하고 설명회 등을 통해 펀더멘털론을 강조해 오히려 해외 투자자들을 실망시켰다.대내적으로 97년7월 이후 기아자동차 사태를 매끄럽게 해결하지 못한 것도 우리 경제에 대한 해외시각을 바꿔놓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 결과 같은 해 8월 중순 이후 외국자금 이탈과 원화가치 하락간의 악순환 고리가 형성돼 외환위기 가능성을 높였다.결국 우리나라의 외환위기를 몰고 온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같은 해 10월에 발생했던 홍콩의 주가 대폭락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홍콩 금융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우리나라에 대한 해외 시각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11월 들어 일본 금융기관을 필두로 미국, 유럽의 금융기관들이 대출 회수에 들어가 궁극적으로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최악의 상황에 몰리게 됐다.97년 외환위기는 외환보유고 고갈에 의한 것이었다.더욱이 대외적으로는 95년4월 선진국간의 달러화 가치를 부양하기 위한 역 플라자 합의(Anti-Plaza Agreement) 이후 엔화 약세 국면이 2년 이상 지속되면서 수출감소와 경상수지 적자를 확대시킨 것도 외환위기를 촉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한 마디로 97년 당시 국민총생산(GNP) 기준으로 세계 11위이고 1인당 국민 소득이 1만달러에 달한 우리나라가 외환위기에 몰린 것은 대내외 악재가 겹쳤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김영삼 정부의 정책부재와 안이한 정책자세가 외환위기를 발생시킨 직접적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2001년 4월엔화약세 겹쳐 ‘외환위기’ 우려최근에 대내외 경제여건을 보면 97년 외환위기가 발생한 당시와 유사한 점이 많다. 무엇보다 대외적으로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1백∼1백10엔 선에서 안정됐던 엔화 가치가 올들어 계속 하락되면서 1백25엔대로 떨어졌다.현재 일본의 정치·경제적 여건과 침체된 증시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정책수단이 결여된 점을 감안하면 엔화 약세 기조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일본경제 안정차원에서 엔화 약세를 유도하기 위해 미국·일본간 공조시대에 접어들 가능성은 높다.오히려 97년 당시에 비해 최소한 대외적인 환경면에서 우리나라를 어렵게 하는 것이 미국경제의 침체다.대내적으로는 당시 상황과 비교해 가장 크게 개선된 것이 외화유동성 부문을 들 수 있다. 당시 39억달러까지 떨어졌던 외환보유고가 올 3월말 현재 9백44억달러로 늘었다. 반면 총외채는 97년 당시 1천5백80억달러에서 2월말 현재 1천3백17억달러로 감소했다.분명히 외화유동성 면에서 개선된 것은 틀림없다. 현재 정책 당국자를 중심으로 우리나라에서 외환위기가 재발될 가능성이 없다고 보는 것은 이런 점을 근거로 삼고 있다.문제는 대외적으로 엔화 가치 약세와 함께 앞으로 외화유동성이 악화될 소리가 높다는 점이다. 특히 외환위기 재발여부에 있어서는 기존에 외화유동성은 확보해 놓았다 하더라도 향후 사정이 좋지 않을 경우 환율이 급등하고 위기감이 높아지는 것이 관례다.실제로 지난해말까지 꾸준히 개선돼 오던 외환보유고가 올 들어 지속적으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물론 IMF 차입금 조기 상환과 원화 약세에 따른 특수 요인이 있긴 하지만 절대 규모면에서 3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는 상태다.무역수지면에서 수출이 23개월만에 다시 감소세로 돌아섰다. 미국과 일본 등 주요 교역국의 경기침체와 미국 유럽 중국의 통상압력 가중, 엔화 약세와 같은 수출 3재(三災)가 예상되는 시점에서는 앞으로 수출전망도 그렇게 밝지 못하다.외국인 투자자금도 추가적인 환차익이 소멸된 상태인데다 구조조정 지연으로 경제기초 여건이 쉽게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는 추가로 유입될 가능성이 적은 상태다.외환위기 이후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였던 원화 환율이 지난해 11월 중순 이후 상승국면으로 반전돼 최근에는 1천3백50원대로 상승한 것도 이런 이유다. 최근 들어 원화 환율이 급등함에 따라 일부 계층을 중심으로 달러화를 사놓고 보자는 투기심리가 재연되고 있다.따라서 현시점에서 정책당국은 외환위기에 대해 낙관론으로 일관해서는 안된다.대외적으로 중국, 일본 등 인접국가와 외자융통계획인 통화스왑 협정을 체결한다든가 아시아 지역내에서 공통화폐 도입 및 아시아통화기금(AMF) 창설 문제에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대내적으로도 구조조정을 통해 대외환경 변화를 완충시킬 수 있는 능력과 경제주체들의 외화부채 상황을 사전에 파악해 놓아야 국민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전가하는 외환위기를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