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직장은 이제 없다. 시쳇말로 ‘철밥통’의 대명사였던 은행원이나 심지어 공무원까지도, 직장인들은 불안하다. IMF외환위기보다 더 지독하다는 취업난 속에 아직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젊은이들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떨기는 마찬가지다.그래서 사람들이 쉽게 떠올리는 ‘솔루션’중 하나가 자격증이다. 모두 9백여개나 되는 자격증 중에서 요즘에는 예전에 쉽게 이름을 들어볼 수 없었던 민간 자격증, 외국 자격증에 응시자가 몰린다. 금융분야의 최고급 자격증이라는 국제재무분석가(CFA) 응시자 수의 증가는 가히 폭발적이다. 소수의 전문가를 대상으로 하는 자격증임에도 불구하고 올해 우리나라 응시자 수는 3천여명을 넘어섰다. 지난 18일 서울 종로에 위치한 한 금융자격증 관련 학원은 저녁 7시가 넘어서면서 강의를 들으러 온 직장인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뤘다. 2백여명 가량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강의실에는 사람들이 빽빽하게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어느 강의실이나 사정은 비슷하다. 특히 시험일이 한 달 정도 앞으로 다가올 때 가장 복잡하다”고 학원 관계자는 말했다.회사들도 경쟁력 재고 차원에서 직원들의 자격증 취득을 적극적으로 독려하는 분위기다. 조흥은행은 사내 연수 성적과 취득 자격증 수 등을 점수화해 인사 고과에도 반영하는 ‘지식 마일리지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학원비를 지원하는 것은 물론이다. 국민은행도 행내에 CFA 등 10여개의 시험 대비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거의 모든 증권사들은 자격증 취득자에게 특별 상여금을 지급하기도 한다.자격증 취득자에 특별상여금 지급도인기 자격증의 변천사는 경제 상황 및 노동시장의 변화 흐름과 맥을 같이 한다. 자격증전문 포털 사이트 테스트포유(www.test4you.co.kr) 이재열 사장은 “전통적으로 인기 있었던 국가 기술 자격증의 인기는 시들해지는 반면 IT 금융 부동산 분야 자격증, 고급 국제 자격증의 인기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며 “계속해서 전문성을 추구하는 쪽으로 몰리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글로벌 경쟁, 시장 개방과 같은 추세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요즘 가장 관심을 모으고 있는 자격증 중 하나는 부동산간접투자상품(REITs)이라는 새로운 제도와 관련한 것들이다. 부동산투자회사법에 따라 전문인력을 의무적으로 갖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자격증을 갖고 있으면 몸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금융업계에서 인기 있는 자격증은 시장의 흐름을 그대로 보여준다. 금융업종간 장벽이 허물어지면서 금융업 종사자들은 예전에는 몰라도 괜찮았던 것들을 알아야 되게 된 것이다. 금융자산관리사(FP) 자격증을 딴 조흥은행 PB 김선화 대리는 “고객들을 대하다 보면 이들의 절대적 관심분야인 채권 및 증권투자, 부동산과 관련한 지식을 쌓아야겠다는 필요를 절감했다”며 “이전에는 단순한 은행 업무와 일반적인 상식 선에서 고객을 응대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본시장이 개방되면서 국제자격증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도 세계 표준에 맞출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정보통신업계에서는 국제공인자격증 취득자가 점점 늘어나 희소가치가 줄어든 자격증들이 인기가 줄어드는 반면 그간 MS 자격증에 가려 상대적으로 두드러지지 못했던 오라클, 썬, 리눅스 등의 자격증들이 뜨고 있다.그렇다면 많게는 1천만원 이상, 길게는 3년 이상이나 투자해서 얻는 자격증은 실제로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일까. 실제로 자격증을 딴 사람들, 기업체 인사 담당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취업이나 전직에 분명히 도움이 된다. 특히 외국계 회사에서는 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자격증 때문에 안될 일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취득 열기에 비해 ‘자격증 덕을 확실히 봤다’고 말하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많은 사람들은 환상을 버리라고 충고한다. “자격증을 취득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뚜렷한 목표 의식과 정확하고 풍부한 정보”라고 앞서 자격증을 딴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지적한다. 전문 자격증을 갖고 있는 이들이 “먼저 직장생활을 경험해 봄으로써 나에게 어떤 공부가 필요한지를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민간자격증의 경우 정확한 정보의 중요성이 더욱 두드러진다. 비슷비슷한 이름의 자격증이 양산되고 있지만 공신력있는 단체가 시행하는 자격증이 아닐 경우 시간과 비용을 들여 따 봐야 정작 쓸모가 없음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모 보험사에 근무하는 허중식씨는 “미리미리 경쟁력을 갖춘다는 의미에서 증권업협회에서 주관하는 FP 자격증을 땄지만 회사에서 한국 FP협회의 자격증을 요구하는 바람에 새로 공부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허씨의 경우는 그래도 나은 편. 공신력없는 민간단체들이 ‘○○전문가 과정’ 등의 이름으로 교육과정을 만들어 놓고 수료증을 주면서 이것이 마치 대단히 유망한 자격증인양 선전하는 경우도 많다. 실제 이상으로 포장해야 사람들이 몰려들고 여기서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자격증이라고 무조건 안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난해 처음 생긴 직업상담사의 경우 현재 필요한 인원보다 턱없이 많은 합격자를 배출하는 바람에 자격증을 장롱에 묵히고 있는 취득자들이 한둘이 아니다.전문분야 정해놓고 한우물 파야 성공전문 자격증 소지자이면서 자신의 업무에서 높은 만족도를 보이는 이들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자신이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를 일찍부터 정해놓고 그 중에서도 전문 분야를 골라 오래 전부터 한우물을 파 왔다는 것이었다. 자격증은 그 과정의 일환에 지나지 않았다. 20대에 무려 5개의 자격증을 취득한 장호준씨(28세). 그는 “자격증 자체가 성공과 인생의 행복을 보장해 주진 않지만 기본적인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척도가 되는 것만은 분명하다”며 “그러나 일단 자격증을 딴 뒤에 그 분야에서 계속적인 자기를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