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주체들이 시중에서 돈을 빌려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보편적인 것이 채권 발행이다. 경제 주체의 하나인 정부도 예외는 아니어서 국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고, 갖가지 사업을 벌인다. 그런데 어떤 조건으로 발행하느냐에 따라 자금조달이 쉬워지기도 하고 또 비용(이자)을 적게 부담할 수 있다.근래 들어 물가연동국채의 발행이 각국의 관심사로 등장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도입되지 않았지만 미국 영국 등 세계 20여개국에서 발행하고 있는 물가연동국채는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많아 대체로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다.물가연동국채란 원금과 이자를 인플레이션에 연동시켜 채권의 실질가치를 보장함으로써 미래의 불확실한 물가변동에 따른 위험을 상쇄시킨 금융상품이다. 물가가 오른 만큼 이자율도 높게 적용해 주는 것이다.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 물가상승에 따른 실질이자수입이 줄어드는 것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고 정부입장에서 보아도 잘 팔릴 수 있기 때문에 자금조달이 쉬워진다는 장점이 있다.또 정부가 이 제도를 잘 활용하면 오히려 낮은 비용으로 돈을 빌려 쓸 수 있게 된다. 예컨대 물가가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에는 확정된 이자율을 적용하는 명목국채보다 물가연동국채를 발행하면 물가가 떨어진 만큼은 비용을 절약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물가연동국채를 발행하면 정부 스스로 물가안정을 중시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통화정책이나 금리조정 등에서 중앙은행의 지원과 협조를 유도하기도 쉬워진다. 물가연동국채의 수익률이 시장에서 상시 파악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실질금리에 관한 생생한 정보를 상시 입수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 요약하자면 정부의 물가안정의지를 가다듬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현재 물가연동국채를 발행하는 대다수 국가들은 물가안정목표제(중앙은행이 물가안정목표를 제시하고 이를 책임지고 달성토록 하는 의무를 부여하는 것)를 시행하고 있다는 점은 그런 점에서 결코 우연이 아니다.그러나 단점도 없지 않다. 우선 정부가 정확한 차입비용을 예측할 수가 없다. 물가가 얼마나 오를 지를 정확히 예측한다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당해연도에 상환해야 할 이자비용을 추정해 예산에 정확히 반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 물가연동국채의 도입으로 경제전반에 걸쳐 물가연동계약이 확산될 경우 경제주체들의 인플레 손실에 대한 위험은 사라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플레 해악에 대한 인식이 무디어져 결과적으로 ‘인플레이션 관성’을 고착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50~60연대에 남미국가들을 중심으로 임금 임대료 각종계약 채권 등에 걸쳐 물가연동제가 폭넓게 도입된 바 있었으나 유가상승에 따른 물가불안과 정부 재정적자 누증 등으로 이 제도가 오히려 인플레이션을 체질화시키는 주요인으로 작용했었다. 뿐만 아니라 물가연동국채는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만기까지 보유하려는 경향이 강해 채권유통시장을 활성화시키지 못하는 단점도 있다.한국은행은 이 제도의 장단점과 우리의 경제여건을 검토해 본 결과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결론을 내렸다. 수요여건은 어느 정도 조성된 것으로 보이지만 금융 및 기업구조조정이 한창 진행중이고 물가상승에 대한 불안감이 해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 회사채시장이 제대로 성숙되지 못한 상황에서 물가연동국채가 발행되면 회사채시장을 더욱 위축시킬 우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