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반도체 생존해법, 국가경제 차원에서 찾아야” … 구조조정 지속 추진, 불확실성 제거에 최선

취임 1주년을 맞았습니다. 감회가 남다를 것으로 생각되는데요.지난 1년간은 30년 공직 생활 중 가장 힘든 기간이었습니다. 살얼음판이었지요. 부임하자마자 현대 대우 등 기업처리와 기업 자금경색 등을 풀기 위해 동분서주했습니다. 예기치 않았던 동방금고 사건으로 국민들의 질책도 받았습니다. 이런 와중에 제2단계 기업 금융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했습니다. 부임할 당시 개혁의 모멘텀이 약화되고 대외 경제환경 악화에 따른 시장불안, 그리고 우리 경제의 신인도 하락이 우려돼 추가적인 개혁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지난해 9월부터 2단계 구조조정을 시작했습니다. 잠재부실 정리, 추가공적자금 조성, 52개 부실기업 정리, 부분예금보장제도 시행, 금융지주회사 도입과 우량 은행의 통합 유도 등이 핵심과제였습니다. 이를 통해 시장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금융과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목표였지요. 그리고 상시 구조조정을 위한 기본틀을 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얼마나 성과가 있었는지 지금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구조조정의 고통과 어려움은 직접적이고 단기적인데 반해 효과는 간접적이고 장기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현안을 여쭤보지 않을 수 없는데요. 우선 현대투신증권과 현대증권의 외자유치 문제가 시간만 끌면서 헐값에 넘긴다는 우려가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데 매각협상은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습니까.올초 AIG(아메리칸 인터내셔널 그룹) 컨소시엄이 현대투신증권을 인수하겠다는 의사를 보인후 지금 계약 단계에 와 있으니 그리 늦은 편은 아닙니다. 또 협상이라는 것이 상대방이 있기 때문에 시간이 걸립니다. 외국인들은 신중하고 세심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AIG측이 컨소시엄 형태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그들간의 의사결정을 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어쨌든 최근 AIG측이 매입 의사를 분명히 밝혔고 바인딩 엠오유(구속력 있는 양해각서)가 빠른 시일 내에 체결될 전망이므로 잘 처리되리라 봅니다. 가격조건에 대해서는 헐값이라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감자 뒤 출자 형식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헐값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어요.서울은행은 예정대로 매각되는 것입니까.당초 올 상반기까지 매각을 하지 못하면 우리금융지주회사에 편입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처리한다고 했습니다만 아직 양해각서까지 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현재 도이체방크 캐피탈파트너스(DBCP, 도이체방크 자회사)가 LOI(Letter Of Intent, 인수의향서)를 내고 실사에 들어갔습니다. 6월말까지 마치지는 못했지만 이미 9월말까지 1차 유예기간을 연장하고 여의치 않으면 올해 말까지 2차 연장기간을 달라고 예금보험공사에서자금관리위원회에 요청, 동의를 받아 놓은 상태입니다. 9월말까지는 어떤 결말을 낼 것입니다. 예보의 입장이 정부의 입장이구요.하이닉스반도체 생존해법을 찾는 과정에서 채권단내 불협화음이 들리기도 합니다. 하이닉스반도체 문제는 국가경제적인 차원에서 다뤄야 하는 사안이 아닌가요.(이 질문이 나오자 인터뷰 도중 처음으로 이위원장은 담배를 한 대 물었다) 하이닉스 하면 할 얘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일부에서 정부가 하이닉스를 살리기 위해 지원했다는 얘기를 하기 때문입니다. 전혀 그런 사실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하이닉스 문제는 반도체 가격이 오르지 않아 현금흐름에 문제가 생긴 것인데 현재로서는 유동성 위기는 없습니다. 새로 정부자금이 투입되는 지원은 없을 것입니다. 외환은행을 중심으로 하 채권단과 살로먼스미스바니가 약간의 손질만으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것으로 봅니다.반도체 과잉공급상태에서 누가 얼마나 버틸 것인지가 중요한 관건일 겁니다. 저는 이런 생각도 해봐요. 과거 조선 경기가 어려웠을 때 정부가 나서 과감히 조선합리화 정책을 펼쳤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조선업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한 데는 정부의 합리화정책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도산하는 업체가 한 곳도 없었고 지금 국내 조선업은 세계 1위까지 올랐지 않습니까. 반도체산업도 그런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봐요. 채권단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겁니다. 다만 WTO 때문에 정부가 주도할 수 없다는 것이 과거와 다른 상황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원칙을 준수하면서 채권단이 충돌할 경우 이를 조정하는 역할을 할 생각입니다.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의 합병 이후 추가합병 가능성을 언급하셨는데요.시중엔 그 말이 외환은행을 두고 한 말이라는 소문이 났는데 사실과 다릅니다. 그런 얘기를 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았어요. 다만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의 합병이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구체화되니까 다른 시중은행들이 긴장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변화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고심하는 거죠. 은행장을 만나면 이런 고민들이 피부로 느껴집니다. 일부 은행에서 우리도 합병해야 사는 것 아니냐는 의사타진도 있었습니다. 외환은행은 아니었구요.중요한 것은 은행 경영자들이 변화를 정확하게 인식해 과거 안일한 발상을 버리고 노동조합도 자신들의 은행이 좋은 경영구조를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대형 금융기관이 계속 나올 것이고 공격적 경영이 있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금융기관간 우열이 명확해져 어려운 은행이 또 나옵니다.우리금융지주회사가 출범한 뒤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우리금융지주회사가 출범한 지 불과 4개월 됐습니다. 이 때문에 지주회사와 자회사간 경영개선추진 등에 시행착오를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권한과 역할을 분명히 하고 그룹의 경영개선을 위해 IT통합과 상호협조를 내용으로 하는 양해각서가 체결됐습니다. 다양한 업종을 거느린 종합금융그룹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앞으로 경기는 어떻게 될 것으로 보십니까.요즘 이런 생각이 들어요. 대학 시절 경기변동론을 공부할 때 태양흑점설 심리설을 배우잖아요. 당시엔 경제에 무슨 심리설이 있는가 싶었는데 요즘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경제는 기대라는 말도 있잖아요. 특히 요즘처럼 정보화시대엔 경기가 나빠진다고 하면 즉각 반응이 나타납니다. 기업인들이 BSI(기업경기실사지수)가 낮다는 얘기를 들으면 당장 투자규모를 줄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어요. 좋은 시절을 기대하면 경제도 좋아지지 않겠습니까. ‘경제는 기대다’라고 미국 경제학자 루카스가 언급을 했는데 요즘 이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아무리 지금의 경기가 나빠도 국민들이 좋아질 것으로 기대한다면 한국경제도 조만간 살아나지 않겠어요.금년 하반기에 충실한 구조조정을 통해 경제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경제활성화 대책이 이뤄진다면 내년에는 우리 경제가 활력을 되찾을 것으로 봅니다.Profile in Mirror이근영 위원장은 세제 전문가면서 금융통으로 불린다. 공직생활은 주로 세무와 관련된 부서에서 보냈고 한국투자신탁 사장, 신용보증기금이사장, 산업은행 총재 등을 거치며 금융 실무현장에서도 뛴 경력 때문이다.지난 94년 재무부 세제실장에서 한국투자신탁 사장으로 발탁됐고 산업은행 총재를 거쳐 금융권의 수장으로 불리는 금융감독위원장까지 오른 데는 그의 치밀함과 강력한 추진력 때문이라는 게 주위의 평이다. 평소 작은 일이라도 성심을 다하는 자세와 진솔한 성격 등으로 덕을 쌓은 것이 이처럼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꼽힌다.요즘엔 일이 많아 대부분 퇴근할 때 회사서류를 가져간다고 한다. 본인은 6시간은 꼬박 잔다고 하지만 주변에서는 그가 새벽까지 결재서류를 들고 일하는 모습을 종종 본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그는 가끔 부족한 잠을 차안에서 보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