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12일은 IBM PC(이하 PC)가 선보인 지 20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 날을 전후해 실리콘밸리 화제의 중심은 ‘PC 20주년’이었다. 산호세머큐리를 비롯한 신문과 잡지들은 한결같이 ‘세상을 뒤바꾼 20세기 최고의 발명품? PC’ 이야기로 지면을 장식했다. TV와 라디오들도 경쟁적으로 PC 20주년에 관한 방송을 내보냈다.‘PC 20주년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PC가 탄생시킨 두 영웅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과 앤디 그로브 인텔 회장이 주최한 기념 행사. ‘PC:지난 20년과 미래’란 이름의 이 행사는 3백50여명의 업계 전문가들과 세계 각국 언론인이 참가한 가운데 지난 8월8일 실리콘밸리 중심부의 산호세 테크뮤지엄에서 열렸다. 이 날 행사에는1백여명의 언론인들이 참가했으며 ABC같은 방송사들은 중계차까지 동원, PC 20주년에 대한 관심을 반영했다.실리콘밸리의 행사가 대부분 그러하듯, 저녁 6시부터 1시간 가량의 네트워크 기회(참가자들이 간단한 음료수를 들고 삼삼오오 모여 얘기하는 시간)로 시작됐다. 간단한 저녁 식사가 끝난 뒤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 패널 토론이 열렸다. 이 토론에는 PC의 탄생과 성장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8명이 참가, 미국의 경제주간지 ‘포춘’ 편집자인 브렌트 슈렌더의 사회로 PC의 과거에 대한 회고와 평가, 앞으로의 발전방향에 대한 의견을 개진했다.이 행사에서 기자는 ‘숨겨진 영웅’을 발굴했다. 그는 이 행사를 주최한 빌 게이츠 회장도, 앤디 그로브 회장도 아니다. 그렇다고 세계 1, 2위의 PC 업체를 다투는 델컴퓨터와 컴팩컴퓨터의 마이클 델 회장이나 마이클 카펠라스 회장은 더더욱 아니다.(이들은 IBM 경영진과 마찬가지로 이 행사에 초대조차 받지 못했다)그는 바로 IBM의 엔지니어인 데이브 브래들리. 브래들리씨는 IBM이 PC 개발 프로젝트를 맡기기 위해 처음 선발한 12명의 엔지니어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최근 PC 20주년 관련 기사나 프로그램에 반드시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가 PC 20주년 축제에 단골 손님이 된 것은 PC의 가장 유명한 기능인 ‘Ctrl+Alt+Del 기능(컴퓨터 재시동 키)’을 개발한 주역이기 때문이다. 퍼듀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PC 개발팀에서 기본 입출력 제어 기능 개발을 맡았다. 이 때 그가 개발한 ‘Ctrl+Alt+Del’은 컴퓨터 이용자라면 거의 모든 사람이 알 정도로 유명하다. 그는 이날 토론에서 “‘Ctrl+Alt+Del’을 개발할 때 무엇을 생각했느냐”는 슈렌더 편집자의 질문에 “개발 작업을 하는 도중에 컴퓨터가 제대로 작동을 안 해 전원을 껐다 잠시후 다시 켜는 일을 반복했다. 그래서 손쉽게 컴퓨터를 재시동시키는 방법으로 이 기능을 고안했다”고 답한 뒤 “그것을 내가 발명했을지라도 유명하게 만든 것은 빌(빌 게이츠 회장)이다”고 말해 참가자들의 폭소를 자아냈다.컴퓨터 재시동 키 ‘Ctrl+Alt+Del’ 개발 주역그가 단골 손님이 된 보다 중요한 이유는 PC 개발팀의 초기 멤버 가운데 아직도 개발 현장에 머무는 몇 안되는 사람이란 점일 것이다. 52세의 나이에 백발이 성성한 그의 현직은 IBM의 x시리즈 서버 개발팀 멤버.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있는 리서치 트라이앵글 파크의 IBM 연구실에서 컴퓨터 기술 개발의 최일선에 서 있는 것이다.브래들리씨는 ‘20년 후의 PC’에 관한 물음에 “데스크톱PC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에서 보다 작은 제품 개발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어 언제 어디서나 서로 연결된 환경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전문가다운 의견을 내놨다. 그러나 그는 “예측한다는 것은 무척 어렵다. 특히 미래에 대한 예측은 더욱 그러하다”는 닐스 보어(덴마크 태생의 물리학자로 1922년 노벨상 수상)의 말을 인용하면서 “예측은 다른 사람들의 몫”이라는 겸손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