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에어컨의 분공사 시스템이나 삼성모니터의 대리상 체제 중 ‘어느 것이 좋다’라고 말할 수 없다. 두 개 회사는 외국인들이 중국에서 선택할 수 있는 서로 다른 유통시스템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이중 자기 회사에 어느 시스템이 어울리는 지를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우리나라 기업의 중국 투자는 주로 제조업에 치중됐다. 저렴한 생산비를 노린 투자가 대부분이었고 내수 침투를 위한 투자는 극히 적었다. 시장을 접해보지 않았으니 중국 유통을 들여다보는 전문가가 드물다.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중국도 내수시장이 크게 성장, 우리가 먹을 파이가 생겼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계기로 유통시장도 활짝 개방된다. 내수시장 공략을 세울 때라는 얘기다.LG에어컨과 삼성모니터. 두 제품 모두 중국시장 진입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 제품이다. 이들의 중국시장 돌파 전략은 크게 다르다. 두 제품의 유통과정은 우리 기업이 어떻게 중국 시장을 뚫어야 할 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준다.우선 LG에어컨 유통 경로다.공장에서 생산된 에어컨은 가장 먼저 ‘분공사(分公司)’로 간다. 분공사란 LG전자의 중국 지주회사인 LG전자중국투자유한공사 산하 판매조직. 분공사는 제품판매를 담당한다.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선양 우한 청두 등 중국 주요 도시 6곳에 분공사가 설립돼 있다.LG에어컨, 분공사 →영소부 →연락참 활용분공사를 거친 에어컨은 영소부(營銷部)를 거쳐 매장으로 간다. 영소부는 분공사 산하에 설치된 하부 마케팅 조직. 전국 주요 도시에 20개가 설치돼 있다. 영소부는 제품을 백화점이나 할인매장 전문매장 등에 뿌리게 된다. 유통 마무리 조직인 셈입니다.분공사와 영소부 직원들은 모두 LG에서 임금을 받는 LG직원이다. 현재 6백20여명의 직원들이 판매법인 정규직원으로 등록되어 있다. 우리회사 물건을 우리 직원이 책임지고 유통할 수 있게 돼 안정적인 유통마케팅이 가능하다.20개에 불과한 영소부로 전국을 커버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생긴 게 연락참(連絡站)이다. 연락참은 20개 영소부 설치 도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 없는 주요 도시에 설치했다. 연락참에 파견된 직원(대부분 1명) 역시 정규 직원이다.LG의 유통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매장 현장에 ‘프로모터’라고 불리는 판촉사원을 뒀다. 계약직 사원인 이들은 LG전자 제품 유통의 최말단 조직이다. 현재 프로모터는 전국에 약 3천여명이 있다.LG에어컨 유통 시스템은 ‘우리 물건은 우리 손으로 유통한다’는 철학이 담겨 있다. 대금체납 재고유용 등 중국 대리상에게 맡길 때 나타나기 쉬운 각종 문제를 피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회사 차원의 통합 마케팅을 추진할 수도 있다. 분공사가 시장흐름을 판단, 공장과 유통간 유기적인 협력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 한국에서의 유통시스템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이 제도는 그러나 비용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다. 영업인력이 많으니 인력 코스트가 많이 들 수밖에 없다.삼성모니터의 유통방식은 이같은 문제점을 극복하고 있다.삼성은 텐진 공장에서 하루 평균 3천여대의 모니터를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 일단 공장을 나온 모니터는 전국에 퍼진 매장을 향해 유통망을 타게 된다. 그 유통과정을 담당하고 있는 한국 직원은 단 한 명이다.어떻게 차장 한 명이 하루 3천대씩 쏟아지는 모니터의 유통을 챙길 수 있을까. 철저한 ‘대리점 유통 방식’에 그 해답이 있다.삼성모니터의 유통구조는 3개 층으로 구성돼 있다.삼성, 철저한 대리점 유통방식 고수우선 전국 주요 도시 12개 지역에 총대리상을 두었다. 베이징을 비롯해 선양 칭다오 시안 정저우 상하이 총칭 청두 난징 우한 푸주 광저우 등이다. 이 정도면 중국의 주요 도시는 모두 포괄한다.총대리상 밑에는 지역별로 3백여개의 지역 대리상이 포진하고 있다. 지역대리상 아래에는 3천여개의 경소상(經銷商)이 깔려 있다. 경소상은 우리의 소매상에 해당한다. 결국 공장에서 나온 모니터는 총대리상으로 간 뒤 지역 대리상, 경소상 등을 거쳐 소비자에 전달된다. 유통망은 피라미스식이다. 가장 위에 있는 베이징의 영업본부가 3천여개 경소상을 관리하는 형식이다.이 시스템이 원활하게 돌아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각 유통 주체들의 충성도(Royalty)다. 메이커에 대한 유통업자들의 충성도가 낮다면 이 피라미드는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 어떻게 충성도를 높일 지가 과제다.첫째, 외상거래는 절대 없다.대리상 유통시스템 붕괴의 가장 큰 이유는 외상거래다. 외상으로 물건을 가져가서는 줄행랑을 치는 대리상이 지금도 적지 않다. 삼성모니터는 모든 거래를 현금으로 처리, 이 문제를 원천적으로 막았다. 은행에 돈을 입금했다는 증빙서류(래미턴스)가 도착해야 물건을 보낸다.둘째, 대리상들에게 ‘삼성과 거래하면 돈 벌 수 있다’는 신념을 주고 있다.중국 유통업자들은 돈에 따라 움직인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면 ‘간에도 붙고 쓸개에도 붙을 사람들’이다. 다른 업체와 거래를 하면 외상으로 물건을 떼올 수 있음에도 굳이 삼성과 거래를 하는 이유는 ‘돈을 벌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유통과정에서 총대리상은 제품가의 4%, 지방대리상 3%, 경소상 3%씩 가져간다.셋째, 시장 수급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있다.삼성은 매주 외부 시장조사기관으로부터 모니터 가격 동향을 보고 받는다. 시장의 수요변화에 따라 그때그때 가격을 조절한다. 이게 바로 피라미드식 유통구조의 장점이다. 정점의 한 명이 3천개 유통점의 가격을 시시각각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니까 유통업자들에게 마진을 보장할 수 있는 거다.대리상 체제는 잘만 운영되면 강력한 유통파워를 갖는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사건이 발생한다면 쉽게 무너질 수 있는 조직이기도 하다.LG에어컨이 분공사 시스템을 택하고 삼성모니터가 대리상 체제를 택한 데에는 회사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어느 것이 좋다’라고는 말할 수 없다. 두 개 회사는 외국인들이 중국에서 선택할 수 있는 서로 다른 유통시스템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이중에서 자기 회사에 어느 시스템이 어울리는 지를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 두 방식을 적절히 결합하는 것도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