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투나 야구 등 스포츠 경기에서 투지나 정신력에만 의지해서는 좋은 성과를 기대하기가 어렵다.운동선수들의 기량을 향상시키고 시합에서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내기 위해 스포츠의 과학화는 필요하다.마찬가지로 금융회사들의 업무능력을 질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금융업무의 과학화’ 이다.최근 은행들의 합병 등을 통한 자산 규모의 외연적인 확장보다는 오히려 금융업무의 질적인 개선을 도모하기 위한 금융업무의 과학화가 우리에게 더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금융회사들의 업무처리 행태를 살펴보면 아직도 비과학적인 면이 많이 남아 있다.요즘 야구 코치나 감독들은 상대편 선수에 관한 정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시합 전 더그아웃에서 자신의 노트북 컴퓨터를 켜 자료를 검토하는 일이 잦다. 하지만 이젠 이러한 행동을 해도 예전처럼 더 이상 주변에서 신기한 눈초리로 쳐다보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감독이나 코치, 그리고 투수등 선수들이 저마다 기억과 감에 의지해 야구를 하는 과거와는 달리, 정보를 수집·분석해서 이를 활용하고 있다. 곧 이같은 방향으로 스포츠의 과학화가 진전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가령 투수를 담당하는 코치가 상대편 선수 개개인의 평균 타율이나 장타율, 삼진아웃 비율 등은 기본이고 빠른 볼과 변화구에 대한 타율의 차이, 높은 볼과 낮은 볼에 대한 선호도, 빠른 볼과 변화구에 대한 선호도 등 각종 정보를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이를테면 선수 개개인의 데이터를 광범위하게 수집·분석한 후 이를 바탕으로 상대편 선수들의 타석에서의 스윙을 미리 예측할 수 있는 기본 모델을 만든다. 그리고 이 예측 모델을 실전에서의 성과를 감안해 계속 수정해서 완성된 모델을 만들어 나간다. 따라서 이러한 과정이야 말로 스포츠의 과학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요즘 각종 선거를 앞두고 여론조사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흔히 발표되는 내용을 보면 95% 신뢰 수준에서 오차 범위가 3% 이내라는 단서가 붙기는 하지만,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몇 %라고 하는 구체적인 숫자가 나오고 있다. 이는 여론 조사 방법이 상당히 과학화 되어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은행들은 내부적으로 거래 기업이나 고객을 몇 등급으로 나누어서 신용평가를 하고 있다. 신용등급 평가를 주 업무로 하는 신용평가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로 각종 재무 정보 등을 심사해 기업을 몇몇 등급으로 나누어 ‘수우미양가’식의 등급을 정하고 있다.그러나 수우미양가식의 등급 평가는 어느 기업은 안전하고, 어느 기업은 불안하며, 어느 기업은 도산의 우려가 있다는 정도의 정보밖에는 없다. 이 정도 수준을 가지고는 업무가 과학화되고 있다고 인정하기는 어렵다.적어도 선거에 출마가 예상되는 특정 후보가 상대 후보를 몇 % 차이로 리드하고 있다는 식의 여론조사 방법과 비교해 볼 때 상당히 낙후된 것이다.가령 신용평가회사에서 어느 기업이 발행한 3년 만기 무보증 회사채의 신용등급을 BBB급이라고 평가했다고 하자.이러한 신용평가 정보는 고작해야 해당 기업이 A등급보다는 못하고 BB등급보다는 낫다는 정도이다. 잘못하면 현금흐름이 악화될 우려가 있다는 정도의 지적에 지나지 않는다.만일 이 정도 내용의 신용평가 정보에 의지해 기업의 회사채를 몇백억원씩이나 매입하는 금융회사가 있다면 과학적인 업무처리를 하고 있다고 인정할 수는 없다.적어도 신용평가회사는 신용등급이 BBB 급인 기업의 회사채가 향후 만기가 도래할 때 까지 매달 또는 분기별로 등급이 상향 조정되거나 하향 조정될 확률은 각각 몇 % 이며, 누적적인 도산 확률이 시간의 경과와 함께 각각 몇 %가 되는지 구체적인 숫자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은행에서도 단순히 수우미양가식의 평가방법으로 대출을 취급하거나 대출금리를 결정한다고 하면 이는 과학적인 업무처리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고 본다.실제로 수우미양가식의 신용평가는 신규 대출을 허용해줄 것인지, 아니면 기존 대출을 회수해야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데는 다소 도움이 된다. 하지만 거래기업별로 대출금리를 몇 %로 해야 적당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에는 별로 효과적이지 않다.게다가 은행에는 사회적·공공적 역할이 부여되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신용창조 기능이다.신용창조 기능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은행에서 예금을 받아 대출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곧 예금이라고 하는 사회적 자원을 생산성이 높은 곳으로 배분될 수 있도록 신용평가나 심사 기능을 전문가적인 입장에서 은행이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다.신용창조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거래기업별로 신용평가를 하고, 이를 활용해 거래기업별로 적정한 수준의 대출금리가 결정될 수 있도록 과학적인 업무 처리가 이루어져야 한다.예를들어 은행이나 신용평가회사에서 평가한 기업에 대해 향후 생존 및 도산 확률 등을 정확히 예측해 내고, 이를 근거로 각 기업의 대출금리를 결정하는 모델을 완성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과정이 제대로 갖춰진다면 금융업무 과학화의 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