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국가들 세계 전체보유고의 70% 차지...평가절상 압력 대비해야

중국 위안화 절상 문제에 이어 아시아 국가들의 과다 외환보유고를 놓고 또 한 차례 세계 각국간의 마찰 혹은 전쟁이 불가피해질 전망이다.현재 아시아 국가들은 세계 전체 외환보유고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 중국, 대만, 한국, 홍콩 등 동북아 5개국의 비중은 무려 53%에 달한다. 우리나라도 외환보유고가 1,300억달러를 넘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은 국가다.아시아 국가들의 많은 외환보유고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앨런 그린스펀 의장을 비롯한 아시아 통화가치의 평가절상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달러화 매입 결과의 산물로 보고 있다. 다시 말해 아시아 국가들의 달러 매입 개입을 통한 자국통화의 평가절하가 미국을 비롯한 세계경제를 침체시키고 국제수지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주요인이라는 견해다.그렇다면 아시아 국가들의 과다 외환보유고가 단순히 자국의 이익만을 위한 달러매입 결과의 산물인가. 일반적으로 한 나라의 외환보유고는 △경제규모 혹은 국제금융 거래규모 △외화자금 수취 및 지급의 변동성 △외부충격에 대한 취약성 △변동환율제도상의 환율변동 허용폭 △금융위기 경험유무 등에 의해 결정된다.실제로 이들 요인에 의해 한 나라 외환보유고 변동의 약 70~90% 정도가 좌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97~98년의 외환위기 이후 아시아 국가들은 헤지펀드 등 투기적 자금들에 의한 공격을 차단할 목적으로 예비적 동기에 의한 외환보유고가 늘어나 대부분 국가들이 적정수준을 넘어섰다.주목해야 할 것은 아시아 국가들의 외환보유고가 급증한 시기는 미국이 금리인하를 단행하기 시작한 2001년 이후라는 점이다. 여러 요인을 생각해 볼 수 있으나 미국의 통화정책 완화에 따른 초과수요로 미국의 수입이 크게 증가한 것이 결과적으로 보면 아시아 국가들의 수출과 외환보유고가 늘어난 요인으로 볼 수 있다.실제 모형을 통해 보더라도 환율조정에 의한 가격효과(price effect)보다는 소득효과(income effect)가 수출증대에 미치는 영향이 6.4배 정도 더 큰 것으로 분석됐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경우 외환보유고가 증가한 것은 강세통화로 운용되는 자산을 달러화로 환산한 데서 온 평가차익도 상당부분을 차지한다.결국 아시아 국가들의 과다 외환보유고는 미국 등 선진국에서 인식하는 것처럼 전적으로 근린궁핍화(近隣窮乏化) 차원에서 이해돼서는 안된다는 점을 시사해주는 대목이다.최근 아시아 국가들이 외환보유고를 많이 가져가는 데는 외환위기 이후 예비적 동기에 의한 자체적인 요인과 운용수익, 그리고 미국의 금리인하 정책이 함께 어우러진 결과다.만약 이런 요인을 무시하고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아시아 통화가치의 평가절상을 요구하거나 극단적으로 달러화, 유로화 가치의 인위적인 평가절하로 맞설 경우 선진국 경제회복에 도움이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노동과 자본의 초과공급에 직면한 일부 아시아 국가들에서 디플레이션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현재 미국은 경기회복이 절실한 데 반해 경기회복을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정책수단이 제약돼 있다. 금리정책은 금리수준이 이미 경제여건에 비해 낮고 효과도 종전만 못하다. 재정정책도 올 회계연도만 3,600억달러의 적자가 예상되기 때문에 쉽게 동원할 수 있는 상황이 못된다. 3년 전에 없어졌던 30년만기 국채발행까지 다시 고려할 정도다.이런 상황에서 부시 행정부는 경기회복이 우선적인 과제이면서 경상수지 적자가 최대 현안이다. 내년 대선을 겨냥한다면 경제주체 가운데 기업인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달러약세는 이 세 가지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도 달러약세 정책에 대해 쉽게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다.문제는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인 미국이 자국의 경기회복을 위해 달러약세를 유도한다는 것은 전세계를 대상으로 경쟁력을 빼앗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나라들은 달러약세에 따른 경쟁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자국의 통화가치도 떨어뜨려야 한다. 현재 일본과 유럽을 비롯한 세계경기가 좋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가능성은 매우 높은 상태다.물론 이런 상황이 발생되면 세계통화전쟁이 일어나면서 가뜩이나 디플레이션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는 세계경제가 대공황에 빠질 우려가 있다. 과거 30년대 세계경제가 침체될 무렵에도 세계 각국들이 협조보다는 무역장벽을 높이거나 자국의 통화가치를 평가절하하는 ‘보호주의ㆍ이기주의’로 치달았던 것이 10년간의 대공황에 빠지게 된 직접적인 배경이었다.따라서 미국은 아시아 국가들의 과다 외환보유고를 환율조작의 게임으로 인식, 아시아 국가들에 달러화 약세(아시아 통화 강세)를 강요하기보다는 금리인하 등을 통해 수요를 진작시키는 전략이 더 효과적으로 보인다. 물론 우리의 경우에는 지난해 이후 외환보유고가 늘어나는 것이 주로 운용수익의 결과라는 논리를 개발해놓을 필요가 있다.아시아 국가들도 중국의 경우에는 하루빨리 변동환율제로 이행해야 한다. 또 인플레 우려가 있는 아시아 국가들은 자국통화의 평가절상을 용인하는 등 세계경기 회복 차원에서 책임을 공유(burden sharing)하는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아시아 국가들의 과다 외환보유고를 둘러싸고 불거지고 있는 마찰 혹은 전쟁을 회피할 수 있는 방안이 아닌가 생각한다.어쨌든 우리나라도 외환보유고를 많은 보유한 국가인 만큼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의 평가절상 압력에 대비해야 한다.무엇보다 정책당국은 시장을 세심하게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환율움직임이 너무 급변하지 않도록 노력(smoothing operation)해야 한다. 우리처럼 소규모 개방국가이면서 엔화 이외에 이종통화 시장이 개설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미국과 일본, 유럽 간에 통화마찰 조짐이 조금만 있어도 원화가치는 크게 흔들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현재 달러 이외에 이종통화로써 유일하게 개설해 놓은 원/엔 직거래 시장을 활성화하는 동시에 유로 등 다른 이종통화 시장도 개설해야 할 시점이다. 최근처럼 통화마찰 조짐이 있을 때는 이종통화 환율이 재정(cross rate)거래로 결정될 경우 환율변동이 심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국내 기업들도 원화강세에 견딜 수 있는 체질과 환위험 관리체제를 마련해 놓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종전처럼 원화강세가 되면 외환당국에 원화약세를 요구하는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동시에 환율에 의문이 있을 때는 수시로 자문할 수 외환전문기관과 외환전문가들과의 네트워크도 구축해놓아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