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물가 목표제에 큰 변화...중금리 환경에 대한 대응 필요한 시점
[베스트 애널리스트 투자 전략] 국내외 채권 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미국 10년 금리는 연초 0.91%에서 3월 9일 기준 1.60%로 약 70bp(1bp=0.01%포인트) 급등했다. 국고 10년 금리도 연초 1.75%에서 2.04%까지 약 30bp 급등했다. 미국 중앙은행(Fed) 위원들은 미국의 실업률과 물가 수준을 감안하면 기준 금리 인상 시점이 아직 멀었다고 밝히며 금리 인상이나 테이퍼링(양적 완화 축소)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지만 채권 시장은 높아질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며 장기 금리에 인플레 기대를 반영하고 있다.미 10년 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주식 시장은 기술주를 중심으로 조정을 받았다. 나스닥지수는 고점 대비 10% 정도 하락했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지수는 약 5% 하락했다. 장기 금리 하락이 주가 하락을 촉발하자 일부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서는 Fed가 장기채 매입 등을 통해 채권 금리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금리 급등을 바라보는 Fed의 시각은 시장보다 훨씬 차분해 보인다. “장기 금리 상승은 경기와 물가를 반영한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인위적 개입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Fed 내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과거를 돌아보면 Fed는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하거나 경기가 둔화할 때 기준 금리를 낮추거나 장기채를 매입해 금리를 낮추는 방법으로 대응해 왔다. 명목 금리를 인플레이션보다 낮게 낮춤으로써 실질 금리를 마이너스 상태로 유지시키고 이를 통해 경제 주체들의 인플레 기대 심리를 자극해 결국 소비와 투자를 회복시킨다는 계획이었다(명목금리=실질금리+인플레이션 기대). 하지만 결과적으로 Fed가 목표로 했던 2%의 인플레는 현실화하지 못했고 채권 금리가 전체적으로 낮아지면서 금리를 인하할 수 있는 여력 자체도 과거 대비 큰 폭으로 줄었다. 미래 경기 쇼크가 발생했을 때 중앙은행이 대응할 수 있는 여력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실패의 과정들을 되돌아본 이후 2020년 8월 Fed는 2012년부터 고수해 왔던 2% 인플레 목표에 변화를 주기로 결정했다. 이전까지는 인플레가 2%를 넘으면 기준 금리를 인상해 대응해 왔지만 향후에는 미국의 인플레가 긴 시계에서 평균 2%에서 형성되도록 한 것인데 물가 목표 수준을 사실상 ‘상향’한 것이다.
2012년부터 2020년까지 미국의 개인 소비 지출 물가는 1.8% 내외에서 형성돼 왔는데 향후 8년간 물가 상승률이 약 2.2%에서 형성된다면 평균적으로 2% 물가 달성이 가능하다. 물가가 4년간 2.4%씩 상승하더라도 평균 2% 물가가 가능해진다. Fed는 평균 2% 물가 달성에 필요한 기간 등을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떤 경우라고 하더라도 Fed가 이끌어 내려는 인플레 수준은 과거보다 높아진 2% 초·중반이 될 것이고 이는 장기 금리를 과거보다 높이는 요인이 된다.
또 한 가지 변화는 Fed가 장기채 매입을 통해 금리를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시킬 가능성이 과거보다 낮아졌다는 점이다. 그동안 Fed가 다양한 정책들을 펼쳤던 이유는 인플레에 대한 시장의 기대를 높이기 위한 측면이 컸다. 하지만 현재는 이미 기대 인플레가 Fed가 의도한 수준(2% 내외)까지 높아진 상황이다.
이러한 여건에서 Fed가 장기채를 매입하면 유동성이 추가로 공급되면서 기대 인플레를 더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인위적으로 금리를 낮게 장기간 유지시킨다면 낮은 명목 금리 자체가 인플레 기대 형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Fed는 이에 따라 높아진 인플레이션 목표치가 자연스럽게 장기 금리에 반영되도록 하는 방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Fed는 지난해 8월 물가 목표제에 큰 변화를 줬다. 전반적 금리와 물가가 과거 우리의 경험보다 기조적으로 높아질 가능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우리는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거의 10년 동안 저물가·저금리 시대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기조적으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거나 중금리 수준으로 금리가 높아지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지, 금융 시장과 각 경제 주체들의 삶에 어떤 변화와 영향을 미칠지 명확하게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다음 몇 가지 가능성은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인플레 헤지 기능을 제공하는 자산군은 상대적으로 견조한 투자 수요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물가연동국채, 변동금리채권, 원가 인상을 최종 가격에 반영해 마진을 확보할 수 있는 기업의 회사채와 원자재 관련 상품 등이 이에 해당될 것으로 보인다.
둘째, 저금리에 혜택을 봤던 자산들, 즉 금리 상승에 취약한 자산군들은 가격 조정을 겪을 수 있다. 업종과 산업 간 차별화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저금리에 의존해 왔던 재무 상태가 부실한 기업들은 대출 금리 상승으로 부정적 영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셋째, 실제 경기 회복이 수반된다면 각국에서는 통화 정책 정상화 시점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판단된다. 한국 경제는 올해와 내년 3% 내외의 성장이 예상됨에 따라 내년 상반기께 기준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하반기부터는 내년 기준 금리 인상 기대를 반영해 3년과 5년 금리가 10년 금리보다 더 빠르게 상승하면서 장·단기 금리 커브는 축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선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
2020 하반기 채권 부문 베스트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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