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드는 인플레이션 우려와 국채 금리 상승…각국 중앙은행은 디지털 통화 시대 역할 고민

[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분석]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은 코로나19 팬데믹 선언 이후 1년 만에 종료 가능성을 시사했다./연합뉴스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은 코로나19 팬데믹 선언 이후 1년 만에 종료 가능성을 시사했다./연합뉴스
“목적지에 거의 다 왔다(We are almost there).” 세계보건기구(WHO)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팬데믹(세계적 유행)으로 선언한 이후 1년 만에 종료 가능성을 시사한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 알르세기센터 소장의 발언이다.

지난 1년 동안 ‘잃어버린 시간’이라고 부를 만큼 모든 세계인이 겪은 고통과 두려움을 고려하면 가장 기다렸던 격문이다.세계 경제, ‘격리’에서 ‘연계’ 체제로 이행 예상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파우치 소장의 발언으로 세계 경제와 증시는 단순히 코로나19 사태 이전으로 복귀되는 이상으로 변화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 전염성이 강한 코로나19는 백신이 개발되기 전까지 유일한 대처 방안이 ‘격리’였던 점을 감안하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접어들면 세계 경제는 ‘연계’ 체제로 이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 백신 보급 속도를 감안해 가장 최근 발표한 국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중간 전망을 보면 올해 세계 경제는 5.6%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작년 12월 내놓았던 4.2%와 비교하면 3개월 만에 1.4%포인트를 상향 조정된 것이어서 ‘성장률 서프라이즈’ 수준에 해당한다. 금융 위기와 달리 경제 시스템에 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주가 재상승·유동성 숙취 극복, ‘트리플 Re’에 달렸다
주목해야 할 것은 올해 국별 성장률이 코로나19 백신을 자체 개발하고 얼마나 빨리 보급하느냐에 따라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주도로 가장 빨리 경제 활동을 재개하고 백신을 개발해 보급한 중국 경제는 지난해 유일하게 플러스 성장세를 보인 데 이어 올해도 8%에 육박하는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미숙한 대응으로 경제 피해가 많았던 미국 경제는 조 바이든 정부 들어 백신 보급이 빨라지면서 4월 말 발표될 올해 1분기 성장률이 10% 이상 급반등할 것으로 예상된다. OECD도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을 6.5%로, 3개월 전에 내놓았던 3.2%를 두 배 이상 뛰어넘을 것으로 수정 발표했다.

반면 국민의 자발적인 협조로 지난해 상반기까지 ‘방역 선진국’으로 높게 평가받았던 한국 경제는 그 후 자체 백신 개발과 보급이 늦어지면서 올해 성장률이 3.3%에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올해 세계 경제가 중국과 미국에 의해 주도되는 만큼 두 국가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35%가 넘는 한국 경제는 최소 7% 이상 성장률을 기록해야 한다. 한국 경제 내부적으로 대외 여건 호재를 활용하는데 문제가 많다는 점을 지적한 뼈아픈 대목이다.

문제는 지난해 코로나19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중앙은행 역할을 포기했다는 비판을 받을 만큼 풀어놓은 유동성을 흡수하지 못한 여건에서 세계 경제가 빠르게 회복되면 그 ‘숙취(hangover) 현상’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인플레이션 우려와 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국채 금리의 상승 문제다.

미국은 지난 2월 물가가 안정된 것으로 나왔지만 3월 이후에는 ‘인플레이션 스파이크’가 우려된다는 시각까지 나오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충격이 본격화됐던 지난해 3월 이후 물가가 이례적으로 낮았던 점을 감안하면 미국 중앙은행(Fed)의 통화 정책의 잣대가 되는 근원 개인 소비 지출(PCE) 물가 상승률은 3%, 5월은 4% 이상 급상승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국채 금리도 그렇다. 미국 재무부가 계획하고 있는 올해 국채 발행분은 2조 달러로 지난해 1조2000억 달러에 비해 2배에 가깝다. 반면 Fed의 매입 계획분은 지난해 2조 달러에 절반에도 못미치는 9000억 달러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잔여 물량이 시장에서 소화돼야 하지만 국채 가격 하락이 예상되는 여건에서는 오히려 보유 국채를 내다팔 가능성이 높다.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골디락스’ 국면 도래할까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숙취 현상을 극복하고 주가가 추가적으로 상승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충족돼야 할까. 월가에서는 ‘트리플 리(Re)’가 확인돼야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트리플 Re는 경기 회복(Reflation), 보상 소비(Revenge consumption, 재고 축적(Restocking)의 영문 첫 글자 딴 용어다.

트리플 Re 중 통화 정책과 관련된 리플레이션은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골디락스 경기 국면을 말한다. 너무 뜨거우면 ‘테이퍼링’ 우려가, 너무 차가우면 ‘통화 정책의 무력화’ 명제가 불거지기 때문이다.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지만 불안하고 인플레이션 우려는 일시적이며 고용 목표는 2∼3년 이후에도 어렵다고 보는 제롬 파월 Fed 의장이 3월 Fed 회의에서 어떤 결과를 내놓을지 자못 궁금하다.

문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접어들면 가장 우려되는 숙취 현상이 이미 나타남에 따라 유일한 대안으로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가 부상하고 있다. 금융 위기 직후 처음 선보인 비트코인 가격이 5만7000 달러를 넘어섰다. 1년 전에 비해 12배 이상 급등했다. 씨티은행은 올해 안에 31만 달러까지 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가상화폐 가격이 전반적으로 상승하고 인식도 개선됨에 따라 다양한 변화가 일고 있다. 글로벌 기업은 자사 상품의 결제 수단으로 가상화폐를 고려 중이다. 글로벌 금융사도 비트코인을 자산에 포함하면서 상장지수펀드(ETF) 등 관련 상품을 출시하기 시작했다. 각국 국민의 화폐 생활도 빠르게 변하면서 현금 없는 사회가 닥치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도 변신을 서두를 수밖에 없다. 기업·금융사·국민의 화폐 생활이 가상화폐로 전개됨에 따라 중앙은행은 ‘디지털 통화(CBDC :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를 검토할 수밖에 없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세계 모든 중앙은행의 80%가 도입을 전제로 디지털 통화를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디지털 통화 시대가 전개되면 각국의 중앙은행은 ‘통화 정책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 하는 또 다른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네트워킹 효과와 수확 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디지털 통화 시대에는 중앙은행의 목표를 ‘물가 안정’에만 둘 수 없다. Fed는 2012년부터 물가 안정과 고용 창출을 양대 책무로 설정, 통화 정책을 운용해 오고 있다.

3년 전 비트코인 투기의 악몽으로 디지털 원화 도입을 주저했던 한국은행은 다른 나라보다 뒤진 잃어버린 시간을 좁히기 위해 디지털 통화 지표 개발, 통화 정책 관할 범위 확대, 통화 정책 전달 경로 유효성 점검, 경기 예측력 제고 등의 과제와 함께 고용 창출 목표를 넣을 것인지를 놓고 벌이고 있는 한국은행법 개정 문제를 마무리해 놓아야 한다.

한상춘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