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 못 내면 국민의힘 존재감 상실, 국민의당 존립 기반 ‘흔들’…막판까지 옥신각신
단일화 효과 거두려면 단일화 이후 두 후보가 협조관계 유지하느냐가 관건

[홍영식의 정치판]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뒤쪽)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지난 3월 15일 서울 영등포 더플러스 스튜디오에서 열린 ‘단일화 비전발표회’에서 각자 자리로 향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뒤쪽)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지난 3월 15일 서울 영등포 더플러스 스튜디오에서 열린 ‘단일화 비전발표회’에서 각자 자리로 향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2002년 11월 16일 밤 12시를 갓 넘겨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대선 후보는 단일화에 전격 합의했다. 이후 두 사람이 포장마차에서 러브샷을 한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다.

양측이 단일화에 합의한 것은 당시 여론 지지율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에게 크게 밀렸기 때문이다. 3자 구도에서는 이 후보가 노 후보와 정 후보를 모두 멀찌감치 따돌리고 1위를 달리면서 당선이 유력시됐다. 이 때문에 노 후보와 정 후보는 물밑 접촉을 통해 단일화에 뜻을 모았다. TV 토론을 거쳐 여론 조사 방식으로 후보를 결정한다고 합의했지만 양측은 여론 조사 질문 문구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단일화가 깨질 것이라는 얘기도 적지 않았다.

노 후보 측은 ‘적합도’를, 정 후보 측은 ‘경쟁력’을 문구에 포함하자고 주장하며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 막판 노 후보가 양보해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에게 경쟁할 단일 후보로 노무현·정몽준 후보 가운데 누구를 지지하십니까’라는 문구로 합의했다. 그렇지 않아도 지지율에서 앞서 나가던 정 후보 측은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고 환영했다.

지지율 뒤지던 노무현, ‘통 큰 양보’로 판세 뒤집어

하지만 2002년 11월 24일 밤 12시를 넘겨 발표된 여론 조사 결과는 노 후보의 승리였다. 여론 조사에서 뒤지던 노 후보가 승기를 거머쥔데 대해 당시 전문가들은 노 후보가 ‘통 큰 양보’를 한 것이 역전의 발판이 됐다고 분석했다. 1주일 동안 문구를 놓고 양 후보 측이 지지고 볶고 하는 모습에 싫증이 났던 국민들은 막판에 과감하게 양보한 노 후보가 신선하게 다가왔고 그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여론 조사 질문 문구를 어떻게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후보의 결단력 있는 모습이 여론에 호소하는 힘이 더 강했다는 것이 증명됐다.

적합도냐, 경쟁력이냐를 놓고 단일화 때마다 화두가 되는 이유는 뭘까. 적합도는 경쟁 상대 변수를 배제하고 그 후보에 대한 선호도로 판단하게 하는 것이다. 선거에서 그 사람이 선출될 가능성 여부를 떠나 개인의 호불호가 작용하는 것이다. 경쟁력은 이런 개인 호불호를 떠나 상대 후보와 싸워 이길 수 있는지 여부를 보고 선택하는 것이다. 실제 여론 조사에서 적합도와 경쟁력으로 물으면 지지율이 달리 나온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도 적합도냐, 경쟁력이냐라는 단일화 질문 문구가 쟁점이 됐다.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게 맞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적합한 후보(적합도)’를,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이길 수 있는 후보(경쟁력)’를 각각 고수하면서 팽팽하게 맞섰다. 끝내 합의하지 못하고 안 후보가 전격 사퇴하면서 단일화 협상은 깨졌다. 안 후보는 밤 12시를 넘겨 긴급 기자 회견을 자청해 “문 후보와의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단일화 방식을 놓고 더 이상 대립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사퇴를 선언했다.

당시 기자들 사이에선 안 후보가 노 후보의 길을 따라 과감하게 양보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흘러나왔지만 그 반대였다. 문 후보는 단일화가 깨진데 대해 “악마는 디테일 속에 있다”고 했다. 안 후보는 문 후보 지지를 선언했지만 그 강도는 미지근했다. 단일화가 ‘반쪽’에 그친 것이다. 안 후보의 지지자들이 문 후보 쪽으로 옮겨 가지 않았고 결국 문 후보는 본선에서 박 후보에게 패배했다.

지지율 0.01% 차로 승부 갈릴 수 있어 양보 힘들어

4월 7일 실시되는 서울시장 보궐 선거를 앞두고서도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후보 등록 시한(3월 19일)까지 단일화 합의에 실패했다. 오 후보는 ‘어느 후보가 야권 단일 후보로 적합하다고 생각하느냐’, 즉 적합도를 선호했다. 반면 안 후보는 ‘여당 후보를 상대로 누가 경쟁력이 있느냐’를 선호했다. 안 후보 측은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상대해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작용했고 오 후보 측은 ‘적합도’ 조사가 유리하다고 봤다.

오 후보 측은 경쟁력 부분을 양보했다. 국민의힘 내 경선에서 오 후보가 승리하면서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나경원 전 원내대표 등 다른 후보를 지지했던 지지층이 오 후보 쪽으로 결집한 것이다. 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파문이 확산되면서 국민의힘 지지율이 오른 것도 오 후보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오 후보는 박 후보와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게 되자 양보해도 괜찮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이라는 든든한 뒷배도 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오 후보는 유·무선 전화 여론 조사를 하자고 한 반면 안 후보는 무선 전화만 고수했다. 유선 전화 비율이 높을수록 오 후보에게, 무선 전화로만 조사한다면 안 후보에게 유리하다고 여겨지면서 양측이 팽팽하게 맞선 끝에 협상이 무산됐다.

안 후보는 3월 19일 “국민과의 단일화 약속을 지키겠다”며 오 후보와 국민의힘이 요구한 단일화 방식을 수용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오 후보는 “새로운 내용이 없다”고 거절하면서 핑퐁 게임을 이어 갔다. 단일화 협상이 핑퐁게임을 지속하자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내에서 거센 비판이 나왔고, 이에 압박을 느낀 두 후보는 3월 19일 밤 직접 만나 단일화에 전격 합의하면서 기나긴 협상의 마침표를 찍었다.

단일화 협상이 가다 서다를 반복한 것은 오 후보와 안 후보 모두 자신이 단일화 후보가 돼야 보수에 더해 중도층까지 끌어들여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동상이몽’ 주장을 한 데다 지지율이 엎치락뒤치락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국민의힘은 제1 야당으로서 후보를 내지 못한다면 존재감이 약화될 것을 우려했고, 국민의당은 안 후보가 단일화 경선에서 패배할 경우 당 존립이 흔들릴 수 있어 더욱 그렇게 됐다.

단일화 과정에서 문구 하나가 그리 큰 문제가 되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지지율이 팽팽하다면 지지율 0.01% 차이에도 승부가 갈릴 수 있기 때문에 후보들은 쉽사리 양보하기 힘들다. 문재인 후보가 “악마는 디테일 속에 있다”고 표현한 그대로다.

이 때문에 아름다운 단일화는 근본적으로 존재하기 힘들다. 지금까지 대표적인 단일화 성공 사례로 꼽히는 노무현-정몽준 후보도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했다. 정 후보 측은 노 후보 측이 대선 주자 위상에 걸맞게 대우해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선거 전날 밤 지지를 철회하면서 단일화는 사실상 깨졌다.

정치 인생 마지막 꿈 포기 쉽지 않아 단일화 협상 늘 험난

단일화가 어려운 이유는 대선이든, 서울시장이든 각 후보들이 정치 인생의 최정점을 어떻게 마무리하느냐를 결정짓기 때문이다. 그 꿈을 위해 달려왔는데, 쉽사리 남에게 줄 수 없는 것이다. 단일화는 1987년 대선 때 김영삼-김대중 후보 간, 1997년 대선 때 김대중-김종필 후보 간에도 시도됐다. 1987년엔 실패했다. 양김(金) 모두 강력한 지역 지지 기반이 있었고 대권욕이 워낙 강했기 때문이다. 결과는 노태우 후보의 승리. 이때의 쓴잔을 기억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7년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 권력 분점을 통한 이른바 DJP연합을 이뤘고 대선에서 이겼다.

단일화의 성공 조건은 권력 분점이다. DJP연합이 대표적이다. 어느 일방의 희생만 강요해선 실패한다. 안철수-오세훈 후보가 서울시 공동 운영 구상을 밝힌 것도 이런 차원이다. 또 다른 성공 조건은 지지 기반이 달라야 한다. DJP연합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호남과 충청이라는 지지 기반,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적 기반이 각각 달라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일화에 성공했더라도 집권에만 성공했을 뿐 이질적 세력들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권력 균점은 필시 갈등을 유발하게 된다. DJP연합도 그래서 깨졌다. 노·정 후보가 갈라선 것도 결국 노 후보 측이 정 후보를 차기 대선 주자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 후보와 안 후보가 여러 난관들을 돌파하고 단일화의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단일화 이후 두 후보가 어떤 협조 관계를 유지하느냐가 관건이다.

홍영식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