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 리스크 커지고 소비자 인식 변화…한국 기업도 달라진 ‘게임의 규칙’ 대응 나서

[스페셜 리포트]
‘E·S·G가 성장 기회’…향후 10년 좌우할 비즈니스 테마로
#테슬라의 가장 큰 수익원은 전기차가 아니라 탄소 배출권이다. 지난해 테슬라는 탄소 배출권 거래로 15억8000만 달러의 이익을 얻었다. 차량 판매는 여전히 적자를 벗지 못해 2020년 사상 첫 흑자(7억2100만 달러)는 탄소 배출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애플은 2030년까지 애플 기기 제조 과정 전체에서도 탄소 배출량 제로(0)를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애플은 70곳 이상의 협력 업체에도 애플 제품 생산에 100%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한국 메모리반도체 기업인 SK하이닉스도 여기에 동참해 청정 에너지로 생산한 부품을 공급할 것으로 보인다.

두 사례는 산업계에 부는환경·사회·지배구조(ESG)의 흐름을 보여준다. ESG는 금융과 산업 시장의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ESG는 단순히 사회 공헌 차원에서 논의되는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투자 스타일이나 테마 펀드로만 봐서도 안 된다.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가 곧 투자의 핵심 지표가 되고 주가와 영업 실적을 흔들고 있다. 국제 금융 기구와 각국 중앙은행은 기후 리스크와 사회적 책임 요소를 산업과 금융의 가치 평가에 반영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기후 변화와 관련한 규제와 비용이 증가하면서 배터리, 재생에너지 등 환경(E) 중심 포트폴리오 전환은 기업에 숙명이 됐다. 애플 사례에서 보듯 글로벌 공급망에도 ESG가 영향을 끼치고 있다.
‘E·S·G가 성장 기회’…향후 10년 좌우할 비즈니스 테마로
E를 중심으로 한 포트폴리오 전환이 핵심

ESG의 핵심은 환경(E)이다. 특히 국제결제은행(BIS)이 기후 변화가 금융 위기를 촉발하는 ‘그린 스완’에 대해 경고하면서 ESG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BIS와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 금융 기구가 기후 위기가 심각한 금융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강조하며 글로벌 금융회사의 행동을 촉구하고 나섰고 기후 리스크를 산업과 금융의 가치 평가에 반영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기업들은 배터리와 신재생에너지 등 탈석탄 시대를 준비하는 신성장 동력을 개발하며 사업 구조를 재편하고 나섰다.

SK는 물론 삼성·현대차·LG·롯데·포스코·GS 등 주요 기업들이 E를 중심으로 한 사업 구조 재편을 필수 요소로 삼고 있다.

환경 전문가들은 수출로 성장해 온 한국 경제가 탄소 이슈에 대해 미온적으로 대응한다면 글로벌 밸류체인(가치사슬)에서 영원히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이미 기후 변화를 중심으로 ESG와 관련한 상세한 정보를 공시하는 것이 세계적인 흐름이다.

대표적인 예가 기후 변화 관련 재무 정보 공개 협의체(TCFD : Task Force on Climate-related Financial Disclosures)다. 2015년 G20 재무장관·중앙은행장의 요청으로 금융안정위원회(FSB)가 만들어져 TCFD를 발표했다. TCFD가 도입되면 기후 위기 리스크를 금융 안정성 모니터링에 반영해야 한다.

또 금융회사와 기업은 기후 위기 시나리오에 따른 재무적 영향을 분석하고 이를 관리하기 위한 지배 구조, 전략, 리스크 관리, 지표·목표 등을 투명하게 공시해야 한다. 이는 곧 기업의 자산·부채·자본 형성과 기업 가치 평가에 반영되고 한국 역시 2030년까지 유가증권시장 상장 기업 전체가 ESG 공시 의무화를 앞두고 있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온실가스 1톤당 평균 거래비용은 20달러지만 2040년에는 140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배출권 가격이 오르면 온실가스를 다량 배출하는 기업의 영업이익·순이익·현금흐름이 크게 감소하게 된다.

이에 따라 한국 금융업계는 ‘탈석탄 경영’을 앞다퉈 선포하며 석탄 기업에 대한 투자와 대출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또한 신규 석탄 발전소에 대한 프로젝트 파이낸싱과 채권 인수를 전면 중단했다.

탄소 배출과 함께 ‘RE100’ 역시 많은 기업이 도입하고 있다. RE100은 기업 활동에 필요한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RE100을 선언한 기업은 2050년까지 기존 소비 전력을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단계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RE100 가입 기업은 작년 말 기준으로 애플과 구글 등 240여 곳에 이른다.

SK는 한국 기업 최초로 ‘RE100’에 가입했다. 최근에는 수소 생산 사업에도 뛰어들겠다는 비전을 내놓았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미국·유럽·중국 지역의 모든 사업장에서 100% 재생에너지 사용을 추진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했다고 밝혔다. 한화큐셀 역시 한국 재생에너지 기업 중 최초로 한국 사업장의 RE100을 선언했다. 이에 따라 한화큐셀은 제조·사업 수행 과정에서도 재생에너지를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충북 증평과 청주에 있는 공장을 100% 재생에너지로 가동할 계획이다.

LG화학은 라텍스 장갑 원료를 생산하는 전남 여수 특수수지 공장, 경기 오산 테크센터를 재생에너지 전력만으로 가동하기로 했다. 전기차 배터리 소재를 생산하는 충북 청주 양극재 공장도 전기 사용량의 30%를 재생에너지를 통해 조달하기로 했다.
‘E·S·G가 성장 기회’…향후 10년 좌우할 비즈니스 테마로
이사회가 대표 결정…지배 구조 혁신 이어져

ESG의 S는 사회 책임 경영 범주에 속한다. 최고경영자(CEO) 리스크나 기업의 평판 리스크가 주가를 뒤흔드는 시대다. S는 인권, 노동, 공급망 관리, 사회적 책임 등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 그 자체다. 자신의 가치를 소비와 투자에 반영하고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MZ세대(밀레이얼+Z세대)는 특히 S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윤리적(사회적) 소비의 대두는 통계로도 나타난다. 지난해 8월 한국리서치가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5명 중 3명(62%)은 ‘공동체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소비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착한 소비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67%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ESG의 마지막 퍼즐은 이사회 내 여성 비율과 주주 권익 보호, 지배 구조 투명성 확보, CEO 임금 산정 등 지배 구조(G)와 관련한 이슈다. 이사회 다양성(diversity)’에 관한 기관투자가들의 정보 공개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세계 3대 자산 운용사인 SSGA(State Street Global Advisor)는 2021년부터 투자 대상 기업의 성별·인종 다양성 정보 공개를 요구하는 정책 문서를 공개했다. SSGA는 이사회 다양성 부족을 이유로 전 세계 234개 기업의 이사회 지명자에 반대표를 던졌다.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 기관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 또한 미국과 유럽 기업에 대한 투표 기준에 여성 이사 비율을 포함시켰다.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이 E와 S에 비해 G에 대한 준비가 덜 됐다고 평가한다.

한국에서는 최근 대기업을 중심으로 여성 사외이사를 영입하거나 지배 구조 투명성을 확보하는 등 주주 총회에서 변화된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SK(주)는 최근 이사회 중심의 지배 구조 혁신을 실시했다. 이사회 권한을 대폭 늘려 대표이사 평가, 중·장기 전략 수립 등 경영 핵심 분야에 대한 심의 권한을 추가로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인사·전략·감사 등 3대 핵심 영역을 이사회와 폭넓게 공유하고 최고 의결 기구로 이사회의 실질적인 참여 수준과 독립성·전문성을 높여 최태원 SK 회장이 강조해 온 ESG 경영을 완성해 간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삼성전자는 기존 지속가능경영사무국을 CEO 직속 지속가능경영추진센터로 격상하고 사업부에도 전담 조직을 설립했다.

현대차는 이사회 내에 사외이사로만 구성된 ‘투명경영위원회’를 신설했다. 또한 올해 주총에서 첫 여성 사외이사를 임명했다. 계열사인 기아와 현대모비스도 주총에서 여성 사외이사를 임명했다.

LG는 이사회 내에 ‘ESG위원회’를 두기로 했다. 이 밖에 내부 거래의 투명성과 적정성을 제고하기 위해 내부거래위원회를 신설했고 감사위원회의 권한과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회사의 재무 건전성 감사 기능뿐만 아니라 준법 경영 측면에서 업무의 적정성을 독립적으로 감독하는 등 역할을 확대하고 감사위원회를 보좌하고 업무 수행을 지원하는 독립적인 ‘내부감사부서’를 설치하기로 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