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차별’ 인정…“버스 내 휠체어 공간 정면 보게 설치해야” 판결

[법알못 판례 읽기]
장애인만 돌아앉게 만든 버스 휠체어 좌석은 차별일까
버스 안에 휠체어 전용 공간을 만들 때는 해당 공간을 이용하는 장애인이 정면을 바라볼 수 있게끔 설치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또한 대법원은 저상버스가 아닌 2층 광역버스일지라도 버스 안에 규정된 길이와 너비의 휠체어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건은 2015년 겨울로 거슬러 올라간다. 휠체어를 사용해야 이동할 수 있는 지체장애인 A 씨는 교통 운수 사업자인 피고가 운행하는 2층 광역버스에 탑승했다. A 씨는 버스에 길이 1.3m 이상, 폭 0.75m 이상의 휠체어 공간이 마련돼 있지 않아 버스 탑승 후 방향 전환이 어려웠고 결국 다른 승객들과 달리 정면이 아닌 옆을 바라본 채 버스를 이용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A 씨는 버스 회사에 위자료 차원의 손해 배상금 300만원을 지급하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또 장애인 차별금지법 제48조 제2항에 따라 휠체어 승강 설비가 설치된 버스는 휠체어 사용자를 위해 길이 1.3m 이상, 폭 0.75m 이상의 전용 공간을 마련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1심 “버스 회사 잘못 없어”
1심은 원고인 A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선 재판부는 A 씨가 이용한 버스가 저상버스가 아닌 2층 버스라는 것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버스는 저상버스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교통약자법 시행규칙 관련 규정에 따른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전용 공간 확보 의무가 있다고 볼 수 없다”며 “원고의 주장은 이유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교통 약자 이용 편의 증진 계획에 따른 서울시와 경기도의 2015년 저상버스 도입 계획에는 아직 2층 광역버스에 대한 저상버스 도입이 계획돼 있지 않았다”며 “교통약자법 시행규칙을 보면 저상형 시내버스는 자동 경사판 등의 승강 설비를 갖출 의무를 부여하고 계단이 있는 버스는 승강 설비 없이 제1계단의 높이를 낮출 수 있는 것으로 해 승강 설비에 대한 선택의 여지를 남겼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모든 유형의 버스가 일률적·전면적으로 휠체어 승강 설비를 설치할 이유는 없다는 뜻이다.

법원은 또한 A 씨가 차별 행위를 당했다는 점 역시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버스의 뒤쪽 출입문에 수동식 경사로가 설치돼 버스 운전사가 수동식으로 경사로를 내려 휠체어 이용 승객의 탑승을 도울 수 있도록 한 점 △버스 내부에 교통 약자 전용 하차 벨, 교통 약자용 안전벨트가 설치돼 있고 △버스 운전사의 운전석 계기판에 휠체어 탑승 여부가 표시되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교통 사업자인 피고가 고의 또는 과실로 장애인인 A 씨에 대해 차별 행위를 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뒤집힌 2심 “위자료 지급해야”
이번 판결은 2심에서 뒤집혔다. 2심은 1심과 달리 버스 회사가 A 씨에게 손해 배상금 30만원을 지급해야 하며 버스 안에 휠체어 전용 공간 역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피고는 이 사건 버스에 교통약자법 시행규칙이 정한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전용 공간을 확보하지 않았는 바 그 때문에 휠체어 사용자인 A 씨가 버스에 탑승한 후 전용 공간에서 방향 전환이 어려웠고 다른 승객들과 달리 버스 정면을 응시하지 못하게 됐다”며 “피고는 버스 이용에 관한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지 않았으므로 장애인차별법이 금지하는 차별 행위를 했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또한 버스 회사가 운행하는 버스 중에서 휠체어 승강 설비가 설치된 버스에 휠체어 사용자를 위해 길이 1.3m 이상, 폭 0.75m 이상의 전용 공간을 확보할 것을 강조했다.

재판부는 A 씨가 차별 행위를 당했다는 점 역시 인정했다. 재판부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는 교통 사업자와 교통 행정 기관은 장애인이 이동 및 교통수단 등을 장애인이 아닌 사람과 동등하게 이용해 안전하고 편리하게 보행 및 이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필요한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이 사건 버스는 시행규칙이 정한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전용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휠체어 사용자가 우측면을 바라본 상태에서 착석해 버스가 운행될 경우 장애인은 버스의 급정거 또는 급출발 등 움직임에 따라 정면을 바라보고 착석해 이동하는 다른 승객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높은 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장애인은 탑승 내내 자신의 모습이나 표정이 일반 승객들의 정면 시선에 위치하게 돼 상당한 모멸감과 불쾌감 또는 소외감을 느낄 수 있는 바 이는 모든 생활 영역에서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함으로써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 참여와 평등권 실현을 통해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구현하고자 하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입법 취지에 반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대법 “차별 맞지만 위자료 지급은 불인정”
대법원 역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버스를 탈 때 다른 승객과 달리 측면을 바라보도록 한 버스 좌석 구조는 차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위자료 지급 부분은 인정하지 않았다. 버스 회사가 고의로 차별 행위를 하지는 않았다는 취지에서다.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4월 1일 A 씨가 운수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 배상 청구 소송에서 ‘버스 내 휠체어 전용 공간을 마련하라’는 부분은 원고 승소 판결하면서도 ‘운수 회사가 30만원의 위자료를 A 씨에게 지급하라’는 부분은 패소 취지로 사건을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대법은 “원심은 이 사건 버스에 설치된 교통약자용 좌석은 버스 진행 방향으로 볼 때 0.97m에 불과하므로 운수 회사가 장애인차별금지법상 편의를 제공해야 하는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는데 대법원은 이 같은 원심 판단을 수긍했다”고 말했다.

다만 차별 행위에 대해 운수 회사 측의 고의·과실 여부는 없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은 “교통약자법 시행규칙에서 교통 약자용 좌석의 길이와 폭을 측정하는 방법을 분명히 규정하지 않은 점 등을 종합하면 피고에게 정당한 편의 제공 의무 위반에 관한 고의 또는 과실이 없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돋보기] 차별적 설계로 탑승 내내 모멸감·불쾌감 느낄 수 있어
이번 판결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8조상의 구제조치청구권이 대법원에서 인정된 최초의 판례였다. 장애인 A 씨를 대리해 승소를 이끈 윤정노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위 청구권에 근거해 장애인 차별의 시정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특히 장애인의 이동권 관점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윤 변호사는 교통 약자의 이동 편의 증진 법령상 피고 회사가 운영하는 버스에 휠체어 전용 공간을 확보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지만 이러한 공간을 마련하지 않았고 이 사건 버스의 구조상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진행 방향과 어긋나게 탑승해야 하는데, 이에 따라 당장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는 법리를 폈다. 또한 장애인 승객은 비장애인 승객들의 시선에 그대로 노출돼 불쾌감·소외감·모멸감을 느끼게 되며 이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19조 제4항 위반으로 차별 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피고 측은 법무법인 광장이 맡았다. 광장은 피고가 운영하는 버스 회사에 휠체어 전용 공간을 확보해야 할 법적 의무가 없고 설령 법적 의무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미 진행 방향은 아니지만 휠체어 전용 공간이 설치돼 있다는 법리를 폈다. 또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19조의 해석상 버스 내에서 장애인이 측면을 바라보고 휠체어를 고정한 채 이동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장애인이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장애인이 교통수단 등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는 데 필요한 편의를 제공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남정민 한국경제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