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윤석열·김동연·금태섭 등 묶어 제 3지대 창당 구상…국민의힘, ‘야권 플랫폼’으로 저지
[홍영식의 정치판] 야권이 ‘4·7 재보궐 선거’가 끝나자마자 대선 주도권을 놓고 본격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선거를 승리로 이끈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그 중심에 서 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 손을 내밀면서 ‘킹 메이커’ 역할에 나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신당 창당을 공개적으로 밝힌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도 만나 대선 판 짜기에 대한 얘기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도 윤 전 총장에게 러브콜을 보내며 영입 판 만들기에 나서고 있다. 윤 전 총장을 사이에 두고 양측이 쟁탈전에 나선 양상이다. 김 전 위원장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간의 중도 확보전도 벌어지고 있다.주목되는 것은 김 전 위원장이 자신이 1년 넘게 몸담았던 국민의힘을 원색적으로 비판하고 나선 점이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민의힘을 향해 ‘아사리판’이란 표현까지 썼다. 국민의힘에선 격렬한 반박이 나올 수밖에 없다. 장제원 의원은 ‘노욕에 찬 기술자 정치인’, ‘희대의 거간 정치인’이라고 공격했다.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김 전 위원장이 1993년 동화은행 비자금 수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것과 관련, “(윤 전 총장이) 어마어마한 돈의 뇌물을 전과자의 손을 잡겠나”라고 했다. 어제의 동지들이 하루 아침에 적으로 돌변한 것이다. 선거 끝나자마자 야권에서 불붙은 대선 주도권 경쟁
김 전 위원장이 퇴임한 지 1주일도 채 안 돼 국민의힘을 거세게 공격하는 데 대해 정치권에선 그 의도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제3당 창당을 통해 대선판을 주도하겠다는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김 전 위원장과 가까운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김 전 위원장의 평가는 ‘국민의힘 내 대선 주자로선 희망이 없다’는 것”이라며 “윤 전 총장과 김동연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금 전 의원 등을 끌어들여 제3지대에서 당을 만들겠다는 의도 아니겠나”라고 했다.
그는 또 “야권에서 지지율이 가장 높은 윤 전 총장과 손잡고 국민의힘 바깥에서 충격을 가하면 국민의힘 상당수 의원들을 흡수해 거대 야당을 새로 만들수 있을 것이라는 게 김 전 위원장의 생각인 것 같다”고 했다. 마침 금 전 의원도 신당 창당 얘기를 꺼내고 있는 마당이다. 금 전 의원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신당의 성격에 대해 “민주당과 국민의힘 사이 이른바 중도를 지향하는 것이 아닌 양당을 대체하는 당”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런 구도가 뜻대로 진행되기엔 걸림돌도 적지 않다. 국민의힘은 자기 당 소속 오세훈 서울시장과 박형준 부산시장이 당선되면서 야권 대선판을 주도할 힘이 생겼다. 두 자릿수 지지율을 보이는 주자가 아직 보이지 않는다는 약점은 있지만 대선판은 하루 아침에 뒤집어질 수 있고 거대 정당의 힘을 무시하지 못한다.
국민의힘은 윤 전 총장을 영입하기 위한 판 깔기에 나서고 있다. 문제는 국민의힘이 윤 전 총장이 호응할 수 있는 새로운 틀을 만들 수 있느냐 여부다. 안 대표가 이끄는 국민의당과의 합당 시기를 놓고 내홍이 벌어지고 있다. 전당대회 전인지 후인지가 관건이다. 주호영 원내대표와 윤 전 총장과 가까운 정진석 의원은 선(先) 합당론을 주장하고 있다. 국민의힘이 야권 단일화의 플랫폼을 하루빨리 만들어 그 중심축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내년 대선에서 유리한 구도에서 더불어민주당과 맞붙기 위해선 윤 전 총장을 하루속히 끌어들여 공고한 판을 만들 필요가 있고 안 대표의 국민의당과 통합이 그 전제 조건이라는 게 이들의 논리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서울시장 보궐 선거 단일화에 이어 중도 성향인 국민의당과 야권 통합을 이루면 야권 중심이 자연히 국민의힘에 쏠리고 윤 전 총장도 제3지대보다 이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윤 전 총장이 제3지대로 갈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서라도 안 대표와의 통합 작업을 조속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물러나는 원내대표가 아니라 새 지도부가 들어선 다음 국민의당과의 통합을 비롯한 외연 확장 전략을 짜는 게 맞다는 반대 주장도 만만치 않게 나온다.
국민의힘과 김 전 위원장 양측으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윤 전 총장의 선택이 주목된다. 윤 전 총장과 가까운 한 법조계 인사는 “윤 전 총장이 그런 움직임에 대해 특별하게 얘기를 꺼내지 않고 있다”며 “지금은 각계 전문가들을 만나 경제·외교·안보·복지·교육 등에 대한 내공을 쌓는 데 열중하고 있다”고 했다.
측근 그룹에선 국민의힘 합류론과 제3지대 신당행(行)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국민의힘 합류론은 대선이 1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제3지대에서 당을 만들어 전국적인 바람을 일으키기엔 시간이 촉박하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에 들어가든 제3지대에 남든 늦어도 올해 10~11월까지는 야권 후보 단일화 경선을 치러야 하는데 그때까지 전국적인 정당 조직을 만들기엔 물리적으로 힘들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올여름까지는 국민의힘에 들어가 조직을 장악하는 게 유리하다는 것이 합류론자들의 주장이다. 키를 쥔 윤 총장, 국민의힘-제3지대 신당行 엇갈려
반면 국민의힘 간판으로는 중도의 힘을 끌어들이기 쉽지 않은 만큼 제3지대에서 힘을 키우는 게 우선이라는 것이다. 윤 전 총장뿐만 아니라 김 전 부총리, 금 전 의원, 홍정욱 전 의원 등 대선 주자들을 모으면 야권 통합 중심에 설 수 있다는 논리를 편다. 그렇게 되면 국민의힘과 적어도 대등한 관계에서 야권 통합을 주도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김 전 위원장도 비슷한 구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김 전 부총리까지 합류시켜 경선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것이다. 김 전 위원장은 이미 지난해 7월 초 기자 간담회에서 “당 밖에 꿈틀꿈틀거리는 사람이 있다”며 “이름을 말할 수는 없지만 어떤 자격을 갖춘 사람이 후보로 나설지 머릿속에 생각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김 전 위원장이 김 전 부총리를 염두에 두고 그런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부총리가 정치권의 주목을 다시 받은 것은 지난해 10월이다. 그가 다산 정약용 선생이 첫 유배 생활을 한 전남 강진 사의재(四宜齋)를 찾아 ‘다산 선생과 국가의 앞날을 생각합니다’는 글을 남긴 게 알려지면서다. 정치권에선 정계 진출을 시사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돌았다. 김 전 부총리는 현재 정치 관련 언급을 일절 피하고 있다. 여야 서울시장 보궐 선거 후보들로부터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도 김 전 부총리는 퇴임 이후부터 주력해 온 사단법인 유쾌한반란 등 활동을 위해 초지일관 뚜벅뚜벅 가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지난 1월 서울시장 선거 불출마 뜻을 밝히면서 페이스북에 “사회 각 분야에서 유능하고 헌신적인 분들이 힘을 합쳐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뛰어난 우리 국민의 역량을 모을 리더십을 만들어야 한다”며 “앞으로도 ‘사회 변화에 기여’하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해 나가겠다”고 여지를 두는 발언도 했다.
김 전 위원장 등이 추진하는 제3지대론이 안착하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윤 전 총장이 오지 않는다면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윤 전 총장을 잡는다고 하더라도 관건은 신당 창당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 현재 제3지대론자들 중 창당 경험이 있는 인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관건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얼마나 동조하느냐의 여부다.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 정도의 정치적 힘을 갖지 않고선 제3지대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은 과거의 사례에서 증명된다. 다만 윤 전 총장과 김 전 부총리 등 유력 대선 후보들이 얼마나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느냐에 따라 변수는 있다.
홍영식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 yshong@hanky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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