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생리 현상 소명 요구는 과도한 인권 침해”
벌금형 200만원 선고

[법알못 판례 읽기]
생리휴가, 증거 없다고 거절한 아시아나 전 대표…‘유죄’ 이유는
‘사용자는 여성 근로자가 청구하면 월 1일의 생리휴가를 주어야 한다.’


근로기준법 제73조에 적힌 내용이다. 이른바 ‘생리휴가’의 법적 근거를 밝힌 조항이다. 회사가 이를 어기면 벌금 500만원 이하의 처벌을 받게 된다. 엄연히 존재하는 법안이지만 생리휴가 제도를 사용하는 여성 노동자는 많지 않다. 현실적으로 사용하기가 어려운 환경에 처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생리휴가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사회적 분위기나 근무 인력 부족, 인사상의 불이익에 대한 우려 등 생리휴가 이용이 어려운 이유는 다양하다. 그 무엇보다 “정말로 월경 중인 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이냐”며 생리휴가의 ‘악용’을 이유로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은 탓이 크다. 하지만 생리 현상을 증명하라는 요구는 과도한 인권 침해로 간주되며 생리휴가 지급을 거절할 사유로 인정받지 못한다.

실제로 ‘생리 현상을 증명할 방안이 없다’는 취지로 여성 직원들의 생리휴가 신청을 계속 거절했던 전직 경영인이 최근 대법원에서 유죄로 확정 판결을 받았다. 승무원들이 신청한 생리휴가를 거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아시아나항공 전 대표에게 벌금형이 내려진 사례다.
“실제 생리하는지 의심”
1심은 “소명 요구는 인권 침해”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4월 25일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수천 전 아시아나항공 대표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김 전 대표는 2014년 5월부터 2015년 6월까지 승무원 15명이 138차례에 걸쳐 낸 생리휴가를 받아주지 않고 실제 생리 현상이 있었는지 소명을 요구한 혐의로 2017년 재판에 넘겨졌다.

김 전 대표 측은 여성 승무원들의 생리휴가 청구에 대해 ‘의심스러운 사정이 많다’며 생리휴가 청구 거부가 합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생리휴가를 부여하려면 생리 현상이 있었는지 증명돼야 한다”며 “그러나 원고들이 신청한 생리휴가는 휴일이나 비번과 인접한 날에 몰려 있거나 휴가 청구 사유란에 생리휴가라고 기재하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고 했다.

또 “생리휴가를 모두 받아주려면 항공기에 승무원을 일정 수 이상 탑승시켜야 하는 항공 규정을 준수하기 위해 대기 인력을 둬야 한다”며 “이는 회사에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한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법원은 승무원 측의 손을 들어줬다. 근로기준법상 현존하는 제도를 적극적으로 시행하는 게 회사의 의무라고 본 것이다. 1심 재판부는 “생리휴가를 청구하면서 생리 현상 존재까지 소명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사생활 등 인권에 대한 과도한 침해”라며 “이는 생리휴가 신청을 어렵게 만들어 제도 자체를 무용하게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이유로 김 전 대표가 근로기준법을 어겼다고 보고 그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이어 회사가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 없이 젊은 여직원들을 상당 부분 고용한 만큼 생리휴가 수용에 대한 책임도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고 회사의 객실 승무원은 압도적 다수가 여성인데 승무원 다수를 여성으로 채용해야 할 필연적인 이유를 찾을 수 없는 데다 젊은 여성 객실 승무원에 의한 서비스를 선택한 것 또한 회사의 경영상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여성의 불안정한 생체 주기를 고려해야 한다고도 판단했다. 재판부는 “여성의 생리 현상은 하루 만에 끝나지 않고 몸 상태에 따라 상당히 오랜 기간 지속되고 주기가 일정하지 않은 특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밝힌 것이다.
2심도 대법원도 같은 판단
곳곳에서 불거지는 ‘생리휴가’ 논란

김 전 대표 측은 1심의 판단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에 2심 항소, 대법원 상고를 이어 갔다. 하지만 2심 역시 같은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는 “업무 특수성과 여성 노동자의 비율을 고려하더라도 보건휴가를 부여하지 못한 점에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대법원도 1·2심의 판단을 따랐다.

재판부는 “원심 판단은 생리 현상의 존재에 관한 증명 책임, 근로기준법 위반죄의 성립, 기대 가능성 등에 관한 법리 오해나 이유 모순의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임신 등 생리 현상이 없다는 사실이 명확한 상황에 처하지 않은 이상 여성 노동자들이 청구한다면 회사는 생리휴가를 부여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게 확실해진 것이다. 4년 가까이 생리휴가를 둘러싸고 여성 직원들과 회사 측이 ‘투쟁’을 벌인 결과다.

생리휴가를 둘러싼 갈등은 항공업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 직원 비율이 높은 곳이라면 언제 어디서나 불거질 수 있는 ‘시한폭탄’ 같은 사안이다. 법적으로 명시된 권한이지만 혈흔 등 증거를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등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2020년 12월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여성 상담사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한 게 대표적이다. 이들은 생리휴가 신청 시 소속 회사가 생리대 사진 제출 등을 요구하는 등 인격 모독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진정을 제기한 국민건강보험공단 경인3고객센터 상담사들은 하청 업체 제니엘 소속이다.

상담사들의 주장에 따르면 회사 측은 생리 15일 전까지 증빙 서류와 휴가원을 사전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담당자가 “생리통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기 때문에 확인이 필요할 수 있다”며 “다른 회사에서는 생리대를 사진으로 찍어 보내기도 한다”고 했다는 주장도 잇따랐다. 또 “약을 먹고서라도 출근하라”며 “출근할 수 없는 상태라면 (생리휴가 대신) 연차를 쓰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고 밝히며 논란이 일었다.


[돋보기]
‘70년 역사’ 생리휴가…유급? 무급!
일본·대만에서도 시행

“생리휴가를 실제로 사용하는 직원들이 있기는 한가요.”

5년 전 한 제약회사가 20~39세 여성 직장인 500명을 대상으로 생리휴가 사용 실태에 대해 설문 조사했다. 그 결과 넷 중 세 명(76%)이 “생리휴가를 사용한 경험이 없다”고 밝혔다. 전체 응답자의 절반 이상은 생리 때문에 업무에 영향을 받는다고 응답했다.

그 이후 일반 여성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같은 내용의 공개적인 설문은 발표된 바 없다. 그러나 여성 직장인들 가운데 “생리휴가가 법적으로 보장되는지도 몰랐다”고 반응하는 경우가 아직도 많다.

이처럼 인지도는 낮지만 생리휴가의 역사는 유구하다. 1953년에 근로기준법이 제정됨에 따라 여성 노동자에 대한 생리휴가 신청 권한도 이때 생겨났다. 생긴 지 68년이나 되는 법이었던 것이다. 생리휴가에 대한 규정이 처음 만들어질 당시에는 여성 노동자가 한 달에 하루를 ‘유급’ 생리휴가로 청구할 수 있게 보장했고 이 규정은 50년 동안 유지됐다.

하지만 생리휴가는 더이상 유급이 아니다. 2003년 9월 ‘유급 생리휴가’가 ‘생리휴가’로 개정되면서다. 이에 따라 “여성 직원이 임금은 임금대로 받고도 하루 쉴 수 있어 회사에 불리한 법이다”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어불성설이다. 사용자와 노동조합이 체결한 단체협약 규정에 의해 생리휴가를 유급으로 지급하는 회사도 더러 있다.

생리휴가는 근로기준법에 엄연히 명시된 노동자의 권리이자 회사 측의 의무다. 근로기준법 제73조에 따르면 5인 이상이 근무하는 사업장의 여성 직원에 대해 월 1일의 생리휴가를 줘야 한다. 생리휴가는 노동자가 청구하는 날에 무조건 줘야 하는 휴일로, 당일에 청구해도 부여하도록 돼 있다.

만일 회사 측에서 ‘생리휴가 사용 며칠 전까지 휴가원을 내라’고 요구한다거나 ‘생리휴가가 가능한 요일은 언제다’라고 지정하는 행위는 법에 어긋나는 것이다.

한국에만 있는 제도란 것도 잘못된 정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일본과 인도네시아와 같은 아시아 국가들에서도 여성 노동자들에게 생리휴가를 허용하고 있다. 대만에서는 2013년 처음으로 연 3일 유급 생리휴가, 연 30일 부분 유급 휴가(월급의 절반 보장)를 법으로 보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효주 기자 j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