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유통업체, 해외 하청 공장 붕괴로 소송 당해…구체적인 공급망 관리 계획 필수

[ESG 리뷰] 이슈
미국 에너지 기업 유노칼
미국 에너지 기업 유노칼
2021년 한국 기업들의 최대 관심사는 단연 환경·사회·지배구조(ESG)다. 각 산업 분야의 선두 기업들은 연초부터 ESG 경영을 천명하면서 내부적으로는 ESG위원회를 구성하고 대외적으로는 RE100(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캠페인) 등 ESG 관련 이니셔티브에 가입하는 등 신속한 변화를 이끌고 있다.

ESG라는 변화의 이면에는 리스크가 내재돼 있다. 우리 사회에서 그동안 ESG에 대해 충분히 연구하고 담론해 왔다면 기업들은 그러한 논의를 토대로 리스크를 가늠해 보고 각자 대응 방안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상황은 그러한 여유를 갖기 어렵게 한다.

지난해 2월 네덜란드 최대 공적기금인 APG는 탄소 배출을 이유로 투자금을 회수했고 또 작년 9월 세계 2위 광산 업체 리오 틴토는 투자자들의 요구에 따라 유적지 파괴를 감행한 최고경영자(CEO)를 경질했으며 세계 최대 자산 운용사 블랙록은 당장 올해 초 기업 CEO들에게 탄소 중립 실현 계획을 요구하고 있다.

EU, 공급망 전체 실사 의무화 추진

결국 이러한 압박은 올해 ESG라는 거대한 트렌드로 이어졌다. 당연히 장기적으로 바람직한 흐름일 것이다. 하지만 정작 ESG의 실현 주체인 기업으로서는 ESG 경영 도입에 따르는 리스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성급히 ESG 경영을 선언함으로써 자칫 스스로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즉, 선한 의도를 갖고 선포한 ESG 경영 방침이 나중에 스스로를 구속하는 규범으로 작용해 도리어 기업에 ESG 위반 책임을 지우는 근거로 활용될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각 기업들과 산업계에서는 ESG 경영 도입 선언에 앞서 ESG 경영 도입에 따른 리스크에 대해 충분히 논의하고 대응 방안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그동안 주요 국가들과 국제기구에서 진행돼 온 논의의 흐름을 파악하고 외국 투자자들과 외국 기업들의 동향을 파악하는 작업도 필요할 것이다.

ESG와 관련해 대표적인 규범은 2011년 유엔이 제정한 유엔 기업 인권 이행 지침(UN Guiding Principles on Business and Human Right)과 197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국제 투자 및 다국적 기업에 관한 선언을 한 이후 개정 작업을 거치며 정비돼 온 OECD 가이드라인을 들 수 있다. 또한 주요 국가들의 최근 ESG 관련 입법례를 살펴보면 콩고민주공화국 등 분쟁 지역에서 생산된 광물의 공급망에 대한 인권 실사 의무(due diligence)를 규정한 미국의 ‘도드-프랭크법’ 제1502조, 영국의 ‘현대노예방지법’, 프랑스의 ‘모기업 및 지시 권한이 있는 기업의 경계의무법’, 네덜란드의 ‘아동 노동 실사 의무화법’ 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규범들의 공통된 관심 영역과 주안점은 무엇일까. 바로 ‘공급망’이다. 아무리 모기업이나 공급망 내 상위 기업이 ESG를 선언하더라도 자회사 내지 협력 업체의 사업 현장에서 ESG가 구현되지 않는다면 결국 ESG는 공허한 구호에 그치고 말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재 유럽연합(EU) 의회는 기업에 ‘공급망 전체’의 환경과 인권 등 현황에 대한 실사를 의무화하는 입법을 추진하고 있고 예정대로라면 2024년부터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사례#1. 1996년 9월 4명의 미얀마인들을 미국 연방법원에 미국 에너지 기업 유노칼(Unocal)과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점을 둔 유노칼의 모회사를 상대로 국외 불법행위법(Alien Tort Statute) 위반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유노칼은 프랑스의 토탈과 함께 미얀마 국영 석유회사가 미얀마 내 야나다 지역에서 천연가스를 추출해 송유관을 통해 가스를 태국으로 수출하는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었다.

미얀마인들은 유노칼이 미얀마 군사 정권의 인권 탄압 상황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얀마 군사 정권에 공사 지역에서의 안전 보장을 요청했고 군사 정권은 반정부 세력으로부터의 안전을 보장해 준다는 명분으로 인근 마을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키고 기반 시설과 군사 시설 건설을 위해 노동을 강요하는 등 인권 침해 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다. 유노칼은 관할권 유무를 다퉜다. 미국 연방항소법원이 이 사건의 관할권을 인정하고 본안 심리에 돌입하자 결국 유노칼은 2005년 원고들에게 약 12억 달러의 배상금을 지급하고 주민들의 권리 보호와 생활 환경 개선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든 후 제공하기로 합의하면서 사건이 종결됐다.

사례#2. 2015년 9월 1826명의 잠비아 국민은 자국 소재 구리 광산에서 유독성 유출물이 배출돼 경제적·신체적 손해를 봤다는 이유로 영국 법원에 영국에 영업소를 둔 다국적 채굴 기업인 베단타(Vedanta)와 베단타의 잠비아 소재 자회사로 구리 광산 개발 사업을 수행하는 콘콜라 구리 광산을 상대로 손해 배상 등을 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베단타는 관할 합의 등을 근거로 관할권 유무를 다퉜지만 영국 대법원은 베단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2019년 판결을 선고하면서 잠비아의 관할 법원에서는 실질적으로 정의가 실현되지 않을 실제적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하면서 만장일치로 영국 법원의 관할권을 인정했다. 이 판결 선고에 따라 영국 법원에서 손해 발생과 관련된 실체 심리가 진행되는 상황에 처하자 모회사인 베단타와 자회사 콘콜라 구리 광산은 올해 초 피해자들과 합의하고 분쟁을 종결했다.

사례#3. 2013년 4월 방글라데시에 있는 라나 플라자 공장 건물이 붕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라나 플라자 공장 건물에는 해외 수출용 제품을 만드는 섬유 공장이 입주해 있었는데, 건물 붕괴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은 이 섬유 공장의 직원들이 상당수였다. 피해자들의 가족들과 노동 단체들은 섬유 제품의 구매자인 캐나다 유통업체 로브로(Loblaws)와 공장들에 대한 감사 업무를 담당한 컨설팅 회사인 뷰로 베리타스(Bureau Veritas)를 상대로 캐나다 온타리오 주법원에 집단 소송의 승인을 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피해자들은 피고 기업들이 방글라데시 내 의류 공장의 근무 여건이 위험하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특히 피고들이 선언하고 있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기준들을 근거로 집단 소송을 승인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1심 법원은 로브로와 뷰로 베리타스 모두 라나 플라자 공장을 소유하거나 건설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붕괴의 원인을 제공하지도 않았던 점, 라나 플라자의 노동자들은 로브로 자회사들의 노동자들이 아니고 로브로 자회사들 중 한 회사의 재하수급 업체였던 점, 따라서 로브로와 라나 플라자 노동자들 간의 관계는 주의 의무를 발생할 정도의 밀접성을 가진 것으로 보기 어려운 점 등을 이유로 기각했다.

항소법원 역시 1심 법원과 동일한 결론을 내리면서 원고들의 집단 소송 승인을 거절했지만 다만 1심 법원이 약 220만 달러에 이르는 소송비용을 전부 원고들이 부담할 것을 명한 것과 달리 항소법원은 소송의 공익적 성격을 인정하면서 소송비용의 30%는 피고들이 부담할 것을 명했다. 비록 집단 소송은 승인되지 않았지만 별도로 중재 절차를 통해 다국적 기업들로부터 일정한 손해 배상 및 재발 방지 조치를 받을 수 있었다.

공급망 관리 비용에 대한 인센티브 등 필요

이러한 분쟁 사례들은 기업들의 공급망 관리 책임과 관련된 규범이 미비했던 시절의 사례들이고 앞으로 규범과 법리가 정리되면서 보다 엄격한 관리 책임이 부여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럼에도 이 분쟁 사례들은 리스크 관리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례 1·2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외국 법원들 중에는 해외 사업장에서 외국인들이 피해를 본 사건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사법권을 행사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 전제는 모회사 내지 관계 회사가 사법권을 행사하는 국가에 설립돼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 기업들이 해외 법인을 설립할 때 설립지 국가의 규범과 법원의 태도를 유의할 필요가 있다. 또한 사례 3과 같이 피해를 주장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책임 발생의 근거 중에는 공급망 내 상위기업이 선언하고 있는 경영 지침이 포함되므로 ESG 경영 방침 수립 단계에서부터 공급망의 범위와 특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대기업들은 ESG 경영 선언을 넘어 구체적 실천 방안을 계획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고 이 과정에서 공급망 관리에 대한 고민은 깊어질 것이다. 가령 공급망 실사를 실시한다고 할 때 그 실효성을 확보하려면 실사 결과를 토대로 한 후속 조치가 이어져야 한다. 만약 공급망 내 협력 업체와 ESG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라면 자칫 ESG가 본래 취지인 상생이 아니라 일방적이고 강제적인 방식으로 진행될 수 있다.

따라서 구체적인 조치에 앞서 ESG 관련 협의체 구성, 유관 기관 교육 등을 통해 공급망 내에서의 공감대 형성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또한 ESG 이념을 실현하려면 반드시 제도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공급망 관리는 반드시 비용이 수반되는데 그 비용 부담은 인센티브 제도, 조세 혜택 등을 통해 조정, 보전돼야 한다.

변화는 기회다. 그리고 지금은 그 기회를 살리기 위해 중지를 모아야 할 때다. ESG 경영의 흐름을 피할 수 없다면 결국 ESG 경영을 위한, 특히 공급망 관리에 관한 구체적 계획을 수립하고 실천하는 것이 잠재적 리스크에 대응하는 최선의 방법일 것이기 때문이다.

오지헌 법무법인 원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