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훈 고려대 안암병원장 “후유증 있어도 병원 꺼려, 중국·일본 등 해외 수요도 기대"
[인터뷰] “본인이 맞으신가요.”트랜스젠더들이 의료 기관을 이용하거나 은행·관공서·투표소 등을 방문할 때 으레 듣는 질문이다. 정신적인 성과 태어날 때 지정된 성별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들을 트랜스젠더(transgender)라고 지칭한다. 이들은 생활 곳곳에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언제나 설명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2018년 세계보건기구(WHO)는 기존 정신 질환으로 분류했던 ‘성별 불일치’ 항목을 ‘성적 건강 관련 상태’로 변경했다. 당시 WHO는 “트랜스젠더가 더는 정신 장애가 아니라는 점은 명백하며 트랜스젠더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과 함께 더 나은 의료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선 올해 처음 국가 기관에서 트랜스젠더 관련 실태 조사를 진행했다. 성전환 수술 후 강제 전역된 지 1년여 만에 세상을 떠난 변희수 하사의 소식이 전해지면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박종훈(56) 고려대 안암병원장은 이러한 변화에 주목했다. 트랜스젠더들은 성전환 수술 후 호르몬 치료와 정신과 상담 등 꾸준한 치료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들은 호르몬 치료는 물론 일반 사람들이 쉽게 드나드는 동네 병원에도 마음놓고 갈 수 없는 실정이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트랜스젠더 4명 중 1명꼴로 병원 등 의료 기관에 가야 하는 데도 방문을 포기한 경험이 있었고 10명 중 6명은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차별 없는 시선과 의료 테크닉, 분리된 탈의실 등 이들을 위한 의료 시설이 요구된다.
박 원장은 “해외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은 후 한국에서 관리를 받지 못해 상태가 나빠지는 환자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고려대 안암병원은 올해 1월 트랜스젠더 특화 클리닉을 개설했다. 그동안 한국에 트랜스젠더 호르몬 치료를 하는 의사는 있었지만 복합적으로 몸 상태를 관리해 주는 ‘센터’는 없었다.
트랜스젠더에게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작년 추석 우연히 태국에서 성전환 수술받고 온 환자가 올린 블로그 글을 봤다. 글쓴이는 돈이 없어 충분히 회복되기도 전에 한국에 돌아왔다고 했다. 이때 처음 든 생각은 ‘왜 한국의 트랜스젠더들이 태국까지 가서 수술을 받아야 하나’였다. 이후 다큐멘터리 영상 ‘본투비(Born To Be)’를 본 후 트랜스젠더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이들은 이상한 사람들이 아니라 성별 정체성이 태어날 때 지정된 성별과 일치하지 않는, 혼란을 겪는 환자들이었다. 다시 처음에 들었던 의문이 떠올랐다. 한국의 트랜스젠더가 20만 명이 넘는데 물론 성전환 수술은 극히 일부만 받겠지만 이들이 한국보다 의료 수준이 낮은 태국에서 수술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한국엔 트랜스젠더를 위한 의료 시설과 정보가 없다는 것이다. 암이나 우울증에 걸리면 어떤 수순으로 치료받고 누가 권위자인지 등 의료 정보가 많지만 그동안 트랜스젠더를 위한 정보는 없었다. 의사로서의 사명감과 경영자로서의 ‘감’이 머리와 가슴을 강타했다.”
왜 트랜스젠더 클리닉인가.
“트랜스젠더 수술은 ‘환자군’이 확실하다. 드러나지 않아 그렇지 병원을 찾아올 환자 수는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한국엔 제대로 치료해 주는 곳이 없다. 어떤 환자는 한국에서 졸속으로 수술을 받아 합병증을 안고 살아가기도 한다. 태국에서 수술 받아도 결국 회복은 한국에서 해야 하는데 트랜스젠더들이 병원을 방문하기가 쉽지 않다. 대부분이 병원에서 꺼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면 이들을 위한 의료 시설이 있다면 한국의 트랜스젠더 환자들이 그 병원을 방문한다는 뜻이다.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이 제대로 치료 받을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클리닉을 개설한 후 반응은 어떤가.
“대학 병원에서 트랜스젠터 클리닉을 개소한다는 것에 대한 시선은 반반이었다. 참신하다는 시선도 있었고 조심스럽고 민감한 부분이라 부정적인 의견도 있었다. 확실한 것은 대학 병원이기 때문에 트랜스젠더 클리닉을 개소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트랜스젠더 수술은 고도의 의학적 테크닉을 요구한다. 안면윤곽성형술·목젖성형술·유방절제술·유방확대술·정관절제술·난소난관절제술·성기재건술 등 개개인에 따라 다양한 수술을 할 수 있다. 물론 모든 트랜스젠더가 성전환 수술을 받는 것은 아니다. 호르몬 요법만으로도 어느 정도 체형과 피부 및 목소리의 변화를 얻을 수 있다. 문제는 수술을 결심했을 때 단순히 수술 테크닉만 고려해선 안 된다는 점이다. 수술 전후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고 호르몬 치료도 평생 뒤따른다. 이 때문에 성형외과 외에도 정신건강의학과·내분비내과·이비인후과·산부인과·비뇨의학과·가정의학과 등 환자를 돌볼 수 있는 여러 진료과가 두루 갖춰져 있어야 한다. 비용 문제를 상담할 사회사업팀도 필요하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도 많다고 들었다. 수술을 포함해 치료 전반에 적어도 2000만~3000만원 정도가 들어가는데 큰돈이다. 이에 대한 상담 체계가 구축돼 있어야 한다. 즉 여러 팀이 긴밀하게 협업해야 한다. 그래서 대학 병원이 나서야 한다.”
벤치마킹한 곳이 있나.
“벨기에 겐트대학병원과 미국 마운트 사이나이센터, 태국 병원들을 눈여겨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해외 교류가 제한적이지만 감염병 사태가 끝나면 해외 병원과 교류를 진행할 예정이다. 현재 센터는 성형외과 내에 작게 개설했다. 올해 1월 개소한 후 9명의 의료진이 해외에서 수술 받고 부작용을 호소하는 환자들을 주로 돌보고 있다. 하지만 5년, 10년 뒤에는 독립된 센터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성전환 수술을 고려한 분리된 탈의실을 설치하는 등 섬세한 디자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향후엔 한국 환자만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수술과 관리를 받기 위해 한국에 올 수 있도록 독립 시설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웃 나라인 중국과 일본은 한국보다 훨씬 더 보수적이라 트랜스젠더 수술에 더 닫혀 있다. 이것만 고려해도 가치는 있다.”
또 주목하고 있는 분야가 있나.
“초고령화 사회란 점에 주목하고 있다. 주변 지인들 대부분이 80대 노부모를 모시고 있는데 어느 집이나 부모를 모시고 병원을 방문할 때마다 어려움이 있다. 80대 노인이 되면 대부분 혼자 병원을 방문하는 일이 쉽지 않다. 가족 중 한 명이 시간을 내야 하는데 그때마다 형제들 가운데 누가 모시고 갈지 정해야 하는 갈등이 생긴다. 이 부분을 활용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돌봄 이송 서비스 업체, 에스코트 서비스 업체와 각각 손잡은 이유다. 예컨대 자식 대신 서비스 업체 직원들이 부모를 원하는 장소에서부터 병원까지 안전하게 모시고 병원 내에선 진료·수납·예약 등 활동을 보조하는 것이다. 사실 대형 병원을 방문하는 연령대가 대부분 노인층인데 이 서비스가 활성화되면 병원 안과 주차 공간이 더이상 복잡하지 않게 된다. 코로나19 상황에선 안전성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 서비스가 성공적으로 정착되면 병원으로선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현재 시범 사업으로 운영 중인데 일단 반응이 좋다.”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하는 이유는 뭔가.
“1980년대까지 병원엔 서비스 개념이 없었다. 진료실에도 재떨이가 있었다. 1990년대 국민건강보험과 아산병원·삼성병원 같은 초대형 병원이 생기면서 ‘고객 우선’, ‘서비스’ 정신이 생겼다. 그때부터 대학 병원이 뒤처지기 시작했다. 규모와 서비스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2010년대엔 대부분의 대형 병원에서 서비스 정신이 자리 잡았다. 하지만 규모면에선 아산병원과 삼성병원을 절대 넘을 수 없다. 이때부터 대학 병원은 단순 진료를 넘어 연구 중심, 특화센터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남들보다 몇 년 앞을 바라보고 미리 준비해야 도약할 수 있다. 트랜스젠더 센터, 고령화 서비스 등 특화된 ‘질’에 집중하는 이유다.”
약력
1965년 출생. 1989년 고려대 의과대학 의학과 졸업. 1997년 정형외과 전문의 취득. 2000년 울산대대학원 생화학석사‧박사. 2012년~2015년 보훈의료전문위원회위원장. 2020년~현재 대한환자혈액관리학회 회장. 2018년~현재 고려대 안암병원장.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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