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차량 결제 중단한 엘론 머스크…과도한 에너지 소모 극복할 대안 찾고 있나
[비트코인 A to Z] 2021년 디지털 자산 시장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인물은 단연 테슬라와 스페이스X의 최고경영자(CEO)인 엘론 머스크일 것이다. 머스크 CEO는 본인의 트위터를 통해 도지코인을 예찬하고 스스로를 ‘도지 파더’라고 소개한 바 있다. 그의 트윗에 따라 도지코인 가격이 출렁이고 네티즌들은 수많은 ‘엘론 머스크-도지 밈’을 양산해 내고 있다. 심지어 미국의 코미디 쇼 SNL에 머스크 CEO가 출연하다고 했을 때 머스크 CEO가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도지코인을 지지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형성되면서 도지코인 거래량이 폭증했을 정도다. 한국에서도 도지코인의 인기가 상당한데 도지코인 거래량이 조 단위에 육박하며 한때 유가증권시장 거래량을 추월한 바 있다.높은 기대와 달리 SNL 방송에서 머스크 CEO는 농담조로 도지코인을 사기라고 발언했고 방송에서 별다른 호재가 언급되지 않자 도지코인 가격이 30% 이상 급락했다. 하지만 SNL 방송이 끝난 다음날 반전이 있었다. 스페이스X가 ‘도지-1 미션 투더 문’이라는 프로젝트를 공개하면서 도지코인 가격이 반등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2022년 1분기 실행될 달 탐사 프로젝트로 팰컨 9 로켓에 정육면체의 위성을 실어 달에 보내는 것이다. 머스크 CEO는 이때 도지코인을 사업 자금의 결제 수단으로 수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스페이스X 관계자는 “도지-1 은 암호화폐가 지구 궤도를 넘어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행성 간 상업 거래의 토대를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까지가 주류 미디어에서 많이 다루는 내용이다. 화제성 있는 괴짜 CEO 머스크와 유쾌한 밈 코인 도지코인의 환상적인 궁합이 흥미로운 기삿거리를 양산해 내고 가십은 반복적으로 재생산된다. 필자는 도지코인 열풍을 바라보며 이 현상이 신호인지, 소음인지 알고 싶어졌다.
머스크 자금, 어디에 들어가 있나 파악해야
우선 도지코인의 펀더멘털이다. 과연 도지코인이 ‘넥스트 빅 싱(Next Big Thing)’일까. 최근 디지털 자산 전문 금융사 갤럭시 디지털은 ‘도지코인 : 가장 정직한 잡코인’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도지코인의 역사부터 투자 열풍, 엘론 머스크, 도지코인 관련 각종 블록체인 지표들(공급량, 해시레이트, 노드 개수, 지갑 개수, 기술적 특징 등)을 다룬다. 아마도 현존하는 보고서 중에서 도지코인에 대한 펀더멘털을 가장 진지하게 분석한 보고서일 것이다. 보고서의 결론은 도지코인은 다양한 측면(인프라 성숙도, 네트워크 효과, 보안성, 탈중앙화성 해시레이트 등)에서 비트코인 대비 열등하지만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 점염성 강한 밈을 생산하고 이것이 확대되면 해당 밈은 자생력을 가지고 ‘가상’에서 실체를 가진 ‘진짜’가 된다. 도지코인 또한 장난스러운 밈으로 시작됐지만 미래에 이것을 진지하게 취급하는 기업들이 많아져 인프라가 성숙해지고 해시레이트가 상승해 보안력이 공고해지고 네트워크가 분산화되고 기술 개발이 진척된다면 10년 뒤 도지코인이 투자할 만한 자산 혹은 그 이상의 것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참고로 이는 비트코인이 지난 12년간 걸어온 길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머스크 CEO는 정말 도지코인을 미래의 화폐로 보고 있는지가 고민해 볼 주제다. 필자는 누군가의 진짜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보다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떤 분야가 유망하다고 하는 사람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입을 볼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돈이 어디에 들어가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머스크 CEO는 2021년 2월 아들을 위해 도지코인을 샀다고 밝혔는데 매수 금액은 밝히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에 테슬라는 회사 돈으로 약 1조7000억원어치의 비트코인을 매수했다고 밝힘으로써 세간을 놀라게 했다. 테슬라는 상장 기업 중에서 마이크로스트레티지 다음으로 많은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테슬라는 2021년 4월 보유하고 있던 비트코인의 약 10%를 매도했다고 밝혀 시장의 공분을 샀지만 여전히 기존에 매수한 비트코인의 90% 수준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머스크 CEO 개인적으로도 비트코인을 구매했고 사재로 산 비트코인은 팔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혔다.
왜일까. 왜 테슬라는 도지코인이 아닌 비트코인에 투자했을까. 머스크 CEO가 진심으로 도지코인을 미래의 화폐라고 믿었다면 테슬라 이사회를 설득해 거액의 회사 돈을 도지코인에 투자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필자가 보기에 머스크 CEO는 비트코인에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지만 도지코인으로 일종의 쇼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머스크 CEO가 비트코인이 아닌 도지코인 트윗을 더욱 활발하게 올리는 이유는 이미 미국에서 금융 투자 자산으로 인정받은 비트코인 트윗을 올리면 시장 교란 행위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머스크 CEO는 2018년 자신의 트윗으로 테슬라의 주가가 요동치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증권 사기 혐의로 고소 당했고 4000만 달러를 벌금으로 낸 적이 있다.
머스크 CEO가 비트코인을 진지하게 대하고 있다는 가설을 뒷받침하는 몇 가지 증거는 다음과 같다. 우선 지난 3월 테슬라는 비트코인 결제 프로세서를 연구하는 오픈 소스의 버그 수정을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테슬라 엔지니어들이 비트코인 오픈 소스 코드를 하나하나 뜯어보고 심도 있게 연구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머스크 CEO는 테슬라 차량 결제에 비트코인을 지원한다는 트윗을 올리면서 테슬라가 직접 비트코인 노드를 작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테슬라의 비트코인 투자가 단순히 재무적 투자가 아니라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최근 핀테크 기업 스퀘어와 혁신 자산 운용사 아크인베스트먼트는 흥미로운 보고서를 발간했다. ‘비트코인은 풍부한 청정 에너지 미래의 핵심이다’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비트코인이 친환경 에너지 촉진에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심도 있게 분석했다. 비트코인 채굴이 전기를 많이 소비하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는 주류의 주장에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잭 도시 스퀘어 CEO는 해당 보고서를 트위터에 올리며 비트코인이 신재생에너지를 촉진한다고 밝혔고 머스크 CEO는 해당 트윗을 리트윗하며 ‘맞다(True)’라는 답변을 달았다. 머스크 CEO 역시 비트코인과 신재생에너지를 촉진할 수 있다는 전망에 동의하는 것이다.
사실 테슬라가 비트코인에 투자한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했다. 촉망받는 친환경 전기차 기업인 테슬라가 이산화탄소 배출의 주범이라는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참고로 테슬라의 미션은 ‘세계가 지속 가능한 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을 가속화한다’다. 실제 머스크 CEO는 5월 ‘테슬라 & 비트코인’이라는 제목의 트윗을 올렸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비트코인 채굴과 거래에 급격하게 사용되고 있는 화석 연료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중략) 암호화폐는 다양한 관점에서 좋은 아이디어이고 우리는 암호화폐의 유망한 미래에 대해 믿지만 이것이 환경에 대한 심각한 비용을 치르는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테슬라는 비트코인을 팔지 않을 것이고 비트코인 채굴이 더욱 지속 가능한 에너지에 기반하는 즉시 그것을 사용할 것이다. 테슬라는 또한 비트코인의 에너지 거래 1% 미만을 사용하는 다른 암호화폐들을 탐색하고 있다.”
금융 결제 산업에 파괴적 혁신 시도할 것
흥미로운 사실은, 과거에 머스크 CEO도 비트코인에 대해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머스크 CEO는 2019년 캐시 우드 아크인베스트먼트 CEO와 인터뷰했는데 당시 비트코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우드 CEO의 질문에 머스크 CEO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테슬라의 자원을 암호화폐에 쓰는 것이 좋을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중략) 우리는 정말로 지속 가능한 에너지의 사용을 가속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암호화폐의 부작용 중 하나는 그것이 에너지를 무척 많이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머스크 CEO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한때 비트코인의 과도한 에너지 소모를 우려했던 머스크 CEO는 왜 비트코인이 친환경 에너지 사용을 촉진한다는 도시 CEO의 트윗에 동조했을까. 왜 머스크 CEO는 최근 들어 비트코인 채굴에 우려를 표하며 차량 비트코인 결제 계획을 철회했을까. 아마도 머스크 CEO와 테슬라는 분주히 해답을 모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누가 알겠는가. 향후에 테슬라에 내장된 반도체 칩과 태양광 패널이 고객의 동의하에 비트코인 채굴에 활용되고 테슬라의 로보택시 결제 레이어에 비트코인 라이트닝 네트워크와 같은 기술이 활용될 지…. 혹은 테슬라와 뜻을 같이하는 글로벌 기업 얼라이언스가 해시 파워를 모아 비트코인 하드포크를 계획할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비트코인이 아닌 다른 암호화폐가 이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다.
머스크 CEO와 같은 천재 기업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필자 같은 범인들은 도통 알 길이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페이팔을 운영한 경력이 있는 그가 디지털 자산·블록체인 분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어떤 방식으로든 금융·결제 산업에 파괴적 혁신을 시도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가 자동차 산업, 에너지 산업, 우주 산업을 혁신한 것처럼 말이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피할 수 없었다.’ 머스크 CEO는 2021년 1월 이런 트윗을 남기고 본인의 트위터 프로필에 비트코인을 표시한 적이 있다. 과연 그는 어떤 세계를 상상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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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섭 한화자산운용 디지털 자산팀 팀장, ‘비트코인 제국주의’, ‘넥스트 파이낸스’ 저자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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